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늦춰지는 임단협…속 끓은 노조 “참을 만큼 참았다”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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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5 18:00
차일피일 늦춰지는 임단협…속 끓은 노조 “참을 만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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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업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되며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도 늦어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통상적으로 3~4월부터 교섭을 준비한다. 노사 양측은 5월 본격적인 교섭을 개시해 7월 여름 휴가 전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한다. 만약 이를 넘길 경우 9월 추석 연휴를 기한으로 삼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산업 전체가 흔들리며 노사 협상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중 쌍용차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아직 올해 협상 테이블도 펴지 못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 노조는 사측에 요구안을 통보한 상태고,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요구안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노사 간 입장차는 쉽게 좁히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홈페이지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홈페이지

지난해 8년 만에 파업없이 임단협을 체결한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큰 잡음 없이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중도·실리 성향으로 평가받는 이상수 지부장이 이끄는 현대차 노조는 최근 사측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24일 고용안전위 품질 세미나에서 ‘품질혁신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고객이 만족하는 완벽한 품질 확보와 시장 수요에 따른 생산 극대화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최근 신차 품질 이슈와 관련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측은 이같은 이슈와 관련해 품질 개선을 위해 노조 측에 손을 내밀었고, 노조 측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가운데) 기아차 노조 최종태 지부장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 홈페이지)
(가운데) 기아차 노조 최종태 지부장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 홈페이지)

긴 갈등 끝에 올해 1월에서야 겨우 2019년도 임협을 마친 기아차는 아직 임단협 요구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왔던 정기 대의원회의를 최근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 중이며, 이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2020년도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하는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최근 노조가 사측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는 만큼 협상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는 18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물량을 빼가며 현대모비스에 전량 일감 몰아주기를 시도해 화성 공장에서 파워트레인·변속기를 생산하는 조합원들의 고용이 불안해지고 있다”면서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오는 2025년까지 11종의 전기차 풀 라인업을 갖춘다는 사측의 ‘플랜 S’에 대해서도 “4차 산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그리고 구조조정 성격이 포함된 플랜 S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23일 밝혔다.

(왼쪽부터) 르노삼성 도미닉 시뇨라 사장, 박종규 노조위원장
(왼쪽부터) 르노삼성 도미닉 시뇨라 사장, 박종규 노조위원장

2019년 임협을 올해 4월 중순에서야 매듭지은 르노삼성 노사도 갈 길이 멀다. 르노삼성 노조는 이달 3일 기본급 4.69% 인상, 노동 강도 완화, 라인 수당 조정,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XM3 성공 론칭 격려금 500만원, 임단협 타결 격려금 200만원, 노조 발전 기금 12억원, 임금 피크제 폐지, 고과 제도 폐지, 휴식 시간 연장 등 내용이 담긴 2020년도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올해 임단협 노사 상견례를 6월 15일부터 진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사측이 7월로 일방적으로 미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측은 일방적으로 미룬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임단협을 언제 시작할지 결정하는 상견례 일정을 조율하자고 제안한 것”이라며 “6월 15일은 공식적으로 확정된 날짜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그룹 전체에 변화가 있었고, 이에 대해 사측은 회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대표자 면담을 먼저 진행한 뒤 7월로 상견례를 조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조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르노 본사에서는 강도 높은 비용 절감 계획을 밝혔다. 향후 3년간 전 세계에서 1만5000여명을 감원하고 연구 개발 및 설비 부문의 투자도 최대 40% 절감할 예정이다. 특히, 탈리스만(르노삼성 SM6) 후속 모델 개발 프로젝트를 폐기하는 등 전례없이 강도 높은 쇄신책을 내놓은 상황이라 르노삼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왼쪽부터) 한국GM 카허카젬 사장,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김성갑 지부장
(왼쪽부터) 한국GM 카허카젬 사장,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김성갑 지부장

한국GM 노사도 지난해 임협을 올 4월에서야 마쳤다. 노사는 2018 임단협 합의에 따라 2019년에도 임금 동결 및 성과급 미지급 등에 합의했다. 다만, 상생을 위해 차종별로 100만원에서 300만원 상당의 차량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올해다. 노조 측은 그간 양보한 만큼 올해는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 18일 임시대의원회를 열고 기본급 12만304원 인상, 성과급 통상임금의 400%+600만원 지급, TC 수당 500% 인상 등의 내용이 담긴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사측이 지난해 임협에서 최근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원에 달하는 등 실적 부진으로 임금 인상이 어렵다고 주장한 만큼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이 없는 현재로써는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노사는 물류센터 폐쇄와 관련해서도 대립하고 있다. 사측은 15일 노조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 가용 현금을 확보하겠다며 부평공장 인근 물류센터를 매각하겠다고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구조조정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 김성갑 지부장은 삭발식을 진행하며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물류최적화센터(LOC) 부지에 대해 일방적 매각 통보를 자행한 사측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대립의 날을 세우고 있다.

(왼쪽부터) 쌍용차 정일권 노조위원장, 예병태 대표이사
(왼쪽부터) 쌍용차 정일권 노조위원장, 예병태 대표이사

한편, 쌍용차는 앞서 4월 국산차 업계 최초로 2020년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노사는 회사의 경영정상화와 고용 안정을 위해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올해 임금 동결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안에 최종 서명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상여금 반납, 사무직 순환 안식년제 시행 등 고강도 경영 쇄신책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의치 않다. 쌍용차는 최근 모기업인 마힌드라의 경영 상황이 급격히 나빠짐에 따라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서울서비스센터를 1800억원에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 5000억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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