[르포] 연비 시험실을 가다…"표시연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나요"
  • 김한용·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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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06 19:37
[르포] 연비 시험실을 가다…"표시연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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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출발, 급가속, 급정지하지 않기"

소위 말하는 '3금(禁)'을 지키며 아무리 조심조심 운전해도 표시연비라 쓰여있는 숫자에 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체 이 숫자는 어떻게 해야 나오는 것이냐 불만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표시연비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측정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달 22일, 연비 공인시험기관인 한국석유관리원을 찾아 연비 측정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기로 했다.

▲ 한국석유관리원 오창본부

한국석유관리원 입구에는 번호판도 없는 미니 컨트리맨 3대가 주차돼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차들은 '표시연비 사후 관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사후 연비 테스트'는 제조사가 내놓은 연비가 올바른 것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동일 모델 3대를 시중에서 구입해 시험한 후 평균을 낸다. 다른 차들도 배기구를 길게 뽑아놓은 상태로 연비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로소 연비 측정 기관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 사후 테스트를 받기 위해 모인 미니 컨트리맨 3대와 배기구를 길게 뺀 르노삼성 SM7

성능연구소에 들어서니 한국석유관리공단 김기호 팀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반갑게 맞아줬다. 때마침 에너지관리공단 수송에너지팀 노경환 과장이 방문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연비 측정 과정의 꼼수?…풍문으로 들었소

연비 관련 기사만 쓰면 네티즌들 악성댓글에 시달린다고 엄살을 부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표시연비까지 도달할 수가 없다고 불평도 했다.

그러자 김 팀장은 웃으며 "연비는 운전 환경과 습관에 따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절대적인 수치보다는 차종에 따른 상대평가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노 과장은 "기존 측정법이 실제 주행보다 우수하게 나온 것이 사실"이라며 "당시에는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소비자 불만 전화가 쇄도했지만, 측정법이 바뀐 이후에는 전화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그만큼 바뀐 연비는 실연비와 가깝다는 설명이다.

▲ 왼쪽부터 한국석유관리원 김기호 팀장, 에너지관리공단 노경완 과장, 모터그래프 김한용 기자

항간에 떠도는 연비 관련 속설들도 물었다.

연비 측정시 배기구에 구멍을 뚫어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는 소문에 대해 물었다.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시험실 내 평균 배기가스 기준보다 4~5ppm 넘어가면 시험이 중지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 연비 측정 과정도

혹시 제조사가 공인시험기관을 매수할 수 있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묻자 "한국석유관리원은 원래 가짜 석유를 판별하는 등의 업무를 위주로 하는 공공기관으로 연비 측정은 여러 업무 중에 지극히 부수적인 일"이라며 "괜히 연비 측정을 잘못해서 신뢰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큰일"이라고 말했다. 

◆ 연비 측정 과정 직접 보니…사람이 직접 발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 연비 측정 시험실을 살폈다. 차대동력기가 설치된 모의 주행시험장은 마치 노래를 부르는 스튜디오 같이 보였다.

▲ 연비 측정 시험실

부스 안에는 마침 기아 카니발이 주행하고 있었다. 

차는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커다란 원통 같이 생긴 '차대동력기' 위에서 주행을 하고 있었다. 전면에는 실제 주행 환경에서 받는 것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며 엔진으로 바람을 불어주고 있었다. 선풍기가 있어야 엔진이 과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연구원이 시험 차량에 직접 탑승해 속도 변화 모니터에 맞춰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막연히 기계 장치를 이용해 가감속하며 연비를 측정할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다. 시험 중인 차량을 살펴보니 차 안에 연구원이 탑승해 직접 발로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을 밟고 있었다.

▲ 차 전면에 장착된 속도 변화 모니터

모의주행은 도심과 고속도로의 복잡한 주행모드에 맞춰 주행하며 시행한다. 앞유리에는 게임기 화면 같은 모니터를 붙여뒀다. 화면에선 그래프가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데 이는 운전자가 달려야 할 속도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노란선은 현재 차의 속도를 뜻하는 것으로 속도가 빨라지면 오른쪽으로, 속도가 줄면 왼편으로 움직인다. 

김 팀장은 "차에 탑승한 연구원이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급적 정확한 속도 변화선에 맞춰 가속페달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주행 프로그램의 속도 오차 범위는 ±3.2km/h로 생각보다 꽤 여유 있는데, 페달 조절을 잘하면 비교적 좋은 연비를 내놓을 수도 있어 보였다. 제조사가 직접 측정할때는 여기 해당 회사 직원이 앉아서 조작한다. 제조사가 자기에게 유리한 연비를 내놓는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편차가 생길 가능성은 있지만, 가속페달 조절로 연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수치는 극히 작다"면서 "공인시험기관이 사후 테스트로 검증하기 때문에 제조사가 발장난(?)으로 측정 연비를 너무 잘 나오게 하면 오히려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배출가스 포집기와 분석기

주행하며 발생한 배기가스는 배기구에 연결된 굵은 호스를 통해 일부가 배출가스 포집기로 옮겨진다. 이때 발생한 배기가스를 분석해 연비를 측정한다고 했다. 휘발유(또는 경유) 1리터에 들어있는 탄소량이 일정하므로 차에서 배출된 배기가스량을 통해 소비된 연료의 양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연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분식기를 통해 모인 배출가스를 탄화수소,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 각각의 성분으로 분석해 탄소량을 계산하고 총 이동 거리를 통해 연비를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복합연비'는 도심연비 55%, 고속주행연비 45%의 비율로 합산한다고 했다. 

◆ 궁금했던 연비 측정법…"가장 중요한건 제조사가 내놓은대로"

연비 측정 과정을 직접 봤지만, 오히려 궁금한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

연비 테스트가 모두 실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의아했다. 이런 단순한 시험 장치로는 자동차가 실제 주행할 때 생기는 공기저항과 노면마찰 등을 측정할 수 없어서다. 

김팀장은 "미리 야외에서 주행하며 측정한 '속도별 주행저항값'을 장비에 넣어 정확하게 계산해낸다"면서도 "현재 주행저항값은 제조사가 측정한 값을 받아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과정은 정확하겠지만, 제조사가 내놓은 값을 검증 없이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실제 현대차가 미국서 겪은 '연비 과장'으로 인해 벌어진 '연비 배상금 지급 사건'도 현대차가 주행저항값을 잘못 냈다는 이유에서 빚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산자부와 한국석유관리원 등 업계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김팀장은 "아직 여건이 부족해 주행저항값을 직접 측정,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미 장비를 구입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사후 측정에 적용할 것"이라 말했다.

▲ 차대동력기가 설치된 모의 주행시험장

급가속, 저온, 고온 실험을 하지 않는 이유도 궁금했다. 2013년부터 새롭게 개선된 연비 측정법은 도심, 고속, 급가속, 저온, 고온 등 5가지 모드를 시험해 측정한다고 알려졌는데, 시험실에서는 도심주행 모드와 고속주행모드 2가지만 테스트하고 있어서다.

김 팀장은 "미국에서는 샘플차종을 통해 5가지 모드를 모두 측정하지만, 국내에서는 여건상 2가지 모드만 직접 측정하고 나머지 3개 모드는 보정식을 적용해 구한다"면서 "보정식을 사용한 결과 직접 측정한 미국과 거의 흡사한 연비가 나와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앞으로는 3개 모드도 직접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연비 자체 측정 제조사와 공인시험기관 측정 제조사

또, 제조사가 연비를 자체 측정하는 점도 의아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제조사 자체측정 비율은 약 70%(23개 제조사 중 16곳)로 꽤 높다. 현재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 브랜드 5곳 모두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수입차 브랜드 11곳은 연비를 자체 측정해 신고만 한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제조사 자체 측정은 제조사의 측정 장비와 방법이 적합하다는 전제하에 허용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일 제조사가 유리하게 시험 조건을 만들더라도 연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5% 미만일 것"이라며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제조사 측에서 장난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100여대를 테스트 한 결과 제조사가 연비를 잘못 발표해 적발된 사례는 한건도 없었다.

▲ 차대동력기가 설치된 모의 주행시험장

◆ 정부의 '평균 연비 높이기' 정책…'연비 측정' 엄격해진다

연비 측정 공인시험기관을 가보니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일부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느껴졌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평균 연비 높이기' 정책에 발맞춰 보다 현실성 있는 연비 측정, 이를 위한 측정 시스템 도입, 엄격한 사후 관리 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방안도 이미 나와 있다. 우선 연비 산출식에 적용되는 탄소함량 밀도값을 실제 연료와 같게 한다. 실제 연료는 이상적인 석유와 달리 수분이 섞이는 등 이상적이지 않으니 배기가스로 나온것보다 조금 더 많은 연료가 소비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이용하면 평균 연비는 3~4.5%정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비가 측정된 후 2년 후 실시하는 '사후 연비 관리'에서 허용 오차도 -5%에서 -3%로 줄인다. "사후 연비 관리'는 자동차가 연식변경등을 하면서 구조나 ECU 프로그램 등이 조금씩 바뀌는데 이때 연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제도다. 만일 제조사가 애초에 연비 측정을 잘못했다면 이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다. 

산자부 등은 제작사 자체 측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연비 위반 제조사의 처벌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소비자단체가 사후 관리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비롯, 사후 조사 결과(업체명, 차종명, 측정결과) 정보의 신속 공개, 실연비가 표시연비 수준으로 나올 수 있는 운전법 교육 등 표시연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시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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