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신형 쏘렌토 가격은 왜 올랐나?…기아차가 최고가를 선택한 이유
  • 전승용
  • 좋아요 0
  • 승인 2020.03.17 17:09
[전승용 칼럼] 신형 쏘렌토 가격은 왜 올랐나?…기아차가 최고가를 선택한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란 속담이 있습니다. 의심받을 행동은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데요. 아무래도 기아차의 신형 쏘렌토 가격 정책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맨 듯합니다.

기아차가 17일 온라인 출시회를 통해 신형 쏘렌토를 공개했습니다. 사전 계약 첫날 1만8800대라는 역대급 계약 대수를 기록한 모델인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관심은 오늘 공개된 쏘렌토 2.2 디젤보다는 계약이 중단된 쏘렌토 하이브리드에 더 쏠려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아차가 지난달 21일 신형 쏘렌토 사전 계약을 실시했는데, 계약된 1만8800대 중 무려 1만3849대가 하이브리드 모델이었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음날 문제가 터졌죠.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정부의 친환경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거든요. 친환경차 혜택을 받으려면 연비가 15.8km/l를 넘어야 하는데,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15.3km/l에 불과했습니다.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쏘렌토 하이브리드를 사려면 233만원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거든요. 기아차는 부랴부랴 하이브리드 모델의 사전 계약을 중단하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보상안을 내놨습니다.

대략 설명을 하자면 6월30일까지는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분인 143만원에 친환경차 혜택 82~116만원, 개별소비세 90만원 등 최대 349만원을 지원해 줍니다. 개별소비세 인하가 끝나는 7월1일부터는 친환경차 혜택 143만원에 개별소비세 90만원 등 총 233만원을 일괄 적용하고요.

결과적으로 기아차는 친환경차 인증 실수로 인해 3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보게 됐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사전 계약자 약 1만4000명에게 233만원씩 보상해주려면 약 326억원이 들거든요(물론 이 숫자는 계약 및 판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아차는 고민 끝에 쏘렌토의 가격을 아예 올려버린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전 계약 가격에서 최고가를 최종 가격으로 확정한 것이죠. 물론, 가격 책정은 제조사 고유의 권한이고, 사전 계약으로 공개한 범위 내에서 책정돼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아차의 행보를 봤을 때 이번 가격 인상은 하이브리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함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기아차는 일반적으로 차량 가격에 30만원 정도의 범위를 공개한 뒤 사전계약을 맺습니다(모하비와 K9 등 고급차는 50만원 범위). 그리고 사전 계약 가격 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확정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전 계약 때 프레스티지 트림의 가격이 3520~3550만원 범위였다면 확정 가격은 3520만원이 되는 것이죠.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샀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죠. 

그러나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달랐습니다. 모두 최고가로 최종 가격을 확정했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가격표에 따르면 사전 계약 때 3520~3550만원이었던 프레스티지 트림은 3550만원, 3800~3830만원였던 노블레스 트림은 3830만원, 4070~4100만원이었던 시그니처 트림은 4100만원으로 나왔습니다. 

이는 최근 몇 년간의 기아차 정책과 전혀 다릅니다. 최저가에서 조금 올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사전 계약 최고가로 최종 가격을 확정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은근슬쩍 가격을 올려 친환경차 보상으로 생길 손실을 메꾸려는게 아닐까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작년 말 출시된 신형 K5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솔린 2.0의 경우 2351~2381만원으로 사전 계약을 했던 트렌디 트림은 2351만원에, 2592~2621만원이었던 프레스티지는 2592만원에, 2783~2813만원이었던 노블레스는 2783만원에, 3063~3092만원이었던 시그니처는 3063만원으로 모두 최저가로 확정돼 판매됐습니다.

하이브리드 모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749~2777만원이었던 트렌디 트림은 2749만원, 2937~2777만원이었던 프레스티지는 2937만원, 3129~3158만원이었던 노블레스는 3129만원, 3335~3365만원이었던 시그니처는 3335만원으로 모두 최저가였습니다.

그 전에 출시된 셀토스도 같습니다. 당시 트렌디 트림은 1930~1961만원, 프레스티지는 2240~2270만원, 노블레스는 2450~2480만원에 사전 계약을 했고, 모두 최저가보다 낮은 1929만원, 2238만원, 2444만원에 최종 가격이 확정됐습니다. 

이들 외에도 2018년에 나온 신형 K9을 비롯해 2019년 모하비 페이스리프트 및 K7 페이스리프트 등 최근 몇 년간 기아차는 사전 계약 가격 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최종 가격을 확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아차는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가격을 사전 계약 가격의 최고가로 잡았습니다. 한 대당 30만원 올렸으니, 팔면 팔수록 친환경차 인증 실수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죠. 단순 계산으로 쏘렌토 하이브리드를 11만대 팔면 330억원의 손실이 메꿔지네요. 다만,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생산량이 연 1만5000대 수준이라고 하니 7년은 더 걸리겠네요. 꽤 깁니다. 

그래서 기아차는 쏘렌토 디젤 모델의 가격도 사전 계약 최저가보다 10만원 올려 책정한 듯합니다. 사전 계약 당시 3070~3100만원이었던 트렌디 트림은 3080만원으로, 3360~3390만원이었던 프레스티지는 3370만원으로, 3660~3690만원이었던 노블레스는 3670만원으로, 3950~3980만원이었던 시그니처는 3960만원으로 나왔습니다.

한 대당 10만원씩 1000대면 1억, 1만대면 10억, 10만대면 100억입니다. 참고로 쏘렌토 연간 총 판매량은 2016년 8만715대, 2017년 7만8458대, 2018년 7만8458대, 2019년 5만6325대 였습니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3분기 출시된다는 2.5 터보 모델도 원래 가격보다 조금 오를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리스크는 나눌 수록 좋으니까요. 아예 처음부터 가격을 올린 후 최저가로 결정할지, 디젤처럼 조금만 올릴지, 하이브리드처럼 최고가를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실, 기아차는 하이브리드 사건이 터진 후에 출고 시점을 늦추며 물량 조절에 들어갔습니다. 출고 시점을 늦추면서 영업 일선을 통해 하이브리드에서 2.2 디젤로 갈아타게 만들거나, 기다림에 지친 소비자가 아예 계약을 포기하게 유도하는 것이죠. 안 그래도 사전 계약 하루 만에 올해 하이브리드 물량이 다 팔린 상황이라 꽤 여유가 있거든요. 한정된 물량에 수요는 넘쳐나니 기존 사전 계약 대수를 줄이는게 기아차에게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기아차는 참지 못하고 가격에 손을 댄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하이브리드 문제로 인한 손실이 없었더도 이렇게 30만원 올린 사전계약 최고가로 책정했을까는 의문입니다. 

물론, 기아차가 처음부터 저 가격을 정해놓고 사전 계약과 출시 가격을 조정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아차의 최근 행보로 봤을 때 자신들의 실수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꼼수'인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네요. 기아차는 자기 반성에서 나온 통 큰 보상처럼 이야기 했지만, 결국은 소비자 주머니에서 뺀 돈으로 소비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셈이니까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