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독일은 왜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실패한다 예상할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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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24 09:58
[이완 칼럼] 독일은 왜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실패한다 예상할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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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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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브랜드 유럽 진출을 공식화했습니다. 지난 5월 4일이었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 언론 대상으로 진출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밝혔습니다. G80과 GV80을 우선 선보이며, 이후 G70과 GV70, 그리고 전기차 모델들까지 순차적으로 내놓게 됩니다. 여기에 유럽 시장 전용인 G70 슈팅 브레이크 이미지도 공개하는 등,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이들 면면도 화려합니다. 제네시스 유럽 법인을 이끌게 된 도미니크 보쉬는 아우디에서 글로벌 판매전략을 세우던 인물이며, 2019년 현대로 건너온 타이론 존슨은 포드 고성능 디비전 RS의 수석 엔지니어로 현대차 유럽연구개발센터를 이끌며 제네시스의 유럽 안착을 위해 뛰게 됩니다. 또 앤드류 필킹턴을 폴스터에서 데려왔고, 애스턴마틴에서 일하던 영업통 엔리케 로렌자나도 함께 합니다.

제네시스 모터 유럽 법인장 도미니크 보쉬 / 사진=제네시스

영업 전략은 조금 독특한데요. 우선 독일 뮌헨과 스위스 취리히, 그리고 영국 런던에 ‘제네시스 스튜디오’를 오픈해 고객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존 대리점 중심 영업과는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결국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게 되는데, 여기에 구매부터 이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전담 직원을 둔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미 몇몇 브랜드가 하고 있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 유럽 시장은 ‘가장 큰 도전’

영국 오토카는 제네시스 유럽 진출을 자신들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밝힌 타이론 존슨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또 도미니크 보쉬 법인장은 유럽을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표현에서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물론 자신감도 함께 내비쳤습니다.

긴 시간 유럽 고객의 운전 취향에 맞게 담금질하는 등, 디자인과 서비스, 그리고 품질과 주행 성능까지, 여러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자평했습니다. 오토카는 현대자동차가 수십 년 유럽에서 사업을 이어왔고, 고성능 N 브랜드와 전기차 등을 통해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며 성공적인 길을 갔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네시스 미래는 어떻게 예상했을까요?

# 최상의 시나리오는 렉서스, 최악은 인피니티

오토카는 ‘유럽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오랜 시간 버텨온 렉서스의 경우가 제네시스엔 최상의 시나리오이며, 그와 반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피니티라고 했습니다.

유럽 전용 왜건 G70 슈팅 브레이크 / 사진=제네시스 

렉서스가 유럽에서 꽤 성공을 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도 여전히 점유율은 높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쥐고 흔드는 독일 브랜드는 물론 볼보나 재규어 등과도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다만 10년 만에 손을 털고 나간 인피니티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점에서 렉서스를 긍정적인 비교 대상으로 언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네시스가) 하룻밤 사이에 성공할 수는 없으며, 렉서스처럼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기사는 마무리됐습니다. 우호적 분위기로 쓰였음에도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쉽지 않은 길을 갈 것임을 전망한 지점은 현대차엔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독일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유럽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리는 독일 3사의 고향인 독일은 어떻게 제네시스의 진출을 보고 있을까요?

# 독일 네티즌들 대상 설문 결과

독일 역시 제네시스 진출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특히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와 같은 유력 전문지는 G80과 GV80 등을 나눠 소개하는 등, 기사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독일 경쟁자들에 비해 더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가격에 민감한 운전자들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관련 설문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GV80 실내 / 사진=제네시스

우선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독일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현재까지 1만7712명이 참여했는데 그중에 47%가 ‘아니오’라고 답했고 32%가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는 대답을 유보했네요. 신차, 또는 새로운 브랜드의 유럽 진출에 호의적인 그간의 태도를 생각하면 부정적 답변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 프리미엄 시장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 1> 제네시스 브랜드가 독일에서 성공할 수 있나?

아니오 (47%)
네 (32%)
잘 모르겠다 (20%)

두 번째 질문은 GV80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제네시스의 SUV를 사겠는가?’라고 물었고 총응답자 7,139명 중 29%가 구입 의사가 있다고 했고 55%는 구입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습니다.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는 제네시스가 여름에 유럽에서 모험을 시작한다고 전하며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질문 2> 제네시스 SUV를 구입하겠습니까?

아니오 (55%)
네 (22%)
잘 모르겠다 (23%)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 역시 제네시스 진출 소식을 전했는데요. 출시 계획과 구성, 그리고 가격 등, 드러난 정보를 소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렉서스가 독일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점을 언급한 것을 보면 제네시스 성공 가능성 역시 높게 보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혁신적이지도 않고 긴 역사도 없다’

제네시스의 유럽 시장 성공 가능성을 어려운 도전, 혹은 호흡이 긴 싸움 등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한 매체들과 달리 슈피겔은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시장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교수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제네시스 모델들은) 예쁘고 좋다. 하지만 아우디, BMW, 또는 메르세데스를 상대로 성공하기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네시스는 그룹의 자매 브랜드 현대차 및 기아와 구분할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좋은 인테리어와 디자인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기에 충분할 수 있어도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도 했죠. 마지막으로 그는 “테슬라처럼 혁신적이지도 않고, 메르세데스나 BMW처럼 긴 역사도 없다.”며 냉정하게 바라봤습니다.

GV80 / 사진=제네시스

차만 좋으면 그만이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유럽 시장은 예전부터 브랜드 역사, 쌓아 올린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이 전통 안에는 켜켜이 쌓인 기술 혁신의 과정들 또한 포함됩니다.

따라서 아예 테슬라처럼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는 그런 접근 방법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강력한 기술적 성취를 등에 업고 과감한 전략으로 공략해야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캐딜락, 렉서스, 인피니티, 그리고 폭스바겐의 페이튼 등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슈피겔은 GV80에 대해 ‘그랜드 호텔처럼 모험심이 없고 올드하다. 새로운 메이커이지만 보수적인 접근방식을 보였다. 삼성과 LG의 고향으로부터 좀 더 인상적인 경치(결과물)를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라며 아쉬운 평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GV80의 스타일, 완성도, 성능 등, 차 자체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더 혁신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 보수적 전략에 쓴소리를 한 것이죠.

# 간절한가?

오토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훌륭한 대안이 되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대안이 되는 것 역시 앞서 두덴회퍼 교수나 슈피겔 등이 표현한 것처럼 혁신이나 전통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달리는 GV80 / 사진=제네시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달리는 GV80 / 사진=제네시스

이제 시작인 만큼 제네시스는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되는 무엇, 익숙하게 시장을 지배해온 프리미엄 브랜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가치로 난공불락과 같은 유럽 시장에서 경쟁할 때 성공의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과연 제네시스 브랜드는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유럽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바라는 성공은 그런 대견함의 영역에 안주해선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마인드로 덤벼들어야 합니다. 유럽 현지의 평가가 불편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성공은 저런 차가운 시선을 뚫고 얻어내는 것입니다. 제네시스는 간절함, 새로움, 뜨거운 열정으로 유럽 시장에 도전할 준비가 됐나요? 본격적으로 펼칠 이후 행보를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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