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을 다녀와서
  • 제주=김상영
  • 좋아요 0
  • 승인 2018.12.08 01:07
[주간김상영]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을 다녀와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년전, 아이돌 가수들의 역사 의식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반향은 컸죠. ‘반만년’ 역사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 젊은이들의 역사 의식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고 비판하는 세대의 목소리가 컸고, 젊은 세대들은 “내게 필요한 것만 배웠다”고 밖에 변명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비판을 수용하고 한국사 자격증을 딴 기특한 아이돌도 있었죠.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지식은 사람의 시야를 넓혀주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지나온 날에 대한 복기가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슬러 올라 뿌리를 찾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당장 교과서를 펼쳐놓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공부와는 다른 것이죠.

박물관은 과거의 무언가를 살펴보고, 조금 더 충만해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곳입니다. 책으로 수없이 보았던 고려청자나 달항아리도 박물관의 조명 아래서는 더 영롱하게 보이고, 요절한 미술가가 생전에 쓰던 도구들은 그의 쓸쓸함을 품고 있고, 얼굴 모를 사병의 전투복과 수통은 치열하지만 덧없는 삶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물관은 우연한 발걸음으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곳이죠. 스스로 깊이 빠져들 용의가 있다면, 박물관을 나설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박물관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박물관을 다녀온 후, 메르세데스-벤츠가 과연 다른 독일 브랜드와 동일 선상에 놓여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독일 프리미엄’이라고 한데 묶는 브랜드의 서열이 딱 정해지는 기분이었죠. 물론, 박물관의 규모나 전시차의 대수도 메르세데스-벤츠가 압도적이지만, 그것보다 “왜 우리가 박물관을 세웠는지 알겠지?”란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달 5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문을 연 ‘푸조·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이처럼 확고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아기자기하게 잘 짜인 곳이었습니다. 예상밖으로요. 막연히 얘기만 들었을 때는 ‘전시장에 올드카 몇 대 세웠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한불모터스는 푸조·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 건립을 위해 2년간 약 110억원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송승철 대표이사는 이 기간 동안 서울-제주도를 100번 넘게 오갔다고 합니다. 주차장에 무심하게 놓인 조각 하나, 나무 한 그루 등도 각별하게 신경썼다고 강조했고요.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세워졌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느낌을 주기 위해, 박물관 앞 부지에는 33m 높이의 에펠탑도 세웠습니다. 멀리서 보면 꽤 그럴싸 합니다.

박물관에는 웅장함으로 보이는 이를 압도하는 ‘139 A 토르피도(1911년)’, 숫자로 된 자동차 모델명을 체계화 한 ‘201 C 세단(1930년)’, 그 시절 고안했다고 믿어지질 않는 에어로 다이내믹의 산물 ‘610 세단(1934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사용되었던 ‘604 세단(1975년)’ 등의 푸조 클래식카가 전시됐습니다.

시트로엥은 시대를 앞선 자동차라고 평가받는 ‘트랙숑 아방(1934년)’, 수십년간 프랑스의 국민차로 군림했던 ‘2CV(1948년)’, 프랑스의 예술 정신이 담긴 ‘DS21(1965년)’ 등을 전시했습니다.

한불모터스는 박물관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직접 클래식카를 구입하기도 했고, 프랑스 본사에서는 32대의 차량을 장기 임대해주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이외 지역에서 푸조·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본사 측에서도 매우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보유 차량이 더 많아지면 테마 기획전, 클래식카 시승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클래식카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푸조와 시트로엥의 오랜 역사와 낯선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수단이 될 것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박물관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꾸며놓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공간의 제약으로 전시가 함축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자동차 브랜드의 서킷 프로그램과는 분명 차별화된 이벤트였습니다.

푸조와 시트로엥은 메르세데스-벤츠 만큼이나 역사가 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기아차가 라이선스 방식으로 푸조 604를 판매했죠. 두 브랜드는 은근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알 기회는 부족했습니다. 가볍게 떠난 제주 여행에서 이들의 박물관을 찾아, 전시된 차량을 살펴보고, 푸조·시트로엥의 역사에 관한 체험존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나면, 아마도 도로에서 만나는 푸조·시트로엥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