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차 2세대 K9…"존재의 이유"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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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0 20:27
[시승기] 기아차 2세대 K9…"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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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을 찾기 힘들었다. 한 브랜드의 ‘대장’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디자인, 고급스러움, 성능 등 각분야에서 전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스타’들의 입김이 잘 느껴졌다. 여러 부분에서 2세대 신형 K9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했다. 하지만, 이미 K9 수준의, 혹은 K9을 넘어서는 대형 세단은 많다. 단점도 찾기 힘들었지만, 이런 수많은 명차 중에서 K9을 선택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찾기 어려웠다.

실패한 이전 세대의 흔적과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디자인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K9처럼 급격한 디자인 변화를 주는 차는 요즘 시대에 흔치 않다. 디자인에 대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다 돈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브랜드는 이전 세대의 디자인을 계승하고 다듬는데 초점을 맞춘다. K9은 디자인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그덕에 그동안 여느 기아차에서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이 담겼다. K9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인 만큼 이 디자인 요소가 다른 차종에도 적용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앞모습에서 스팅어의 느낌이 조금 났다. 그것 외에는 기아차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다른 브랜드의 차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새로웠다. 그리고 꽤 낯설어서, 기아차가 고심한 여러 디자인 요소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확 눈에 띄는 부분도 있었다. 반짝이는 펄로 가득한, 깊이 있는 도장이나 입체적인 헤드램프와 리어램프의 내부 디자인은 탁월했다.

K9의 크기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숏바디와 거의 비슷하다. 큰 차다. 그런데 도로를 달리는 K9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다. 뒷모습을 보며 K9을 쫓을 때나, 아웃사이드 미러에 비친 앞모습을 봤을 땐 큰 차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위압감이 적었다. 하지만 세련된 느낌은 강했다. 긴 휠베이스와 유려한 루프 라인, 쭉 뻗은 벨트 라인 덕분에 늘씬해 보였다. 옆모습의 비율은 K9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실내는 무척 호화로웠다. 역시 이전 세대 모델의 흔적은 없었다. 부분부분의 디자인은 어디선가 많이 본듯 했지만,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신선했다. 대시보드는 계단식으로 꾸며졌다. 각 층은 가죽과 나무, 금속 등으로 소재를 달리해서 구분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각 소재는 단연 국산차 중에서는 가장 고급스럽다. 질도 좋을 뿐더러 마감도 훌륭했다. 인테리어의 가죽 색상은 4가지, 원목은 4가지, 우드그레인은 3가지로 선택할 수 있다.

12.3인치 슈퍼비전 클러스터와 터치 스크린에서는 ‘한국차’의 장점이 잘 살아있었다. 화려한 그래픽과 최적화를 통해 눈이 즐거운 환경을 제공했다. 사용법도 어려울 것이 없고, 터치, 조그 다이얼 등 사용 환경도 좋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을 잘 분석했고, 나름의 해석도 더했다.

디자인이 급격하게 진화한 것에 비해 주행감각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1세대 K9도 충분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변화보다는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보완이 주로 이뤄진듯 했다. 그래서 기존의 단점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이전 세대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부분도 있었다.

1세대 모델과 마찬가지로 신형 K9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했고, 방음 및 차음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 또 언더커버도 꼼꼼하게 제작했다. 도심에서는 엔진소리를 듣기 힘들 정도로 소음 억제가 잘 됐다. 물론 진동도 없다. 버스나 트럭의 걸걸한 소음도 실내로 크게 유입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바람은 차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타이어의 마찰음이 미세하게 들릴 뿐, 실내는 몹시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가 실내를 채웠다. 아마도 스팅어에 적용된 사운드 제네레이터가 그대로 탑재된 것 같다. 엔진과 배기음의 조율도 적절했고, 속도를 높이는 과정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스포츠 모드는 소리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차의 여러 부분이 바짝 긴장한게 몸으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부드러웠던 엔진이 힘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변속기, 스티어링, AWD도 성격을 바꿨다. 고속주행에서의 안정감은 흠 잡을게 없었다. 도심에서 한없이 물렁했던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바퀴와 차체를 꽉 붙들었다. 요철이나 평평하지 않은 도로를 지날 때도 요동치지 않았다. 7시리즈가 떠올랐다. 스포츠 모드에서의 디지털 클러스터, 사운드, 주행감각 등은 7시리즈와 흡사했다. BMW M을 진두지휘했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의 터치가 느껴졌다.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진화는 놀라웠다. 기아차 장웅준 ADAS 개발실 실장은 총 18가지의 운전자보조시스템이 K9에 적용됐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비가 탑재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방향지시등 조작에 따라 아웃사이드 미러에 부착된 카메라가 영상을 디지털 클러스터에 보여주는 후측방 모니터(BVM)은 경쟁 모델에서 볼 수 없는 기능이었다. 아직 어색하긴 했지만, 아웃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는 것보다 더 넓은 시야를 제공했다.

스스로 속도를 높이고, 줄이는 과정도 더이상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지정된 속도를 급히 맞추지 않았다. 진짜 사람이 운전자는 것처럼 부드럽게 가속하고 감속했다. 차선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스티어링을 조종하는 것도, 모터의 토크 분배를 개선해 이질감이 들지 않게 끔 했다. GPS 연동을 통해 곡선 구간에서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터널 진입 전에 모든 창문을 닫고, 내기순환 모드로 돌입하는 시스템도 적용됐다. ADAS 시스템은 점차 자율주행에 가까워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차체, 엔진, 섀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독일,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늦었지만, 자율주행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유일하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다.

신형 K9은 두루두루 완성도가 높았다. 굳이 트집 잡을 구석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예상했던 부분이었고, 신형 K9은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켜줬다. 소비자들도 신형 K9을 시승한다면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미 신형 K9의 완성도를 웃도는 플래그십 세단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훨씬 더 우월한 브랜드 가치까지 지니고 있다. 굳이 신형 K9을 선택해야 할 당위성이 적었다.

물론, 독일 플래그십 세단에 비해 가격은 절반 가량 저렴하다. 그런데 플래그십이 가성비를 내세우는 것은 한편으로 굴욕적이다. 스스로 브랜드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단순히 가격만으로, 한등급 아래라고 볼 수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를 신형 K9과 함께 언급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플래그십은 비싸게 만들고, 비싸게 파는 차다. 그런데 기아차에게서는 그런 자신감이나, 진취적인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

신형 K9은 좋은 차다. 하지만 매력은 적다.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뛰어나지만, 정성적인 부분은 부족하다. 1세대 K9처럼 여전히 따라가고만 있어서다. 기아차의 말처럼 완전히 새롭게 만들 작정이었으면, 전형적인 플래그십이 아닌 조금 더 자신만의 색깔과 매력을 지닌 플래그십이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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