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독일인들은 왜 BMW·벤츠·폭스바겐에게 화가 났을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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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9 09:00
[이완 칼럼] 독일인들은 왜 BMW·벤츠·폭스바겐에게 화가 났을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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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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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곳의 대주주와 경영진을 향한 독일인들 불만이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지난 4월 말이었죠.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업계가 위기에 처했다며, 2009년 때와 같은 ‘신차 구매 보조금’제도를 시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2009년 독일 정부는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살 때 정부가 우리 돈으로 수백만원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그 덕으로 신차 판매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지금 그때 수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폭스바겐그룹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나 벤츠를 소유한 다임러그룹 회장 올레 칼레니우스 등도 보조금 필요성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사진=다임러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입니다. 세계 대전을 겪을 때조차 군수품 생산을 위해 자동차 공장이 돌아가던 유럽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던 공장들이 모두 가동을 중단해야 했고, 판매 현장 곳곳에서는 차를 못 팔아 딜러가 폐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결코 엄살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위기에 직면한 자동차 제조사의 도움 요청에 많은 독일인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언론들은 ‘뻔뻔한 아이디어’ ‘터무니없는 요구’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습니다. 기업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지까지 이런 비판에 가세했는데요. 얼핏 보면 그들의 요구가 그렇게 욕을 먹을 일인가 싶은데, 왜 독일인들은 이처럼 화가 난 걸까요?

# 자기희생 없는 기업 태도에 분노

독일인들이 뿔난 이유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토록 위기라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대주주 누구도 자기희생을 하지 않고 세금으로만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디젤 게이트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많다며 그들 요구에 정부가 응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스바겐그룹을 이끌고 있는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의 연봉을 예로 들어 볼까요? 그는 2018년 약 790만 유로(한화 약 102억원)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그보다 더 많은 810만 유로(한화 약 105억)였죠. 이는 독일 기업인 연봉 순위에서 TOP3 안에 드는 수준입니다. 그보다 못하지만 다임러와 BMW CEO 역시 500만 유로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회장 / 사진=VW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회장 / 사진=VW

사실 연봉은 성과급 비중이 큰 편입니다. 경영 실적이 좋으면 많이 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적게 받는 구조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 대표들이 이 정도 연봉도 못 받아서야 쓰겠냐는 옹호론부터, 그럼에도 이건 너무 고액연봉이 아니냐며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여러 입장이 있어 왔고,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기업이 위기일 때 리더들이 솔선수범하고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우선 펼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연봉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자구 노력인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세금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많은 독일인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차이트나 쥐트도이체차이퉁과 같은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들은 특히 BMW의 배당금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배당금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가져가는 크반트 가문을 겨냥한 것인데요. 차이트 보도에 따르면 이번 배당금은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이며, 그중 절반이 대주주 크반트 가문으로 들어갑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볼보트럭과 르노는 배당금을 포기했다며 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크반트 가문의 일원인 슈테판 크반트 이사 / 사진=BMW
크반트 가문의 일원인 슈테판 크반트 이사 / 사진=BMW

여론을 알기 위해 실시한 독일 제 1공영방송인 ARD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3가 신차 구매 보조금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차 할인에 보조금까지 더해지면 구매자의 부담은 크게 줄 게 분명한데도 대기업에 이익이 돌아가는 이런 보조금 방식을 소비자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차이트의 해당 기사에 달린 추천수가 가장 많았던 댓글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Switcher’라는 닉네임을 쓰는 네티즌은 “나는 늘 경제적 지원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것(신차 구매보조금)에는 견딜 수가 없다. 독일엔 다음달 월세나 갚아야 할 빚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많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배당금을 주고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 이건 아니다.”라며 분명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비판이 거세자 BMW 회장은 배당금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며, 자동차 생산의 80%를 담당하는 것은 부품업체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이 더 된다는 식의 반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환경단체 등은 배당금 지급 결정이 있을 목요일 BMW 앞에서 시위를 펼칠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충분한 현금, 보조금 혜택 서민에겐 그림의 떡

그런데 기업들의 두 가지 태도 논란 외에도 신차 보조금을 반대하는 이유들은 또 있습니다. 우선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충분히 버틸 만큼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연방정부 전문가위원회에 속한 모니카 쉬니처 교수의 발언도 소개했는데요. 그는 “자동차 회사들은 현재 전혀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쥐트도이체차이퉁 자체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BMW는 109조원, 다임러는 122조원, 폭스바겐 그룹은 약 130조원 이상의 이익을 냈습니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폭스바겐 그룹은 250억 유로(약 32조5000억원), 다임러는 180억 유로, BMW는 120억 유로의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있다며 차를 팔지 않아도 가을까지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매년 놀라운 실적을 보이고 있는 포르쉐 / 사진=포르쉐
매년 놀라운 실적을 보이고 있는 포르쉐 / 사진=포르쉐

마지막으로 독일인들이 보조금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신차 보조금 혜택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비자에게만 돌아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벤츠, BMW, 아우디는 독일인들에게도 비싼 차입니다. 이런 브랜드의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이 우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까지 분위기를 봐서는 독일 정부가 BMW나 다임러,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 요구에 맞춰 신차 구매 현금 혜택을 주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워낙 여론이 안좋고 언론들이 이 문제에 강하게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메르켈 정부는 고민을 하는 듯합니다. 독일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을 위해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지원을 아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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