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캐스퍼가 연일 화제다. 해치백 아니면 박스카였던 경차 시장에 모처럼 '물건'이 등장했다는 반응이다. 귀여운 외모에 SUV의 실용성까지 겸비했는데, 혜택까지 많은 경차다. MZ세대가 지갑을 열기에 딱이다. 

수탁 생산을 맡은 광주글로벌모터스(이하 GGM)도 본격적인 양산을 위한 막바지 점검에 돌입했다. 전사 자원관리 시스템(ERP), 제조실행 시스템(MES) 구축을 마치고, 선행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물량이다. GGM 측은 "올해 1만2000대를 찍어내고, 내년부터는 연간 7만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 '연간 7만대'가 국내에서는 도저히 소화하기 힘든 숫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7만대 이상 팔린 차량은 기아 쏘렌토(8만2275대), K5(8만4550대), 현대차 아반떼(8만7731대), 포터(9만5194대), 그랜저(14만5463대) 등 5종 뿐이다. 

게다가 캐스퍼가 속할 경차 시장은 지난 10년간 반토막 났다.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었지만, 점차 감소해 지난해에는 9만6231대까지 떨어졌다. 10만대 선이 무너진건 2008년 이후 처음이다. 

경차 시장에서 가장 흥행한 기아 모닝은 작년 3만8766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레이가 최근 차박 열풍과 함께 '역주행' 하고 있지만, 겨우 2만8530대다. 모닝을 턱밑까지 쫓던 쉐보레 스파크도 2만8935대로 줄어들며 단종설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SUV 인기에 편승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소형 SUV 시장에서조차 7만대 근처에 간 모델은 없다. 쌍용차 티볼리가 2016년 출시되자마자 5만6935대로 역대 가장 많은 연간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6만대를 넘지 못했으며, 최근 압도적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기아 셀토스도 작년에 겨우 4만9481대를 팔았을 뿐이다. 더욱이 캐스퍼와 가장 비슷한 체급과 가격대인 현대차 베뉴(1만7726대)는 그리 잘 팔리는 모델이 아니다.

다시말해, '연간 7만대'는 내수에서 소화해내기는 불가능하다. GGM 공장의 연간 최대 생산 물량은 10만대, 결국 국내에서 팔지 못한 잔여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인 셈이다. 

그렇다면 캐스퍼를 어디에 팔아야할까. 일단 현지 생산시설을 갖춘 인도·중국·남미는 무리다. 동남아시아에도 공장 설립이 한창 추진되고 있다. V8의 나라인 미국이나 호주가 캐스퍼같은 차를 좋아할리는 없다. 

'경차 왕국'으로 불리는 이웃나라 일본도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일본 경차 판매량은 171만8000대로, 규모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약 20배에 달하는 큰 시장이지만, 일본 경차 규격을 맞추기에 캐스퍼는 너무 크고 배기량도 높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당국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시키겠다고 밝힌 가운데, 닛산·미쓰비시를 비롯해 스즈키와 다이하츠가 도심형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때마침 현대차도 캐스퍼 기반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욱이 일본 현지에서도 현대차가 2009년 철수한 일본 시장에 재진출 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유럽이다. 기아가 피칸토(모닝) X라인으로 A세그먼트 SUV 구색을 맞추고 있는 반면, 현대차는 유럽 내 동급 SUV 라인업이 부재한것도 설득력을 더한다. 이 시장은 폭스바겐 크로스업, 피아트 판다 4x4, 스즈키 짐니 등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경차 규격을 맞추자니 유럽의 A세그먼트 소형차보다는 작고, 일본 경차 규격은 충족하지 못하는 게 국산 경차들의 약점"이라며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수출 판로 확보와 관련해 많은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캐스퍼는 현대차가 20여년 만에 내놓은 경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민·관 주도로 지역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광주형 일자리'의 산물이어서다. 당장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냉정한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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