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회장 교체 사건'으로 본 폭스바겐그룹의 삼각 커넥션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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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6 12:45
[이완 칼럼] '회장 교체 사건'으로 본 폭스바겐그룹의 삼각 커넥션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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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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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초, 폭스바겐 자동차 그룹은 7월부터 폭스바겐 브랜드를 이끌 새로운 CEO로 랄프 브랜트스태터 (Ralf Brandstätter)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폭스바겐 브랜드 CEO를 겸하던 헤르베르트 디스(Herbert Diess) 회장은 그룹 전체 경영만을 맡게 됐습니다.

회사 측은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이번 결정으로 좀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죠. 여기까지만 보면 별 내용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인사이동은 폭스바겐 그룹의 권력 다툼 결과였으며, 최상위 그룹의 커넥션이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VW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VW

독일 언론의 보도는 새롭게 폭스바겐 브랜드를 이끌 회장 브랜트스태터보다 브랜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헤르베르트 디스 그룹 회장에 더 집중됐습니다. 그리고 경영 그룹의 임명과 해임 권한을 쥐고 있는 감독위원회에 몸담은 또 다른 인물 베른트 오스터로(Bernd Osterloh)가 함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폭스바겐 최상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BMW 출신, 폭스바겐의 새 얼굴 되다

폭스바겐 그룹을 이끄는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은 뮌헨 출신으로 아헨 공대와 함께 독일 자동차 업계를 이끄는 많은 리더를 배출한 뮌헨 응용과학 대학교 출신입니다.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보쉬에서 일하던 그는 BMW로 옮겨 여러 부서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그는 폭스바겐 그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죠.

사진=VW

옮긴 그 해에 디젤 게이트가 터졌지만 오히려 위기 속에서 그의 가치는 더 뛰게 됩니다. 조립 공장이나 생산 파트 개선에 일가견이 있던 헤르베르트 디스는 2018년 마티아스 뮐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과 폭스바겐 브랜드를 함께 책임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폭스바겐 그룹이 전기차 브랜드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며 강하게 전기차 브랜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이 계획을 이끕니다.

#찍혔고, 밀려났다

하지만 헤르베르트 디스를 못마땅하게 본 인물이 있었습니다. 폭스바겐 그룹 노조(흔히 노동위원회, 직장협의회 등의 표현을 씁니다)를 대표하는 베른트 오스터로였습니다. 그는 폭스바겐 그룹 노조를 대표함과 동시에 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했죠. 독일은 아시다시피 아주 오래전부터 노사가 함께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곳입니다.

베른트 오스터로 / 사진=VW

폭스바겐 역시 법에 따라 20명의 감독위원회 회원 중 절반인 10명(7명은 회사 내부, 3명은 외부 노동조합 관계자)이 직장협의회 관련 인물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베른트 오스터로는 이 10명 중에서도 핵심적인 인물로,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공장 노조 대표와 폭스바겐 전체 공장 노조 대표,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 노조 대표의 자리에까지 차례로 밟아 올라왔고, 결국 2005년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그룹의 핵심 그룹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베른트 오스터로가 어떻게 해서 헤르베르트 디스와 갈등을 겪게 됐는지, 그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년부터 시작된 신형 8세대 골프와 첫 번째 전기차 ID.3의 소프트웨어 문제가 노조와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사이의 갈등을 키웠고, 직원들을 대표하는 베른트 오스터로는 이 부분을 강하게 질타하며 둘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치명타가 된 사건 3가지

하지만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권력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데에는 최근에 터진 3가지 사건이 보다 직접적으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자동차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그는 독일 정부를 향해 ‘신차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는데요. 100억 대의 연봉을 반납하는 등,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보조금 타령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배당금이나 보너스 포기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고, 그렇지 않아도 세금 사용에 민감한 여론은 들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종차별 광고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골프 신형 광고는 한 흑인 남성을 골프 가까이 못 오게 거대한 손이 카페로 튕겨내고 있었습니다. 흑인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알파벳까지 표시되는 등, 노골적인 인종차별 광고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폭스바겐은 논란이 된 광고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지만 민감한 시기에 터진 광고 논란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이런 광고가 어떻게 승인되고 공개될 수 있었는지, 그룹 내부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왼쪽부터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한스 디터 푀취 감독위원회 위원장, 슈테판 바일 니더작센주 총리, 그리고 직장협의회 회장 베른트 오스터로 / 사진=VW

마지막으로 감독위원회에 대한 직접적 비난이었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은 6월 초 3,400명의 임원들과의 화상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감독위원회를 부도덕하고 규정을 어긴 그런 곳이라며 예상치 못한 비판을 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슈피겔에 따르면 디젤게이트와 관련한 헤르베르트 디스에 대한 독일 검찰의 수사가 중단되자 그는 감독위원회 일원인 독일 금속노조 위원장 요르그 호프만(Jörg Hofmann)에게 자신의 임기 계약을 조기에 연장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그 내용이 한 매체에 의해 보도가 됐습니다. 내부의 비밀스러운 얘기가 언론에 노출된 것을 두고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공개적으로 감독위원회를 향해 불만을 표시한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이슈들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회장의 이날 발언은 절대 권력 기관인 감독위원회를 뒤집어 놓았고, 결국 폭스바겐 브랜드 CEO 자리를 박탈했습니다. 발언 이후 헤르베르트 디스는 즉각 감독위원회에 사과를 했고, 감독위원회도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 브랜드 회장 자리만 박탈하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베른트 오스터로가 이끄는 직장협의회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오는 등, 헤르베르트 디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느 때보다 노력을 펼칠 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임기 연장은 현재 감독위원회로부터 거절된 상태이며, 감독위원회 핵심 멤버인 베른트 오스터로와의 갈등을 풀지 않는 이상 그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단한 삼각 커넥션이 지배하는 감독위원회, 영원한 아군은 없다?

이처럼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의 회장을 쥐락펴락하는 폭스바겐 감독이사회는 지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포르쉐 박사의 친가와 외가 자손들), 그리고 2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니더작센주, 여기에 직장평의회를 대표하는 베른트 오스터로와 그 주변 인물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 있습니다.

특히 베른트 오스터로의 놀라운 존재감이 눈에 띄는데요. 과거 벤델린 비데킹 회장 주도하에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전을 펼칠 때 베른트 오스터로는 노조를 대표해 폭스바겐이 포르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니더작센주, 카타르 투자청, 그리고 피에히 가문을 이끌던 당시 회장 페르디난트 피에히 등과 베른트 오스터로 힘을 합쳤고, 결국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역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인수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볼프강 포르쉐와 헤르베르트 디스 / 사진=위키피디아 & Matti Blume

이때부터 베른트 오스터로는 대주주 가문과 주정부의 강한 지지를 받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아군은 없는 걸까요? 베른트 오스터로는 함께 폭스바겐을 지켜낸 제국의 절대 군주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지시에 항명하며 오히려 그를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자신이 키워온 마틴 빈터콘 전 회장을 신뢰하지 못하고 밀어내려 했을 때 베른트 오스터로와 니더작센주 총리 등이 오히려 마틴 빈터콘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특히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맞설 때 베른트 오스터로가 손을 맞잡은 사람 중에는 감독위원회 멤버인 볼프강 포르쉐도 있었습니다. 그는 벤델린 비데킹이 폭스바겐 인수를 시도할 때 포르쉐의 실세였던 인물입니다. 볼프강 포르쉐는 예전부터 밀어내고 싶어 하던 외사촌 페르디난트 피에히를 몰아내는 데 그의 측근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의 큰 권력 다툼 속에서 베른트 오스터로는 살아남았고, 이제 강력한 지지 속에 폭스바겐 그룹의 실력자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디젤게이트 왜 터졌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최근 기사에서 베른트 오스터로를 ‘폭스바겐 그룹의 진짜 지배자’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포르쉐 가문과 니더작센주의 지원, 그리고 베른트 오스터로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은 그룹을 단단하게 뭉치게도 하지만 기업의 발전과 변화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진=VW

2015년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 폭스바겐 그룹의 경직된 경영 구조, 절대적으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상명하복 기업문화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무수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직원들에게 문제를 덮어두지 말고 상부에 공개적으로 전달하고 논쟁을 피하지 말라고 변화를 외친 이는 다름 아닌 베른트 오스터로였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폭스바겐 최고 권력층은 과연 변화했을까요?

비록 비판받을 몇몇 문제가 있었지만 헤르베르트 디스는 폭스바겐 성골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그룹을 개혁하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데려온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들의 현재 문제와 약점이 무언지를 숨기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CEO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그가 결과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다면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이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자기들끼리의 권력 집단이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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