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직접 타본 벤츠 EQS 자율주행 레벨3…"운전대 없는 삶은 아직 멀었다"
  • 뮌헨=신화섭
  • 좋아요 0
  • 승인 2021.09.20 10:05
[시승기] 직접 타본 벤츠 EQS 자율주행 레벨3…"운전대 없는 삶은 아직 멀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율주행 레벨3 시대가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레벨0~2에서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자를 돕는 수준이었다면, 레벨3부터는 시스템이 차량 운행 주도권을 가진다. 구체적으로 고속도로와 같은 특정 도로에서 정해진 구간까지 알아서 차가 달리는 셈이다. 차선 변경과 추월 등도 차량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특정 구간에서는 운전대마저 잡을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마침 IAA 모빌리티 2021이 한창인 독일 뮌헨 현지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S 자율주행 레벨3 차량에 동승할 기회가 생겼다. 피곤한 출·퇴근길, 자동차가 나를 직장과 집으로 알아서 데려다주는 '상상 속 현실'이 드디어 온걸까. 

EQS 자율주행 차량은 EQS 580 모델을 베이스로 제작됐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실루엣은 일반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눈에 띄는 요소가 있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그릴이다. 매끈하던 그릴에는 라이다 센서 두 개가 추가됐다. EQS 일반 모델은 워낙 광활한 평면을 가지고 있던 탓에 심심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막상 네모난 센서가 두 개나 설치되니 디자인을 해친다.

그리고 크게 티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한 GPS 장치를 설치하느라 루프 끝단에 볼록한 혹이 살짝 솟아났다.

실내는 기존 모델과 거의 동일하다. 스티어링 휠에 자율주행 버튼과 그 위에 표시등이 추가됐다. 버튼과 LED는 스티어링 휠 10시와 2시 방향에 각각 위치하며, 어느 쪽을 누르던 동일하게 작동된다.

본격적인 시험 주행이 시작됐다. 메르세데스-벤츠 관계자가 운전석에 앉았고, 기능 작동 여부를 관람하기 위해 보조석에 앉았다. 

출발 전, 거대한 센터 디스플레이에 TV를 실행시켰다. 벤츠 관계자가 직접 운전을 시작하자 TV 화면이 자동으로 꺼진다. 운전자 안전 및 규정으로 인해 5km/h 속도를 넘어서면 화면이 나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잠시 달린 뒤 교통 정체 구간을 만났다. 이 구간에서 벤츠 관계자는 스티어링 휠에 있는 버튼을 눌러 자율주행 모드를 실행했다. 버튼을 누르자 잠시 차량이 교통 상태를 체크하더니 여러 줄의 LED가 빛나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실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고 차가 움직이는 모습은 이미 상용화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및 차선 유지 기능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앞 차와 거리를 감지해 적당히 유지해주고, 차선을 인식해 차로 중앙을 유지해준다. 

가장 큰 차이는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놓고 있어도 별다른 경고 문구가 뜨지 않는다. 게다가 TV도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및 풀 셀프 드라이빙(FSD) 기능도 여전히 스티어링 휠을 잡고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레벨2 수준임을 고려한다면, EQS 쪽이 훨씬 더 '셀프 드라이빙'과 가까운 모양새다. 

달리던 중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차량은 곧바로 긴급 상황이 감지되었음을 경고했다. 자율주행 모드가 해제되지는 않았지만, 계기판이 요란하다. 건너편에서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사이렌 소리는 금세 작아졌고, 실내는 다시 TV 소리만 들려왔다.

벤츠 관계자는 "차량 안·팎에 마이크가 여러개 설치되어 사이렌은 물론 경적소리까지 감지한다"면서 "지금과 같이 건너편에서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로는 자율주행 모드가 꺼지지 않지만, 뒤에서 차량이 쫓아올 때는 운전자에게 제어권을 넘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자율주행 레벨3가 국내에 완전히 도입됐을 때 모습을 상상해봤다. 막히는 내부순환로에서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을 때,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는 가운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통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혹은 바쁜 일상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도 있겠다. 이러나 저러나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우선, 실행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이번 EQS의 자율주행 모드 최고속도는 60km/h다. 제한 속도가 없는 독일 아우토반에서도 고작 60km/h다. 자율주행 레벨3 기술 시연을 위해 내비게이션을 띄우고 막히는 도로를 찾아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는 자율주행 모드가 해제된다. 1차로를 달리고 있는 중임에도 휴게소나 진·출입로가 있는 구간을 지날 때는 스티어링 휠에 결국 손을 올려야만 한다.

꽉 막힌 도로에서 휴게소 출구까지 벗어나 겨우 자율주행 모드를 실행했지만, 금세 운전자에게 다시 차량 제어권이 넘어왔다. 이번에는 전광판에 떠있는 도로 경고 신호가 문제다. 결국, 시연 시간 40분 동안 온전하게 자율주행 레벨3가 실행된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자율주행 레벨3가 적용된 메르세데스-벤츠 EQS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고객이 EQS를 구매할 때 선택 사양으로 해당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수준으로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선택할지 의문이다.

자율주행 레벨3은 차량이 운전의 주도권을 가지고 필요시에만 운전자가 개입한다. 그러나 이번 시연에서 만난 EQS의 레벨3 기술은 여전히 운전자가 대부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도심도 아닌 아우토반에서 60km/h 이하 속도로도 꾸준히 나아가지 못한다면 진정한 레벨3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바라는 자율주행 시대는 생각보다 늦게 올 수도 있겠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