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 펠리세이드...스스로 몰랐던 우리의 취향
  • 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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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4 11:06
[시승기] 현대 펠리세이드...스스로 몰랐던 우리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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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승용 차종은 그랜저와 싼타페였다. 기아 카니발이 그 다음이고 쏘렌토 인기도 만만치 않다. 가까운 일본 시장에서는 이 정도로 큰 차를 찾아보기 어렵고, 미국시장도 트럭을 제외하면 도요타 RAV4나 혼다 CR-V 같은 소형SUV가 주축이다. 큰 패밀리카가 인기인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독특한 점이다. 대가족 문화가 남아 3대가 함께 차를 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막연히 해외 시장을 흉내낼게 아니라 우리나라만을 위한 차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독특한 시장에 걸맞는 자동차는 어쩌면 3열까지 온전하게 자리잡은 대형SUV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팰리세이드를 처음 본 느낌은 그랬다.

# 실로 엄청난 인기…이 차가 뭐기에

그동안 신차를 발표하면서 이렇게까지 인기를 끈 차종은 없었다. 물론 그랜저나 쏘나타 같이 이름만 듣고도 계약부터 하는 차종이 있지만 이 차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기대감도 없고 그리 알려지지도 않았던 신차가 불과 일주일만에 2만대 넘는 계약고를 올린다니 현대차 직원들 스스로도 무척 놀란 상황이다.

이 차가 대체 뭐기에 이럴까.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8인승이라는 점이다. 기존까지 국내 SUV들은 좁은 공간을 마지못해서 내준것 같은 3열이었는데, 팰리세이드에 와서야 차에 탄 모든 승객이 불편을 겪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카니발이나 스타렉스 같은 미니밴이 없던건 아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여러 식구를 태워야 한대도 길쭉한 미니밴으로 출퇴근하긴 추호도 싫다는 층도 분명 있었다. SUV면서 더 많은 승객이 탈 수 있는 차량. 여기엔 확고한 소비층이 있는데도 경쟁사들은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지 못했다. 쉐보레는 트래버스를 아직 가져오지 못했고, 혼다 파일럿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잘 나가는 포드 익스플로러는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노후모델이었다. 

# 외관, 실내 공간 압도적

차체 길이가 거의 5미터(4975mm)에 달한다. 풀사이즈SUV들은 워낙 기다란만큼 자칫 미니밴처럼 느껴지기 쉽다. 미니밴이 아니라 SUV 이미지를 갖도록 디자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이 차는 싼타페와 달리 오프로드 속성을 반드시 짚고 가야 했을 것이다. 

전면부도 강인하고 스키드플레이트 이미지의 부품이 더해지고 바퀴 주변은 오프로더 특유의 클래딩이 덧대져 있어 오프로더 느낌을 더했다. 다만 온로드에서의 연비와 주행감각을 해치지 않기 위해 최저 지상고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어서 바닥면 전면부도 30cm가 채 되지 않는다. 중간적인 위치를 잘 설정한 셈이다. 경쟁모델이라 할 수 있는 익스플로러에 비해 전장은 조금 짧고 차체도 조금 낮지만 오버행을 극단적으로 줄여 진입각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오프로드를 넘나드는 터레인모드 전환 다이얼은 현대차 처음으로 제공되는데 스노우모드와 샌드, 머드 모드를 지원한다. 스노우모드는 2단으로 출발을 하면서 토크가 적게 전달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겨울철 눈내린 언덕길 등을 오를때 쓸모가 많겠다. 눈이 다져진 길에선 아주 작은 토크로 살살 진행하는 편이 눈을 파고 드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2단 출발은 없던 기능은 아니고 기어를 수동모드로 바꿔서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나머지 모드도 실제로 체감상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오프로드를 주행하는 SUV 느낌을 물씬 풍긴다는 점에서나 미관상 좋은 장치다. 

실내 크기를 좌우하는 휠베이스(2900mm)는 경쟁모델보다 더 길다. 더구나 외관의 좌우 폭은 더 작은데 특히 3열의 좌우 폭은 10cm나 더 넓어서 3명이 앉을 수 있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3열 레그룸은 경쟁모델보다 약간 짧다.

2열은 3인이 앉는 8인승 모델과 2인이 앉는 7인승 모델이 있는데 각각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다만 7인승 모델에만 통풍시트가 들어가고 팔걸이까지 제공된다. 4륜구동 모델인데도 2열 센터터널을 거의 없다시피하게 만든 점도 놀랍다.

수납 능력은 굉장하다. 트렁크 측면 버튼만 누르면 3열 시트를 전동으로 접는건 물론 세울 수도 있다. 2열 시트는 기계식으로 접는 것만 전동으로 되고 세울때는 수동이다. 주로 3열만 접게 되는 만큼 이 정도면 적절한 선택이다. 3열을 접지 않고도 폭이 넓어서  골프채를 가로로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150cm 정도 길이의 스키나 스노우보드라면 3열을 접고 대각선으로, 2열까지 접으면 침대 매트리스를 실을 수 있다. 트렁크 폭도 넓어 골프백이 가로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 안전 편의 첨단 기능이 최상급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면 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앞차를 묵묵히 따라간다. 아무 페달도 밟지 않고 3분 정도는 핸들을 잡지 않아도 스스로 운전한다. 하염없이 막히는 길을 만나도 짜증나는 대신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차에게 운전을 맡기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다. 경쟁사도 모두 어댑티브 크루즈 기능을 갖추고는 있는데, 정지와 재출발까지 지원하는차는 드물었다. 시속 20km 정도에서 해제 되기 때문에 정작 막히는 길에서는 큰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 차선을 유지하는 LFA가 합쳐지면 세상 이렇게 편리한게 다 있나 싶어진다. 차선 이탈을 방지하는 기능은 그저 차선 이탈을 막는게 아니라 차선 한가운데로 올곧게 달리는게 꽤 능숙하다. 얼마전까지 나온 LFA와 크루즈컨트롤보다 한단계 더 발전했다. 이제는 굽은 길이나 과속카메라를 만나면 속도를 스스로 낮추고 가속할 상황에선 스스로 가속한다. 신차가 나올때마다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신뢰감이 늘어 이젠 꽤 든든한 기분으로 맡길만하다. 현대 스마트센스라는 이름은 이런 크루즈컨트롤과 LFA등 여러 기능이 합쳐진 이름인데, 같은 스마트센스라도 차종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적어도 팰리세이드에 스마트센스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땅을 치고 후회한다. 

# 2.2리터 디젤엔진은? 왜 3.0리터 디젤엔진이 들어가지 않나

2.2리터 디젤엔진만 있어서 아쉽다는 얘기도 꽤 나온다. 그러나 이건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현대차가 만든 3.0리터 디젤 S2엔진은 토크가 56kg.m를 훌쩍 넘는 반면 전륜구동으로 이 정도 힘을 받아내는 변속기가 세계 어떤 변속기 업체에도 없기 때문이다. 전륜 변속기는 후륜구동 변속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 상대적으로 큰 토크를 받아내지 못한다. 반면 후륜구동인 기아 모하비나 내년에 등장하는 제네시스 GV80는 신형 직렬6기통 3.0리터 디젤엔진을 장착할 수 있다. 

물론 기존 베라크루즈가 전륜구동이면서도 3.0리터 디젤 모델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3.0리터를 기대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베라크루즈는 후륜구동인 모하비와 같은 엔진을 넣으면서도 출력을 크게 낮추는 디튠(De-tune)을 했을 정도였는데, 신형 6기통은 그보다 더 강한 출력으로 업그레이드(60kg.m급) 됐기 때문에 출력을 낮추면서까지 장착하는게 무의미해진다. 

그러면 이 차의 2.2리터 디젤 엔진이 정말 아쉬운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회전에서는 무척 조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작게 속삭여도 대화에 문제가 없는 정도다. 다만 급가속을 하거나 언덕을 올라가는 경우 rpm이 높아지는데 이 부분에서는 영락없는 4기통 R엔진의 소리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크기면에선 이전 차종들에 비해 작은 편인데 차량들은 대체로 주행 연한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실내는 풍절음과 엔진음이 극도로 억제돼 1열은 매우 조용하고 3열은 주행소음을 다소 느낄 수 있다. 엔진룸이나 배기음은 아니고 러기지룸을 통해 유입되는 바퀴 구르는 소음이 더 크다. 진동도 3열이 미세하게나마 더 큰데, 그렇다고 과거 스타렉스의 4열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은 전혀 아니고, 탈만한 정도의 공간임엔 틀림없다. 

시속 100km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9초로 경쟁 모델들에 비해 빠른 편이고 연비는 12.6km/l로 동급에서 가장 우수하다. 1900kg이 넘는 거구, 이 차는 2톤이나 되지만 경쟁차종들에 비해서 적게는 200kg에서 많게는 400kg까지도 가벼운 덕이다. 

이 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될지도 모르는 지점이다. 기존까지 현대차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건 경쟁 모델에 비해 무겁다는 점이었다. 이 차가 가볍게 나온 이유는 이전에 비해 초고장력 강판을 월등히 많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차가 60kg급 이상을 초고장력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 차는 150kg급 핫스템핑 초고장력강을 대거 이용했고, 100kg급 이상을 앞뒤로 두르다시피 했다.  특이한 점은 충돌 테스트를 하지 않는 후면에도 초고장력강을 장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차가 가벼워 진 것은 물론이고 테스트를 하지 않는 부위까지 안전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조금씩 현대차를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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