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자동차 업계 올해의 인물…‘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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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4 16:20
2019 자동차 업계 올해의 인물…‘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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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 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불확실성’과 ‘위기’가 휘몰아쳤다. 생존이 직결된 대전환기, 회사의 고삐를 쥔 새로운 인물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짊어졌다. 올해 그 숙제를 떠안은 인물과 업계를 떠난 전설을 조명해봤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 사진=폭스바겐<br>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폭스바겐AG 회장

# 故 페르디난트 피에히 前 폭스바겐AG 회장…홀연히 떠난 전설

올해 8월 향년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은 폭스바겐과 포르쉐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다. 지난 1993년 폭스바겐그룹 CEO 겸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한 그는 회사를 적자 구조에서 탈피시키는 등 지금의 폭스바겐그룹을 있게 만든 자동차 업계 ‘전설’이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며 적극적인 인수합병 추진으로 이목을 모았다. 부가티, 벤틀리, 포르쉐, 두카티, 스카니아, 만트럭 등을 합류시키며, 폭스바겐그룹을 업계의 ‘공룡’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제품 공동 개발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했다. 이 기간 탄생한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은 설계 구조를 공유한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한 2012년, 폭스바겐그룹은 영업이익 150억 달러(18조원)를 기록했다. GM, 토요타를 제친 1위 기록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자동차 산업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물론, 그만의 뚝심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피에히 전 회장은 경영자 이전 ‘엔지니어’로서 공적도 빛났다. 아우디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를 고안해낸 것을 비롯해 외할아버지가 고안했던 ‘비틀’의 계승자 ‘뉴 비틀’을 선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폭스바겐 측은 피에히 전 회장 타계 후 “그와 그의 개발팀은 최초의 1리터 차량부터 1001마력의 베이론에 이르는 실현 가능한 한계를 뛰어넘었다”며 “디테일과 품질, 완벽함을 폭스바겐의 DNA로 고정시킨 그의 삶과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왼쪽부터)다임러 그룹 디터 제체 전 회장과 올라 칼레니우스 신임 회장
(왼쪽부터)다임러 그룹 디터 제체 전 회장과 올라 칼레니우스 신임 회장

# 디터 제체 前 다임러AG 회장(Feat. 올라 칼레니우스)

마티아스 뮐러, 하랄드 크루거 등과 달리 디터 제체 전 회장의 퇴임은 아름다웠다. 심지어 BMW에서도 그의 은퇴를 축하하는 헌정영상을 보냈다.

그는 2000년 다임러크라이슬러 출범 이후, 크라이슬러 총괄로 첫 경영직에 올랐다. 메르세데스-벤츠 플랫폼을 기반으로 300C와 크로스파이어 등 다양한 신차를 선보였고, 불과 2년 만에 크라이슬러를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제체 전 회장이 2006년부터 다임러그룹을 총괄한다. 그가 그룹을 맡았을 때, 메르세데스-벤츠 글로벌 판매량은 BMW, 아우디 등에 이어 3위를 불과했고, 평균 구매 연령도 세 브랜드 중 가장 높았다. 그는 당시 30대였던 고든 바그너를 벤츠 수석디자이너로 선임하며 디자인 혁신을 이어갔다.

그의 행보는 과감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소형차 연구개발 부문에서 협력하고, 오랜 경쟁자인 BMW와 모빌리티 서비스 부문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통의 마이바흐를 메르세데스 서브 브랜드로 전환했다.

2016년 메르세데스-벤츠는 BMW와 아우디를 누르고 럭셔리 브랜드 판매 1위에 오른다. 이어 2018년에는 글로벌 340만대를 기록하며 출범 이래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13년 만에 다임러를 정상으로 올려둔 그는 지난 5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승용부문 총괄에게 회장직을 넘긴다.

2022년까지 다임러AG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 칼레니우스 신임 회장은 2016년부터 최근까지 승용차 개발 전반을 총괄해왔다. 그는 향후 전동화 시대를 맞는 다임러의 밑바탕을 다시 설계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발해야 한다.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

#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특명 “벤츠를 잡아라”

하랄드 크루거 후임으로 선임된 올리버 집세 BMW그룹 신임 회장은 1991년 BMW 수습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옥스퍼드 공장 총괄, 생산 부문 총괄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직원들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우리가 항상 최고일 필요는 없지만 모든 부문에서 경쟁자보다 우수해야 한다”며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변화를 수용하고 경쟁사(메르세데스-벤츠)를 추월할 방법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다임러와 직접 경쟁을 통해 성장세를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다.

BMW그룹은 최근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억8900만 유로(한화 약 7900억원)로, 전년대비 78%가 감소한 기록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과 MINI 브랜드의 실적 하락 등이 악영향을 미친 탓이다.

생산 분야에서 요직을 거친 만큼, 집세 회장은 향후 생산 유연성 강화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수요에 따라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의 생산 비중을 조절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또한 2·4·6시리즈 등 쿠페 라인업 후속 개발 계획이 보류됐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 조짐도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협업을 통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물색하고, 미래차 산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했다. 해외 인재 영입도 꾸준히 이어지는 한편, 그룹 내부 체질 개선도 본격화했다.

그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경영 키워드로 제창했다. 자체 기술 개발로 해결하기 힘든 일은 외부 투자로 적극 확보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앱티브’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고성능 전기차 업체 ‘리막’에 투자한 일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61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해마다 10조원 씩을 투자하는 셈이다.

올해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임원급 해외 영입 인재는 총 6명이다. 카림 하비브 등 디자이너가 3명으로 가장 많았고, 해외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와 제네시스 북미 담당 CEO도 외부에서 수혈받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박사를 영입하고 미래 사업영역인 플라잉카 부문 연구도 본격화했다.

정 부회장은 내부 조직 문화 개편에도 거침없었다. 기존 공채를 수시 채용 제도로 개편하고, 연말 정기 임원인사 제도는 폐지했다. 출퇴근·복장 제도 폐지 및 직급 체계 개편도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갈 길은 녹록지 않다. 중국 실적이 부진한 데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유럽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심판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류된 그룹 지배구조 개편 문제도 과제로 남아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FCA CEO

#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FCA CEO…올해보다 내년이 기대된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는 과거 르노의 2인자에 불과했지만, 적자 구조였던 PSA를 극적으로 회생시키며 업계 주목을 받았다. 2012년 PSA 적자는 7조원에 달했지만, 2015년 순이익 1조4000억원, 이익률 5%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타바레스가 PSA의 경영권을 잡은지 불과 1년 만의 일이다.

PSA는 2017년 오펠·복스홀을 인수했다. 두 회사는 PSA에 인수된 지 1년 만에 2917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하며 빠른 회복세를 달성했다. 당시 JP모건은 “자동차 업계에선 전례가 없었던 가장 빠른 회복세”라고 평가했다. 타바레스 CEO의 경영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합병에 따른 성과도 긍정적이다. 2018년 PSA 전체 매출은 740억2700만 유로로 전년대비 18.9%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32억9500만 유로로 같은 기간 대비 40.4% 증가했다. 글로벌 신차 판매 대수는 387만7765대를 기록하며 6.8%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가 경영권을 잡은 이래 단 한 번도 감소세가 없었던 점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다.

타바레스 CEO는 올해 재규어랜드로버 인수 의사를 타진하고, FCA와 합병 논의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M&A 행보를 이어왔다. 결국 FCA와의 합병에 서명함에 따라, 그는 세계 4위 자동차그룹의 수장으로 2020년을 맞게 됐다.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회사들이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는 점에서 타바레스 CEO가 ‘크라이슬러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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