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정의선 회장 등에 업은 루크 동커볼케, 제네시스 CEO 가능할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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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15 14:09
[이완 칼럼] 정의선 회장 등에 업은 루크 동커볼케, 제네시스 CEO 가능할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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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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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이었죠. 유럽 언론은 현대자동차 그룹 크리에이티브 최고책임자(CCO) 루크 동커볼케가 제네니스 브랜드 최고책임자(Chief Brand Officer, CBO) 역할을 겸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때 현대차를 떠났던 그였지만 그 누구보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루크 동커볼케는 누구?

벨기에 출신의 이 자동차 디자이너는 1965년 페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외교관 부모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자동차 디자인을 스위스에서 공부했고, 그전에는 벨기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자동차를 공학적인 관점과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이 이때 키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90년 푸조에서 디자이너로 출발하게 되는데요. 2년 후 아우디로 옮기며 20년이 넘는  폭스바겐그룹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아우디 A4 아반트(B8), 아우디 R8 르망 등을 디자인했으며, 현대차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페터 슈라이어 밑에서 문제적 모델 A2 디자인도 진행했습니다.

이후 체코 브랜드이자 폭스바겐그룹에 속한 스코다로 갔다가 다시 아우디로 복귀한 그는 1998년부터는 람보르기니에서 일하며 무리시엘라고, 가야르도 등의 디자인을 책임졌습니다. 이 모델들의 성공으로 루크 동커볼케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더 알려지게 됩니다. 그룹 전체를 떠돌듯(?), 혹은 휘졌듯 일하던 그는 벤틀리를 끝으로 폭스바겐그룹을 떠나 2016년 현대자동차와 인연을 맺습니다.

람보르기니의 효자 모델 가야르도 / 사진=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의 효자 모델 가야르도 / 사진=람보르기니

현대차가 부여한 루크 동커볼케 역할은 표면적으로는 제네시스를 비롯한 럭셔리 사업부 디자인을 책임지는 것이었지만 그룹 디자인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됐고, 그룹 내 디자인 부서의 영향력은 루크 동커볼케의 등장, 그리고 벤틀리에서 함께 일했던 이상엽 디자이너까지 합류하며 더욱 강화됩니다.

현대자동차는 디자이너 외에도 유럽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까지 데려오는 등, 좋은 인력 유입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룹 전력 보강의 축은 역시 디자인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디자인만큼 빠르고 효과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고 강화하는 수단도 없을 테니까요.

루크 동커볼케는 CBO로 임명된 후 "세계적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영광이다. 제네시스에서 디자인은 브랜드이고 브랜드는 곧 디자인이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현대자동차 그룹이 디자인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가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엽 전무와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이상엽 전무와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갑작스러운 퇴사, 그리고 더 강력하게 복귀

페터 슈라이어를 통해 기아자동차 디자인 성장을 경험한 그룹 경영진은 새롭게 시작하는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디자인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길 바라며 이전에 없던 디자인 경영 지원을 하게 됩니다. 루크 동커볼케는 2년 만인 2017년 말, 부사장인 현대-기아자동차 총괄 디자인 자리에 오릅니다.

그렇게 거칠 것 없어 보이던 그의 질주는 2020년 4월 갑작스러운 퇴직과 함께 급정거하게 됩니다. 일신상의 이유, 건강 문제라고 회사는 퇴사 이유를 밝혔지만 일부는 향수병으로 고향 가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전했고, 다른 완성차 업체의 러브콜에 마음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내부 권력 다툼의 결과라는 이야기에 힘이 실립니다. 갑자기 커진 디자인 부서의 영향력을 내부에서 견제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보도도 있었습니다. '더구루'라는 매체는 올해 1월 기아 스포티지 출시와 관련해 경영진끼리 갈등이 있었고, 이것이 퇴사의 결정적 이유라는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일정에 맞게 차를 출시하려는 이들과 일정을 늦춰서라도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디자인 그룹 간의 다툼이 있었다는 얘기인데요. 하지만 정의선 신임 회장은 루크 동커볼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자신이 세운 그룹의 미래 전략에 맞춰 어렵게 데려온 인물을 이런 식으로 잃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루크 동커볼케의 퇴장이 자칫 정의선 회장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더 용납이 안됐을 겁니다.

루크 동커볼케는 남양연구소가 아닌, 독일 유럽 법인에서 일할 수 있는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없던 직책까지 만들며 루크 동커볼케를 껴안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정의선 회장은 최고 브랜드 책임자(CBO)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그를 핵심적인 위치에까지 올려놓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사진=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사진=현대자동차

#폴스타 CEO 토마스 잉엔라트의 길 따를까?

정의선 회장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루크 동커볼케는 이제 내부 견제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를 향한 이런 전례 없는 지원은 앞으로 그가 더 큰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치 볼보 디자이너 토마스 잉엔라트가 폴스타 CEO 자리에 오른 것처럼 말이죠.

토마스 잉엔라트는 독일인으로 폭스바겐그룹에서 오랜 세월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룹 디자인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볼보가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폭스바겐 디자인 센터 소장이라는 직함을 마지막으로 토마스 잉엔라트는 고향을 떠나 스웨덴으로 갑니다.

2012년부터 볼보의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가 된 토마스 잉엔라트는 5년 후인 2017년 깜짝 소식을 전합니다. 볼보자동차 자회사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경영을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전략에 따라 영입한 디자이너에게 전기차 브랜드 경영까지 맡기다니,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 잉엔라트 폴스타 CEO / 사진=폴스타 
토마스 잉엔라트 폴스타 CEO / 사진=폴스타 

토마스 잉엔라트가 디자이너로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간 최초의 인물은 아닙니다. GM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네스빗은 GM과 합작 회사인 중국 우링과 바오준의 CEO가 되었죠. PT 크루저를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또 렉서스 회장이었으며 글로벌 브랜드 사장 자리에 오른 토쿠오 후쿠이치 역시 자동차 디자이너였습니다.

#만만치 않은 브랜드 전략,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까?

현재 제네시스 브랜드를 이끄는 인물은 현대자동차 장재훈 사장입니다. 제네시스뿐만 아니라 아이오닉의 성공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데 그 역시 정의선 회장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장재훈 사장에게 다른 임무가 부여된다면 제네시스 브랜드 다음 최고 경영자 자리는 루크 동커볼케의 차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루크 동커볼케 / 사진=제네시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적으로 안착해야만 합니다. 제네시스 브랜드 최고 책임자로서 루크 동커볼케가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는다면 더 높은 곳까지 그는 거침없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한 가장 큰 관문,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유럽 시장입니다.

루크 동커볼케의 CEO 가능성을 보도한 독일 아우토하우스는 '과연 제네시스가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도 독자에게 던졌습니다. 1909명이 이 질문에 답을 했는데 긍정적으로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은 33%, 실패할 것이라고 본 부정적 답변은 59%였습니다.

새 브랜드의 유럽 시장 진출에 비교적 호의적인 독일인들이지만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서 자리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이 질문에는 냉정하게 답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루크 동커볼케를 향한 회사의 지지와 응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가 디자이너로서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패는 어쩌면 제네시스의 유럽 시장 성적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수적인 한국 대기업에 새로운 풍경을 유럽의 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루크 동커볼케의 앞으로의 행보를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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