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너] 르노 고디니, "더 빨리 달리는 줄무늬"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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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7 03:06
[튜너] 르노 고디니, "더 빨리 달리는 줄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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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렌터카를 빌리는 일이었다. 가장 작은 경차급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는 '트윙고 고디니'였다. 트윙고는 전장이 모닝보다도 약간 작은 르노의 경차급 차량인데 새파란 차체에 흰색 줄이 그려져있어 퍼포먼스카 이미지를 연출한다. 생각보다 시선이 집중되는 차인것 같아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 르노 트윙고 RS 고디니

트윙고 고디니 RS의 경우 1.6리터 엔진이 장착돼 130마력을 내는 차다. 이 정도 출력이 중형차에는 별볼일 없을지 몰라도 경차 차체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차를 주행해봐도 엔진 사운드도 꽤 나오고 엔진 성능도 스포츠카까지는 아니어도 도저히 경차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핸들링 감각도 생각 이상으로 놀랍다.

이 차는 그냥 르노가 아니라 '고디니'다. 적어도 그 이름을 붙였다면 제대로 만들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 "더 빨리 달리는 줄무늬"

이 파란 차체에 흰색줄은 전통적으로 고디니의 색상이다. 전통적으로 자동차 레이스에서 프랑스의 국가 색상은 파란색이었으며 60년대 고디니는 여기 흰색 줄을 그어 자신들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후 쉘비나 포드가 레이스카가 아닌 시판용 고성능차에 이에 영감을 받아 파란 바탕에 흰색 줄을 사용했으며 이후 이 무늬는 고성능차를 나타내는 의미로 받아 들여지게 됐다.

▲ 르노 8 고디니

실제로 당시도 이 줄무늬는 "그리면 더 빨라지는 줄무늬(go-faster stripes)라고 일컫어졌다. 요즘의 "빨간색은 3배 더 빠르다"는 농담의 원조격이다.

1996년 닷지 바이퍼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이 색상으로 차를 도색해 복고적인 디자인을 연출했다. 그래서 최근 이 색상은 '바이퍼 스트라이프'라고도 불리지만 실은 '고디니 스트라이프'라고 해야 옳겠다.

'고디니' 브랜드는 1969년부터 르노의 레이싱카와 고성능 차량을 제작하는 르노스포트(Renault Sport Technologies)의 한 분야를 맡고 있다.

그러나 사실 '고디니'는 단순한 고성능 브랜드가 아니라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는 독립 회사였다. 1946년, 당시 '기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천재적인 튜너 '아메디 고디니(Amédée Gordini)'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 아메디 고디니, '기계의 마술사'

고디니를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전설적 인물 '아메디 고디니'를 언급해야만 한다. 아메디 고디니가 겪은 역사적 사건과 격동기를 통해 이 회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카레이스에 매료된 아메디 고디니는 10대부터 스포츠카 브랜드 마세라티에서 근무했다. 동경하던 업체에서 순탄한 기술직으로 근무하려던 그의 꿈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태리 군을 통해 참전한 그는 전쟁 직후 프랑스인과 결혼해 파리에 정착하게 됐으며 금세 아들도 낳게 됐다. 카레이스에 너무나 열광적으로 매달린 그는 이태리 피아트 차를 몰고 F1의 모태인 그랑프리모터레이싱(Grand Prix Motor Racing)과 프랑스의 대표적 경기 르망24시에도 참가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는 모국 이탈리아의 피아트 차를 직접 개조해 출전하곤 했다.

얼마 안돼 그는 앙리 피고찌(Henri Pigozzi)라는 인물과 친한 친구가 되는데 이태리에서 건너와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둘은 금세 가까운 친구가 됐다. 마침 앙리 피고찌는 프랑스에 있는 피아트 조립공장의 책임자였다. 전후 폐허가 된 프랑스에는 제대로 된 자동차가 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에 피아트의 인기는 날로 커갔다. 결국 피아트와 피고찌는 제대로 된 공장을 세우기로 합의하고 제휴하에 심카(SIMCA)라는 기업을 만들어낸다. 심카는 하루아침에 프랑스 최대 자동차 회사가 됐다.

당시 30대였던 아메디 고디니는 이미 유명 레이서일 뿐 아니라 피아트에 대한 이해도 높았기 때문에 친구의 회사 심카에서 중책을 맡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메디 고디니는 실제로 심카에 입사 후 모터레이스 부서를 만들어 자신이 수장을 맡았다. 또 피아트 엔진을 간단한 개조해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 보임으로써 그의 '마술사'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그의 아들을 엔지니어로 고용하고, 레이스경기에도 참여시켰다.

▲ 1950 심카 고디니(Simca Gordini) T15s 르망 24시 머신

고디니는 1946년부터 이름을 딴 자동차 심카-고디니(Simca-Gordini)를 내놓았는데, 심카는 이를 통해 각종 자동차 레이스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고디니는 1950년부터는 F1에까지 참가했다. 초반엔 아들을 F1에 출전시키기도 해봤지만 성과가 좋지는 않았다. 고디니는 이미 1951년에 심카를 떠났지만 심카의 지원은 계속됐다. 1956년까지 심카의 이름을 붙인 심카-고디니 F1팀과 자신의 이름만을 딴 고디니 F1팀을 각각 참가시켰다.

◆ 르노-고디니, 그 성공적 만남

고디니는 레이스의 성공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노익장 '아메디 고디니'는 르노 자동차들의 튜닝도 함께 했는데, 이를 통해 50-60년대 르노가 여러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르노는 1957년, 당시 르노 다우피네의 고성능 버전인 다우피네-고디니를 생산하기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물론 고성능이라고는 하지만 845cc 엔진으로 36마력(기존 27마력)을 내는 정도의 튜닝이었다. 0-100km/h까지 가속에 37초가 걸리던 것을 30초 안에 끝마쳤으니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르노는 그 밖에도 르노 카라벨레, 르노5알피네터보, 르노8, 르노12, 르노17 등 다양한 차종의 고디니 버전을 내놨다.

▲ 고디니 타입 32, 1956년 F1 머신

아메디 고디니는 르노 엔진 튜너로서 르노 차를 르망24시에 출전 시켰는데, 고디니가 손본 차는 다른 차보다 월등히 빨리 달렸기 때문에 '기계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당시 이미 환갑을 넘은 나이였지만 적어도 1962년부터 1969년까지는 고디니의 손길이 닿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디니의 실력은 워낙 널리 알려져 르노팀은 물론 경쟁자였던 알피네(Alpine)의 엔진을 튜닝하기도 했다.

1968년 70살을 맞이한 고디니는 은퇴하며 회사를 르노에 매각했다.(스포츠카 제조사였던 알피네 또한 1976년에 르노가 인수했다) 그가 은퇴한지 꼭 10년이 지난 1978년, 80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후 '고디니'의 명성은 전설로만 남아있다가 2009년 11월, 르노가 '고디니'브랜드를 다시 부활시켰다. 아메디 고디니가 태어난지 꼭 110년 되는 해의 일이었다.

현재 르노의 고디니 차량은 소형차인 '클리오 고디니 RS', '트윙고 고디니', '트윙고 고디니 RS', 소형 컨버터블인 '윈드 고디니' 등 총 4가지가 나오고 있다. 고디니는 죽었지만 그의 마술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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