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F타입 R, 가슴을 울리는 맹수의 포효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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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3 09:00
[시승기] 재규어 F타입 R, 가슴을 울리는 맹수의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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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터블의 계절을 맞아 재규어 신형 F타입을 만났다. 부분변경을 거치며 브랜드 최신 기술을 수혈받은 F타입은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속 깊숙이 남겨진 야생성은 여전하다.

시승차는 최상위 모델인 F타입 R 컨버터블이다. 천정을 활짝 걷으니, 빌딩 숲 사이를 질주하는 맹수의 울음소리에 등골이 오싹하다.  

신차는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전면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우선 헤드램프가 좌우로 길게 뻗었다. 다소 순해보였던 세로형 헤드램프와 비교하면, 날카롭고 도발적인 눈매다.

차체 크기는 독특한 몸매에 언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디자인이 크게 달라보이는 점도 한몫을 한다. 전장과 전폭, 전고는 4470x1925x1310mm이다. 포르쉐 911보다 전장은 짧고, 전폭은 넓다. 가만히 있어도 언제든 달려나갈 듯한 태세를 갖췄다.

앞·뒤 모두 더블위시본 타입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운동 성능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브랜드의 의지가 돋보인다. 앞은 265/35ZR20, 뒤는 305/30ZR20 사이즈의 피렐리 P 제로타이어를 신었다. 후륜기반 고성능 스포츠카의 바람직한 자세다.

아담한 실내는 고급스런 가죽을 아낌없이 둘렀다. 스티어링 휠은 별 다른 기교없이 반듯한 원형이다. 변속기도 다이얼 타입이 아닌 레버를 적용해 조금 더 정통 스포츠카에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기존 아날로그 타입 계기판을 들어내고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을 적용해 세련된 느낌을 전한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지만, 재규어 브랜드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피비 프로'는 적용되지 않았다.

평소에 숨어있던 센터 송풍구는 공조기를 작동하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국내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열선 스티어링 휠과 통풍 시트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F타입 보닛은 여타 승용차와 달리 앞쪽을 향해 열린다. 과거 레이스 중 보닛이 열려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힌지를 전방에 달던 전통을 그대로 유지했다.

'5.0'과 'V8', 그리고 '슈퍼차저'. 가슴을 울리는 세 단어를 모두 품었다. 대배기량의 여유와 8기통의 음색, 지연 반응 없는 과급기까지 고성능의 조건을 모두 갖춘 욕심쟁이다. 지저분한 숫자를 올림하는 게 못 미더웠을까. 배기량을 정확히 5000cc로 마무리한 점도 독특하다.

최고출력은 575마력, 최대토크는 71.4kgf.m이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를 3.7초 만에 도달하며, 최고안전속도는 322km/h로 제한된다.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F타입 R은 전자식 액티브 디퍼렌셜과 토크 벡터링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 이를 통해 험한 날씨와 거친 노면에서도 최상의 접지력을 유지한다.

전동식 손잡이는 도어 잠금을 해제하면 스르륵 튀어나온다. 문을 열고 조그마한 실내로 파묻히는 느낌이 제법 아늑하다. 단단한 시트 쿠션은 오래 앉아도 부담없는 수준이다. 시동을 걸자 맹수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펴진다.

드라이브 모드는 기본적으로 달리기 위한 세팅이다. 힘을 빼고 달리면 한없이 편안한 주행도 가능하지만, 조금이라도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금세 기어 단수를 낮추며 뛰어나갈 준비를 마친다. 8단변속기는 노멀 모드에서 부드럽게 반응하는 반면, 스포츠 주행에서는 보다 날카롭고 민첩하다. 패들 시프터를 통해 수동으로 조작할 때도 번개처럼 반응한다.

엔진회전수를 높일 때마다 살아 숨쉬듯 무자비하게 공기를 빨아들인다. 3000~4000rpm 구간에서 가속 페달을 뗄 때마다 들려오는 후적음은 자꾸 듣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배기음은 포효로 변한다. 세상천지를 울리는 목청이다. 마치 사냥감을 향해 경고하는 맹수의 위협적인 울음소리와 같다. 고회전 영역에서 변속을 시도하면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을 내며 운전자를 더욱 자극한다.

컨버터블이 주는 이점은 시원한 개방감 뿐만이 아니다. 쿠페 모델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F타입의 울부짖음을 한층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특권까지 주어진다. 창문이나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운전자는 F타입이 들려주는 생생한 라이브 연주를 그저 즐기면 된다.

도심을 달리니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만 느껴진다. 지붕을 연 채 미세먼지 없는 날씨를 즐기는 기분이 제법 상쾌하다. 다만 고속도로에서는 현실과 마주한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마구 때린다. 시승차에는 윈드 디플렉터가 마련되지 않아 고속에서 실내로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장시간 고속주행을 즐기는 예비 오너라면 윈드 디플렉터를 꼭 챙겨야겠다. 윈드 디플렉터를 장착한 채 지붕을 닫는 것이 어려운 점도 단점이다.

데일리카로서 F타입 R은 어떨까. 지상고가 일반 승용차보다는 낮지만, 방지턱이나 대형마트 언덕에서 닿는 일은 없다. 이 정도면 일상 영역에서 무리 없는 주행이 가능하다. 다만 뒷좌석이 없는 2인승 컨버터블이라 공간활용성은 다소 부족하다. 컵홀더와 글로브박스 외 수납공간도 전무하다. 유일한 수납 공간인 트렁크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상전처럼 떡하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부피가 큰 짐을 싣기는 불가능하다.

연비는 운전자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뉜다. 도심과 올림픽대로에서 리터당 12km 이상의 평균연비를 기록했지만, 이는 그 순간 뿐이었다. 외곽에서 신나게 달리다보면 평균 4km/L까지 떨어진다.

F타입은 감성을 자극하는 스포츠카다.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을 통해 기계적인 만족감을 선사하는 독일차들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단순히 숫자가 주는 감동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다.

재규어 F타입 R 컨버터블 가격은 2억127만원이다. 물론, 실망하기엔 이르다. 괴물같은 V8이 있는가 하면, 한결 부드러운 V6와 비교적 얌전한 4기통 모델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아름다운 컨버터블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손에 넣을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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