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스터 N 다이어리-⑩] “적이 아닌 동료 ESC”
  • 최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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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6 10:04
[벨로스터 N 다이어리-⑩] “적이 아닌 동료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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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같은 벨로스터 N의 ESC

밤낮 일교차가 제법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지도 제법 오래됐습니다. 마음 놓고 달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 해가 끝나간다는 기쁨이 공존하는 감정으로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출고하기 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벨로스터 N에 관한 콘텐츠를 습관적으로 챙겨보는 편입니다. 워낙 키워드로 내세울 만한 요소가 많은 차라 팝콘 사운드를 칭하는 후연소 사운드 시스템이나 전자적 이상적인 동력 배분을 실현하는 eLSD, 주행모드 설정에 따른 확실한 차이를 더한 N 모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랠리에서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차답게 운전과 직결된 기능들이 강조되는 편입니다.

생각 외로 다뤄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차체자세제어장치(이하 ESC)입니다. ESC의 중요성은 매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보험 같은 존재입니다. 사실 이제는 없을 경우 ‘법적으로’문제가 됩니다. 2012년 출시되는 신차부터 ESC(과거 VDC) 장착이 의무화됨에 따라 이제는 없는 차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ESC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운전자 역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VDC가 장착되던 시절, 이에 대한 선호도는 결코 높지 않았습니다. 일상 주행 혹은 위급 상황 시 적절하게 작동해 사고를 방지하거나 피해를 줄여주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개입 정도와 그 강도였습니다. VDC는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마치 독재 정권과도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유를 찾으려고 하면 지나친 개입이 반복됐습니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며 느낀 만족보다는 불만, 개선 요구가 빗발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반적인 시스템 작동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습니다. 운전의 흐름 자체가 완전히 끊긴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죠. 운전자가 의도했는지 혹은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굳이 낄 필요가 없는 상황에 혼자 개입한 뒤 ‘너 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라 말하는 눈치 없는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달리려 하면 통제했고, 선회하며 속도를 올리는 행위는 금지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이 하나 더 있어요. 완전히 끄려 해도 안 꺼집니다. 절대.

VDC가 한참 장착되던 2010년대 즈음, 당시 뛰어난 엔진 출력을 내세웠던 국산차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쏘나타(YF) 터보가 기억에 남는데요. 그 당시 이렇게까지 맹렬한 가속 성능을 보여준 차가 없었기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습니다. 직선 가속을 제외한 모든 운전 행위들이 철저히 금지됐거든요. 지나친 VDC의 개입과 한없이 무른 하체 세팅이 조화를 이루면서 정말 시한폭탄을 운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차에 대한 신뢰가 당연히 생길 리 없었죠.

평생 이어지리라 생각했던 국산차의 보수적인 VDC 설정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직전 세대 쏘나타(LF)가 나왔을 때 그 차이가 분명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 와인딩 로드에서 매번 맥이 끊기는 운전을 반복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이 차는 멀쩡하게 곧잘 달리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급한 조향이나 제동을 통해 자동차의 거동을 비틀지 않고서는 개입 상황을 만들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마친 뒤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벨로스터 N의 ESC는 그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운전자가 충분한 조작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로 운전자의 의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벨로스터 N을 9개월간 타면서 ESC로 인한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 능수능란하게 작동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의 최고봉은 BMW의 DSC(Dynamic Stability Control)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정말 필요할 때 아주 간결하고 영리하게 개입합니다. 심지어 시스템 설정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의 미끄러짐을 허용하는 설정 또한 가능하죠.

벨로스터 N의 ESC은 그에 버금가게 좋습니다. 철저히 스포츠성을 중시한 자동차답게 세팅이 상당히 진보적입니다. 주행 모드는 ESC ON, ESC SPORT, ESC OFF 등 총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운전 내내 ESC를 꺼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주행 상황을 너무도 폭넓게 잘 아우릅니다. 각 주행 모드 설정에 따라 선회 과정 중 액셀 페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밟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시내를 달릴 때는 정말 느끼기 힘들고, 와인딩 로드나 서킷에서 그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벨로스터 N을 이용해 서킷 타시는 분들께 꼭 강조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꼭 ‘예열하라’라고요. 요즘처럼 도로와 타이어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페이스를 올리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이 차는 맥락이 좀 다릅니다. 언더스티어면 다행인데, 오버스티어로 이어질 때가 더 많거든요. 미끄러질 때 ESC가 작동을 안 하거나 늦게 개입합니다. 심지어 ESC SPORT 설정 시 90도 이상의 카운터 스티어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현대차도 비슷한 성격의 ESC를 적용했다고 보면 될까요? 그럴 리가요. 같은 메이커의 차량이라 해도 ESC 설정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차에 파워트레인, 구동 방식이 다를 경우 그 차이가 극명하죠. 최근 현대자동차의 ESC는 크게 2개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쏘나타(LF)를 여러 차례 시승하며 섀시 완성도 향상에 따라 ESC를 공격적으로 설정하는 것처럼 느꼈는데요. 최근 쏘나타(DN8) 센슈어스를 시승하면서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충분히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주 끼어들어 흥분을 확 가라 앉히더군요.

평범한 자동차와 스포츠성을 강조한 자동차를 확실하게 나누기 위한 현대차의 전략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쏘나타 센슈어스가 가진 성능, 패키징도 충분하다고 느꼈지만, 사실 관심이 가는 건 앞으로 선보일 쏘나타 N 라인입니다. 나름 상상을 해봤습니다. 300마력은 충분히 받아내는 쏘나타의 높은 섀시 완성도에 이를 받쳐주는 엔진이 탑재된다면 성능이나 주행 성능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운전하기에 즐거운 차로서 자동차 마니아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쏘나타 N 라인은 아마 생김새가 문제가 되겠네요. 비주얼 생각하니 흥이 확 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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