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아마존의 제프베조스(Jeff Bezos)가  말했다. “나는 전혀 분석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아요. 거의 매번 직관적인 의사결정을 하죠”

얼핏 듣기엔 제대로 정보를 분석하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감으로 때려 맞춘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그의 말이 있기 전부터 서구사회에선 분석적(analytical) 혹은 직관적(intuitive)인 의사 결정 중 어느쪽이 더 좋은 결정을 내리는지를 놓고 수많은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나이가 ‘나는 직관적인 결정을 한다’고 단언 할 정도라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알려졌다시피 제프베조스는 1994년에 온라인 책판매점 아마존(Amazon)을 만들어 세계 최대의 온라인 스토어로 키워낸 인물이다. 2000년에는 블루오리진이라는 우주여행 회사를 차려, 올해말엔 민간 우주여행을 시작할 계획이고 2013년에는 쓰러져가던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를 인수해 다시금 최고의 온라인 매체로 거듭나게 했다.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인건 엉뚱하게도 온라인서버(AWS) 비즈니스다. 여러가지 사업 분야의 연관 고리를 이어보려 해도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그때그때 직관적이고 어찌보면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투자한 회사들 하나하나가 모두 각 분야에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기업들인것만큼은 분명하다.

요즘 자동차 회사들은 '직관'이라는 노력 자체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죄악시 하는 듯 하다. 차량을 개발하기 위한 그룹 인터뷰를 가보면 안다. 기껏 소비자들을 모아놓고 한다는 고민거리 대부분은 수백개의 헤드램프 디자인 중 어떤 것이 많은 표를 얻는지, 차체 높이를 1cm 높이는게 좋을지 낮추는게 좋은지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들이고 이걸 토대로 데이터를 얻어 '분석적'이라고 한다. 

참가자들을 보면 다들 나름대로 이래저래 답하곤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관심없다. 차가 높아졌는지 낮아졌는지 길어졌는지 고장력 강판을 몇퍼센트나 썼는지... 그런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거나 구입에 고려할 내용이 전혀 아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건 <내 삶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다.

IT 업계는 일찌감치 이같은 움직임을 눈치챘다. 과거 개발자들은 무슨 코드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무슨 기능을 제시하는가(task)를 토대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최근 IT 업계가 추구하는 에자일(Agile)식 개발 방법은 철저하게 어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만들든 사용자가 원하는게 나오는게 중심이다. 완성도 데드라인에 끝나는게 아니라 공급한 후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자의 목표를 계속 따라가 준다. 완성품을 파는게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입장에선 그래야만 사용자가 계속 만족 할 수 있으니까.

엄밀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자동차 업계도 기능과 스펙 위주가 아니라 목적 위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차는 300마력 엔진이 달렸구요. 헤드램프는 멀리까지 비춥니다. 와이퍼도 최고급이구요. 깜박이도 LED구요…”라고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이제 “이 차를 타면 여자(남자)들이 꺼뻑 죽습니다”라고 한마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지옥의 레이스서킷인 뉘르부르크링에서 누구보다 빠르니까” 혹은 “이 디자인이 여성(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에” 라는 둥 원초적인 사안도 좋겠다. 

이 차는 달리는 극장이거나 오락실이라거나, 달리는 음악실, 응접실이라거나 하는 것도 좋다. 어쩌면 과거 자동차 동호회에서 애용하던 'CB 무전기'처럼 주행중인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단체 드라이빙을 할수 있게 해주는 차는 왜 없을까. 개발당시는 생각치 못했는데, 출고 후에 보니 자율주행 기능이 중요해져서 업그레이드까지 해주는 차는 또 왜 없을까. 자동차가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간다는데 왜 그 많은 택시는 여전히 전용 모델 하나 없이 자가용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을까. 카쉐어링을 위한 기능은 대체 뭐가 있나. 

요즘의 자동차는 철저히 기능과 생산자 중심으로 돼 있지만 자동차의 시초는 역시 목적과 경험을 중심에 놓은 물건이었다. 차를 가짐으로써 기동성이 좋아지고, 비즈니스의 경쟁력이 생기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풍요로움의 상징과도 같았다. 지금의 자동차 회사는 목적을 잃고 똑같은 물건에 디자인과 구성만 조금씩 바꿔 만드는 구차한 일만 하고 있는데, 레드오션 속에서 계속 이런식이라면 결국 하나둘씩 퇴보하는 길 밖에 없다. GM이 세계에서 공장을 자꾸만 줄여가는건 수십년째 그런 일들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튀어 나와 모든 사람들의 삶을 바꿔놨듯 자동차 업계 또한 누군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게 아니라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지 아직 몰랐던 것을 만들어내야만, 적어도 그 방향을 추구해야만 이 암울한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동차와 3G망을 연결하는 커넥티비티는 차마다 장착된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별다른 활용 방안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과 차를 연결하면 음악, 교육, 오락, 커뮤니티, 만남…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텐데 기껏 할 수 있는거라곤 원격 시동을 걸어주는 정도고 그 또한 형편없는 수준에 그친다. 이미 만들어 놨는데도 운전자들이 쓰지 않아 발전하지 않았다는다는게 제조사의 생각이다. 하지만 제대로 이용하게 하려면 운전자의 삶에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럽게(seamless) 녹아들도록 설계돼야 한다.

이런 몇가지의 발전적인 도약을 위해서도 투자가 있어야 하고 이 투자는 직관적이고 때로는 무모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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