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푸조 508 GT…푸조다운 플래그십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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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3 10:28
[시승기] 푸조 508 GT…푸조다운 플래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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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508의 핵심은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플래그십이 꼭 쇼퍼드리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508은 푸조의 성격과 방향을 보여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508의 변화로 브랜드의 색은 더욱 뚜렷해졌다. 암팡지고 옹골차다. 단단한 기본기와 차값이 아깝지 않은 핸들링, 이제는 매력적인 얼굴까지. 푸조는 누구보다 푸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전 세대 508은 작은 뼈대에 큰 차체를 씌워둔, 발육이 덜 된 중학생이 아빠 정장을 몰래 입은 느낌이었다. 엉성했다. 푸조의 다른 작은 차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신형 508은 몸에 착 달라붙은 수트를 입었다. 거추장스러웠던 과장을 전부 걷어냈다. 신형 508의 크기는 절묘하다. 이보다 더 커지면 그건 푸조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다.

신형 508은 크기, 디자인, 성능 등이 딱 맞아떨어진다. 구성요소도 좋다. 특히 19인치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4 타이어는 신형 508의 민첩한 움직임을 주도한다. 엔진의 성격이나 성능을 생각하면 분명한 오버스펙이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옵션이랄까. 운전이 서툴러도 고갯길에서 디젤 엔진의 풍족한 토크를 느낄 수 있다. 운전이 능숙한 이는 타이어의 한계를 넘나들며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차체는 더 낮고 넓어졌다. 길이도 줄었다. 더 다루기 쉬운 크기가 됐다. 무게 중심도 낮아졌다. 푸조의 손맛은 여전하다. 치타처럼 휙휙 방향을 바꾸며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 푸조만큼 손맛이 좋고, 그 느낌을 한결같이 이어가고 있는 브랜드도 드물다. 두뼘을 채 넘지 않는 스티어링휠은 배꼽에 가깝게 놓였다. 처음엔 다소 낯설다. 그런데 조금 달리다 보면, 왜 다른 브랜드는 이 방식을 채용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좋다. 창의적이면서도 인체공학적이다. 운전자를 감싸고 있는 기어 노브, 각종 버튼, 호사스러운 나파 가죽 시트 역시 마찬가지다.

푸조는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회사다. 그동안 수많은 레이스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도 크고 작은 레이스에서 영예로운 순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과 업적이 양산차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1.8초만에 도달하는 괴물 같은 레이스카를 만들긴 했으나, 그 폭발력이나 감각이 양산차에 전달되지 않았다.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는 성능과 효율의 공존을 보여줬으나, 현실에는 효율만 전달됐다.

푸조도 이 괴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적어도 모터스포츠를 통해 푸조의 팬이 된 이들에게 실망을 안길 수 없었다. 그래서 ‘GTi’ 모델에 다시금 집중하고 있고, GT 모델도 폭넓게 만들고 있다. 신형 508 GT는 프랑스인들처럼 열정적이고, 사자처럼 매서운 구석도 가지고 있다. 여러 유럽 브랜드의 2.0리터 디젤 엔진 중에서도 성능과 효율이 가장 조화로운 편이다. 40.8kg.m에 달하는 최대토크가 끊임없이 508 GT를 내달리게 한다. 새로운 8단 자동변속기도 이전 변속기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동작하며,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의 대응력도 좋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마치 한명인 것처럼 성능과 디자인은 일체감이 높다. 사자 엠블럼이 한층 더 잘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됐다. 사자의 송곳니처럼 뻗어나온 LED 주간주행등, 순차적으로 발광하는 테일라이트, 섹시한 프레임리스 도어,  완만하게 깎인 루프, 활짝 열리는 테일게이트 등은 신형 508 외관 디자인의 핵심 포인트다. 푸조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질 비달(Gilles Vidal)은 호불호가 강하던 푸조의 디자인을 호감으로 바꾸고 있다. 최신 유행을 따르면서도 푸조만의 감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이 예전 푸조의 디자인과도 크게 동떨어지지 않아서 기존 푸조 마니아들까지 포용하고 있다.

PSA그룹의 인테리어 변화는 혁신적이면서 개별적이다. 푸조, 시트로엥, DS 등은 큰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 푸조는 가장 젊고, 남성적이다. 특히 푸조의 GT 모델은 마치 메르세데스-AMG처럼 고급스러움과 역동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푸조 브랜드를 뛰어넘는 좋은 소재를 많이 사용했고, 그것들이 기능적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콕핏’은 그 이름처럼 운전자의 집중력을 전투기 조종사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푸조의 변화는 고양이처럼 은밀했다.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볼보가 단번에 힘을 꽉 주었다면, 푸조는 살금살금 목표로 향했다. 신형 508의 변화는 단순한 디자인과 성능에 그치는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푸조다움으로 돌아가는 것. 본질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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