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④[황욱익의 로드 트립]
  • 황욱익 객원
  • 좋아요 0
  • 승인 2021.08.23 10:33
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④[황욱익의 로드 트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 잡지사 신입 시절, 해외 출장 계획이 잡히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업무가 많아지면 해외출장은 그야말로 귀찮음 그 자체였다. 자동차 잡지사의 해외 출장이 놀러 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기자들이 그런 인상을 심어 놓기는 했지만, 최소한 자동차 전문지(혹은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해외 출장은 정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라 낭만이나 여유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아무튼 해외 출장 일정이 잡히면 선배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어디를 가든 시간이 나면 국립(national)이나 지역 이름, 자동차 메이커 이름이 들어간 박물관이나 장소는 반드시 들러 보라는 것이다. 선배들의 이런 조언은 지금까지 해외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경력과 노련함에서 나오는 통찰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필자는 그런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마지막 세대라는 점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댄빌을 떠나 도착한 새크라멘토는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전편에 설명한 대로 오래된 도시의 낭만과 지저분함이 공존하는 곳이고,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만큼 새크라멘토는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곳에는 한때 포드 재단의 지원을 받았던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이 있다. 지역 이름이 들어간 자동차 박물관. 해외 출장을 준비할 때마다 선배들이 조언해 준 지역 이름이 들어간 곳이다.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은 캘리포니아 자동차 재단이 1983년에 설립한 곳이다. 원래는 자동차 재단에 소속된 회원들의 차들을 보관하던 장소를 1987년 일반에 공개하면서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1997년까지는 토우 포드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토우 자동차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거쳐 2009년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으로 재개관했다.

원래 이곳은 캘리포니아 자동차 재단 소속 회원들이 소유한 컬렉션 외에 은행가였던 에드워드 토우가 오랫동안 수집한 포드 컬렉션을 함께 보관하던 곳으로 디트로이트의 포드 박물관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포드 컬렉션을 소유한 에드워드 토우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은 다른 자동차 박물관과 약간 구조가 다르다. 물론 지금도 캘리포니아 자동차 재단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 사회 자동차 관련 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는데 200여대의 전시차 중 약 40%는 캘리포니아 자동차 재단 소유이며 나머지는 개인 컬렉터의 차를 임대해 전시 중이다. 임대라는 개념이 다른 박물관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은 자체적으로 보디작업(판금과 도색)을 제외한 리스토어와 정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개인 컬렉터들이 이곳에 차를 맡기면 박물관은 리스토어나 정비, 매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작업을 마치면 일정 기간 전시하는 구조다. 이곳 총괄 디렉터 델타 픽 멜로우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수익이 박물관을 운영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와 문화

미국의 자동차 역사는 1890년대부터 시작한다. 광활한 대지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의 자동차 문화는 각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1920년대 본격적으로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미국은 교외와 타운하우스 문화가 생겼으며,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대륙 전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속속 완성된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죽을 때까지 태어난 곳에서 반경 20km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으며,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을 거치는 상황에서도 탄탄한 시장을 유지했다.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은 전체가 하나의 크고 오래된 개러지 분위기다. 오래된 기름 냄새와 미국의 모터리제이션을 풍미했던 자동차, 미국 자동차 문화의 단면을 아주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마침 필자가 찾았을 때는 미국의 소방차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이벤트이다. 우리나라는 사실 자동차 문화가 전무하다. 모터쇼나 오토살롱은 헐벗은 여인들이 주류가 될 때가 많고, 문화를 내세우며 등장하는 사기꾼과 협회 중심의 계파 싸움만 끊이지 않을 뿐이다.

예전에 자동차 관련 이벤트에 대한 자문을 했던 적이 있는데 필자는 그때마다 소방차, 경찰차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자동차 전시를 늘 빼놓지 않았다. 아이들을 끌어모아야 수익성도 높아지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시장의 주인이 되는데 한국의 자동차 이벤트 담당자들은 그 부분에 대해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아쉽게도 한국의 자동차 행사장에서 소방차와 경찰차를 거의 볼 수 없는 이유다. 참고로 앰뷸런스 등 의료용 차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행사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찌 됐든 10대가 넘는 소방차는 성인이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주제의 전시인데, 박물관 측은 "소방차 특별 전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그들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존경의 의미이며, 나머지 한 가지는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친근한 소방차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그 역할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고 자동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소방관과 소방차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소방차는 이미 1900년대 초반 산업화가 진행될 때부터 다양한 형태가 등장했다. 초기 말이 끄는 마차에 물탱크를 실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석탄으로 공장을 운영하던 시절에 등장한 화학차, 소방차에 장착되는 펌프, 사다리차 등 소방차의 역사만 해도 100년이 넘어간다. 특히 자동차와 소방 장비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어 기계의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포드 모델T가 미국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고 사회 전반적인 문화가 자동차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박물관 내 곳곳에 소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면허를 취득하고 아버지 차를 빌려 자동차 극장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통과의례와 같았고, 일부 마니아층에서는 속도를 겨루기도 했으며 이는 그대로 미국 자동차 문화에 녹아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미국의 자동차 문화가 가장 왕성하게 발달한 시기로 우아한 테일핀 디자인과 V8 엔진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머슬카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오토모빌 뮤지엄은 그야말로 날씨 좋고 살기 좋으며 다양한 문화권이 모인 미국 서부의 자동차 문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래된 쇳덩어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 안에 얽힌 사연이나 스토리를 풀어내 그들만의 콘텐츠로 만드는 모습은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박물관 몇 군데 가 봤다고 그 나라의 자동차 문화를 모두 경험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해당 국가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고 이 역시도 좋은 경험치가 된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