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유효기간이 궁금한 테슬라의 콩깍지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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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6 14:22
[Erin 칼럼] 유효기간이 궁금한 테슬라의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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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동차 분야와 거리가 먼 지인이 감격에 겨운 듯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테슬라 모델X를 시승하고 왔는데, 완전히 신세계를 경험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무엇이 어떻게 그리 놀라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전기모터에서 오는 파워풀한 주행감, 차선까지 알아서 바꿔주는 반자율주행기능, 머리 위까지 시원하게 이어지는 앞유리, 태블릿 다루듯 업데이트하며 조작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등.

자동차 이상의 새로운 물건이라는 듯 감격스럽게 이야기해 나갔지만, 테슬라뿐 아니라 수 많은 자동차를 접해 온 저의 입장에서는 이미 모두 다른 차에서 충분히 구현되어 있는 기능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전기차의 주행특성은 특정 브랜드가 아닌 모든 전기차의 기본적 공통사항이고, 자동 차선변경을 포함한 동급 수준의 반자율주행은 다양한 브랜드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머리 위까지 올라가는 앞 유리는 푸조시트로엥 미니밴에서 꽤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지요. 다만 태블릿처럼 보이는 좀 큰 모니터와 펌웨어 업데이트 기능 정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테슬라만의 특색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조금 신선할 뿐 첨단 기술도 어려운 기능도 아닙니다. 일반 차들도 하는 펌웨어 업데이트를 아이패드 다루듯 처리하고 그로 인해 추가된 기능을 조금 더 극적으로 연출 해줄 따름이죠.

이런 이유들로 테슬라의 주요 포인트들이 전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저에게는, 그러니까 일종의 ‘콩깍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이 제품의 허접한 마감재와 어설픈 디자인과 엉성한 조립품질만이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즉, 전통적 자동차의 잣대로 테슬라를 바라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너무 눈에 띄는 것입니다. 이미 타사들이 선보였던 기능들을 조금 더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내세운, 조립품질 떨어지는 신생회사 제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너무 가볍게 느껴집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기존 차의 소재나 인테리어, 조립품질 같은 디테일한 내막에 관심 없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타사의 첨단 기능들을 한데 모아놓고 커다란 모니터로 보여주는 테슬라의 현란한 첫인상에 화들짝 놀라 콩깍지가 생길 수 밖에요. 분명 이런 부분은 전통적 자동차회사들이 배워야 할 포인트이긴 합니다.

그래서 테슬라는 자동차 마니아가 아닌 전자제품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어차피 전기차는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마니아들이 아닌 얼리어답터들이 좋아할 만한 포장과 자극과 현란함으로 그들에게 콩깍지를 씌워 초기 전기차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한 것이지요. 정확히 제 지인이 그랬듯 말입니다. 그러나 테슬라의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과연 이 콩깍지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죠.

왕복 로켓도 쏘아 올리고 화성 이주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 일론 머스크. 이 인물의 신비스런 괴짜 이미지가 강하게 받쳐주는 것은 제외하고 이야기 하더라도, 테슬라가 사람들에게 콩깍지 씌울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자동차가 아닌 IT제품 이미지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위에도 언급한 펌웨어 업데이트나 커다란 모니터 등, 알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기능들을 전면에 내세워 사실은 별 다르지 않은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소한 치장성 요소들만 빼고 보면 테슬라도 모노코크 바디에 배터리와 모터를 실은 자동차일 뿐입니다. 현대의 전기차와 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마감이나 조립 등 제품의 완성도로 보면 코나 EV가 압도적으로 우수하고, 소재나 구조 등 근본적 부분에서의 차별성으로 보면 풀카본 보디로 만든 BMW i3가 훨씬 새롭습니다. 적어도 테슬라는 이러한 자동차들보다 완성도가 뛰어나지도, 심지어 새롭지도 않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첨단기능을 재빨리 탑재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테슬라의 반자율주행기능에 놀랐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확실히 기존 자동차 회사들보다 앞선 기능을 빨리 상용화했었기 때문이죠. 그것도 미리 심어놓은 기능을 펌웨어 업데이트로 ‘ON’한다는 신선한 이벤트를 통해서 말입니다. 다만 타사들이 기술이 없어 못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동차 신기술의 의미와 무게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전통적 제조사들이 조금 더 천천히 보수적으로 접근했던 것뿐이었죠.

테슬라 오토파일럿이 타사보다 다소 앞서 출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형적인 IT기업 마인드로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80%정도 검증됐으면 우선 출시해놓고 고객을 베타테스터 삼아 보완해 나가며 100%로 끌어올리는 방식 말이죠. 그 때문에 수 많은 오토파일럿 이용자가 본의 아닌 베타테스터가 되어 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쳤습니다. 게다가 현재에 와서는 사망자 없이 더 나은 완성도로 타사의 반자율주행 기능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요. 이제는 테슬라만이 갖춘 놀라운 기능이랄 게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옛날 새한이라는 중소기업에서 MP3 플레이어 ‘MP맨’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던 때가 기억납니다. 플라스틱 사출수준도 어설펐고, 버튼 한 번 눌러봐도 얼마나 엉성하게 조립된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음질도 너무 떨어졌습니다. 분명 기존 전자회사가 만들어왔던 정교한 CD플레이어나 MD플레이어의 완성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품력 차이가 심했지요. 그러나 음악을 ‘파일’로 ‘다운’받아 ‘저장’해 놓고 듣는다는 뭔가 선진적 개념에 열광한 사람들은 새한의 MP맨을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음악이 MP3파일 형태로 바뀌는 대세의 흐름은 맞았어도, MP3 플레이어 또한 근본적으로는 오디오이자 전자제품이었던 것입니다. 오디오와 전자제품 잘 만들어 오던 회사가 속도는 조금 느릴지언정 결국 MP3 플레이어도 잘 만들 수 밖에 없지요. MP3특허 관련한 지저분한 뒷이야기들을 빼놓고서라도, 뒤늦게 뛰어든 기존 전자회사 MP3 플레이어의 완성도나 음질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전기차도 동력원이 다를 뿐 자동차입니다. 아무리 자동차가 IT화 되어간다고 해도, 사람을 태우고 바퀴 굴려 달려가는 순간, IT기술이 아닌 자동차 기술의 영역인 것입니다. 반영속도가 조금 느릴지언정 기존 자동차회사가 더 잘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테슬라를 애플에 비교하는 사람이 많지만,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기 전부터도 원래 저력 있는 컴퓨터와 전자제품 회사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게 쌓이고 쌓여 아이폰이라는 혁신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테슬라 같은 몇 가지 현란한 포장만으로 혁신 ‘이미지’를 얻은 제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과연 테슬라에 씌워진 콩깍지가 얼마나 갈까요? 저는 이러한 이유로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자동차회사들의 프리미엄 전기차가 쏟아져 나오는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전기차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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