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I-PACE..."전기차·SUV·스포츠카, 그 정체는"
  • 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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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5 18:49
[시승기] 재규어 I-PACE..."전기차·SUV·스포츠카, 그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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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단 하나의 차를 갖는다면, 그게 이 차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빠르고, 편리하고, 앞선 느낌이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건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였다. 첫 인상은 확고한 SUV 디자인이어서 오히려 놀랐던 기억이다. 전기차라면 흔히 그릴을 없애거나 뭔가 특이한 형상을 갖도록 디자인하곤 하는데, 그릴을 없애는 대신 오히려 크게 만들어 당당함을 만들고 SUV 형상을 갖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그릴 상단에 구멍을 휑하니 뚫었다.

첫 인상은 보닛이 높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 보닛은 아래 있고, 윗부분은 날개 역할만 하는 셈이다. 재규어는 이를 가리켜 바이패스(bypass) 그릴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지난달 28일, 글로벌 최초의 시승회가 열려 참석하게 됐다. 재규어는 기자들이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이에 대한 영상을 보여줬다. 에어로다이내믹 엔지니어 임젠피어스(Imogen Pierce)씨가 영상에 등장해 설명을 하는데, 놀라운 미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이안 서필드(Iaan Suffield)는 I-PACE가 엔진을 통한 역동적인 사운드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스피커를 통해 고성능 전기차 사운드를 만드는데 노력했다고 했다. 재규어의 헤리티지를 이어받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고 해서 기대가 더 커졌다. 

여러 종류의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비행기는 포르투갈 남부 작은 휴양지 파로 공항에 착륙했다. 

"이 차가 이렇게 늘씬했었나?"

포르투갈에서 다시 만난 재규어 I-PACE는 의외로 SUV 느낌이 아니었다. 22인치 거대한 휠에 차체 색상도 빨강이라 마치 스포츠카를 보는 듯 했다. 대체 이 차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차체는 다소 높아 SUV 디자인 같기도 한데, 각각의 요소는 스포츠카의 비율을 갖고 있으며 후면은 세단 느낌도 있었다. 휠베이스는 거의 3미터에 육박해 럭셔리 대형차 느낌마저 있다. 

재규어는 이 차를 '새로운 SUV'라고 칭한다. 앞으로 전기차는 그저 다양한 종류의 파워트레인 중 하나가 될 뿐 그리 색다르게 강조할 일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저 'SUV'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때로는 스포츠카로, 때로는 럭셔리 세단의 느낌으로 탈 수 있는 차기 때문이다. 

# 이 차는 SUV..."내비게이션이 왜 이상한 길로 안내하지?"

내비게이션은 산 꼭대기를 가리켰다. 차로 올라갈만한 길이 전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 세팅이 잘못됐나보다하고 길을 그냥 지나치려는데 관계자가 손짓을 하며 막아세운다. 저기로 가야해요. 그가 가리킨 곳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었다. 

이 차는 바닥에 90kWh 배터리를 싣고 있는 자동차인데 물속으로 들어가라니, 이래도 되나 싶었다. 옆자리의 기자는 개울의 물고기 다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주변을 웃겼다. 물 깊이는 30cm 정도라는데 보기엔 그보다 훨씬 깊게 느껴졌다. 차로 개울을 지난 경험은 여러번 있었지만 고요한 가운데 찰랑찰랑 물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개울을 지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가 아니라 배를 탄 것 같았다. 즐거운 경험이어서 곧바로 또 해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 차에는 에어서스펜션이 장착된다. 차체를 40mm 낮추거나 50mm 높일 수 있어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차를 높이면 최대 50cm의 물을 지날 수 있고, 진입각 진출각도 커져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도 문제 없다고 했다. 

이어 등장한 길은 가파른 산길이었다. 진입각이 커서 바닥에 닿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이게 뭐 가파르냐는 식으로 쑥쑥 올라갔다. 

다만 여름용 고성능 스포츠타이어가 끼워진 탓에 언덕에서 섰다가 급가속을 하면 이따금씩 미끄러져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오프로드에선 모름지기 일정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속페달을 세심하게 밟는게 중요했다. 전지형컨트롤(ATPC=All-Terrain Progress Control)기능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필수적이었다. 시속 2km에서  시속 30km까지, 산길을 달리기 위한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프로드를 마치 고속도로 타는 듯한 기분으로 바꿔준다. 랜드로버와 재규어에만 있는 기능인데, 어찌나 편리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험로 주행 성능도 우수하다. 차체 강성도 뛰어난데 앞뒤 바퀴에 각각 모터가 장착된 4륜구동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앞바퀴와 뒷바퀴는 아무런 기계적 연결이 돼 있지 않고 한쪽이 미끄러지는 순간 전자적으로 다른쪽 바퀴에 토크를 늘리는 방식으로 구성 돼 있다. 어떤 지연도 없이 즉각적이어서 의외의 기분이 든다. 토크 70kg-m이 넘는 괴력인데도 오프로드에서 어지간히 밟아도 차가 전혀 미끄러지지 않는 마법을 보여준다. 

트렁크 공간은 5명이 타더라도 656리터, 뒷좌석을 접으면 1453리터까지 증가한다. 충분한 공간을 갖춘 본격적인 SUV다. SUV 구매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 할 수 있는 구성을 갖춘 셈이다. 

# 이 차는 최고로 편리한 장거리 전기차다

미국 EPA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380km에 달한다. LG화학이 공급하는 432개의 리튬이온 파우치셀을 이용하는데, 90kWh의 용량을 갖고 있고, 수랭식(Liquid-cooled)으로 항상 최고 성능을 발휘하게 만들어져 있다. 미국의 일반 운전자의 출퇴근 왕복거리가 60km 정도라는 통계가 있는데, 일주일 중 하루라도 충전하면 내내 걱정 없이 탈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시승에선 포르투갈 남부 해안 도로를 이틀간 2시간 넘게 시승하는 코스를 만들어놨다. 기자들은 짓궂게도 어떻게든 전기를 더 써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최고속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해안도로를 오르내리고, 서킷을 달리는 등 갖은 노력에도 전기를 1/4도 채 쓸 수 없었다. 너무나 여유로워서 나중엔 배터리 잔량 따위는 잊고 즐기게 됐다. 

배터리는 막히는 길이든 뻥뚫린 길이든 크게 줄지 않고 남은 거리를 충실히 주행했다. 운전자의 주행 패턴을 인식해 남은 주행 가능 거리를 알려준다고 했다. 내비게이션도 독특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몇퍼센트의 전기가 남는지를 보여주도록 구성됐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밤새 충전 케이블을 꽂아놓는데, 이를 이용해 운전자가 차에 타기 직전에 적절한 온도로 세팅하는 기능도 있다. 전기차에서는 겨울철 히터를 이용하거나 여름철 에어컨을 이용하려 할 때 전기를 꽤 소비하게 되는데, 배터리가 아닌 충전케이블 전원으로 실내 공기 온도를 미리 조절해놓는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배터리 수명도 늘리고 운행 거리를 늘리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파워트레인이 전기차라서가 아니라, 인테리어가 풍기는 첨단 이미지만으로도 이 차는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R-N-D 버튼을 눌러 작동하는 기어노브는 이제 그리 놀랍지 않지만, 누르거나 당기고 돌리는 온도조절 다이얼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합 했을때 얼마나 더 편리한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지는지 업계에 한수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 이 차는 스포츠카다...서킷에서 드러나는 '진가'

포르투갈 남쪽의 알가르베 서킷에 올랐다. 전기차를 오프로드에 올리는 것도 그랬지만, SUV를 서킷에 올리다니 다시금 놀랐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헉’하는 외마디가 절로 나왔다. 400마력 엔진을 갖춘 차는 흔치 않다. 특히 토크가 70kg-m이 넘는 차, 그것도 정지상태부터 뿜어내는 차는 더 드물기 때문이다. 놀라운 가속력은 사운드 제너레이터와 잘 버무려져 운전자에게 흥분감을 북돋워줬다.

코너링은 더 섹시하다. 차체의 기울어짐이 거의 없는 상태로 쓱 돌아나가는 느낌은 레이스카에 오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이내믹한 주행을 하면 이를 차체는 이를 인식해 절로 10mm 낮춘다. 차체 바닥으로의 공기가 적게 들어가고 전체 면적을 줄여 공기 저항을 낮출 뿐 아니라, 서스펜션을 더욱 단단하게 세팅하기 위해서다.  

배터리의 무게 때문에 모든 전기차는 무게감이 있지만 재규어는 알루미늄을 적극 도입해 무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2.2톤 정도니까 테슬라 모델X는 물론 모델S보다 훨씬 가볍다. 물론 가솔린차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알루미늄의 비중은 무려 94%로 기존에 있었던 어떤 재규어보다 알루미늄 비중이 높다. 50:50의 무게배분을 했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절개 차체의 안쪽을 살펴보니 리벳이 빈틈없이 채워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하부의 배터리팩으로 인해 차체의 비틀림 강성을 대폭 강화했다. 36kNm/도 에 달한다고 한다. 

서스펜션도 전륜은 F타입에서 봤던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거의 그대로 장착했고, 뒷부분은 F페이스에서 봤던 인테그랄링크 서스펜션으로 구성했다. 여러 차의 장점을 한데 모았다는 말이 실감났다. 덕분에 아주 단단하고 다이내믹한 주행감각을 보여준다. 

에어로다이내믹도 멋지다. 0.29Cd의 공기 저항계수를 보여주는데 리어스포일러는 플로팅 타입으로, 전면에는 바이패스 에어로다이내믹을 이용해 공기 저항을 줄이고 안정성도 높였다. 전기차여서 가능한 디자인이다.

# 이 차는 어떤 차도 아니다...새로운 세그먼트다

이 차는 캡포워드를 극대화 했다. 전면으로 극단적으로 옮겨 보닛이 매우 짧다. 가솔린 엔진이 없는 덕분에 전면에도 트렁크 공간이 있다. 여담이지만 테슬라는 이 부분을 가리켜 프렁크(Front+Trunk=Frounk)라고 부르는데 영국인들은 트렁크를 부트(boot)라고 부르기 때문에 재규어 측은 이 부분을 프루트(Front+boot=Froot)라고 부른다. 핸드백 하나 들어갈 공간. 너무 작아서 뭘 넣을 수 있을까. 했더니 한국 기자 한명이 "프루트(과일)나 넣을 수 있겠다"고 해서 웃었다. 

천장은 파노라마 글래스 루프를 이용했다. 여름에도 더워지지 않도록 자외선 적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유리라고 했다. 실제로도 뜨거운 포르투갈의 날씨에도 열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개방감을 높이는 것은 물론 두께가 얇아 머리 공간을 더 넓혀줬다. 차체 하단에 배터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전고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넓고 길고 넉넉한 차체다. 가만 보면 전기차는 원래 이런 형태여야 배터리도 많이 실을 수 있고 성능도 극대화 할 수 있는 걸로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형태의 자동차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겠다. 

다만 전기차의 특성이라는건 가솔린 자동차와 확연히 다른데, 미묘하게 어색한 지점을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받아 들이도록 할 것인지는 여전히 남은 숙제다.  

국내선 올가을부터 판매를 개시할 계획이다. 기본 모델인 S등급은 국내 판매되지 않고 디자인과 옵션 사양이 높은 HSE부터 퍼스트에디션까지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에서 사전 계약을 위해 밝힌 가격은 1억-1억2000만원 정도인데, 판매를 개시하면 전기차 보조금을 2000만원 이상 받을 수 있어 그보다는 조금 부담이 적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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