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대박난 캐스퍼, 걱정되는 5가지 이유 "계속 잘 팔릴까?"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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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28 13:58
[전승용 칼럼] 대박난 캐스퍼, 걱정되는 5가지 이유 "계속 잘 팔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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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사전계약 하루 만에 무려 1만8000대를 돌파하며 역대 여섯 번째로 많은 계약 대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지인들도 하루가 멀게 차 어떻냐며 다양한 질문을 하네요. 

캐스퍼는 여러 면에서 꽤 의미 있는 모델입니다. 현대차가 20년 만에 국내에 새롭게 선보인 경차며, 그동안 없던 첫 번째 경형 SUV 입니다. 오프라인 매장 없이 100%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데다가, 민·관 주도로 지역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광주형 일자리'의 결과물입니다.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퇴임 후 사용한다며 캐스퍼를 예약하는 등 많은 분들이 이 차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캐스퍼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캐스퍼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일어날 많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스퍼가 꾸준히 잘 팔릴지는 의문입니다. 성공적으로 출발했지만, 마냥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5가지 이유입니다. 

#1 높은 가격대, 이 돈이면 차라리?

일단 '경차' 타이틀을 달고 너무 높은 가격에 나왔습니다. 시작 가격은 스마트 트림이 1385만원이고, 모던 트림은 1590만원, 최고급 트림인 인스퍼레이션이 1870만원입니다. 최고급 트림에 1.0 터보 엔진을 넣으면 90만원이 추가돼 1960만원이고요. 여기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2057만원까지 올라갑니다. 개인적으로 '이 돈이면 차라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선택지가 확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캐스퍼를 구매하는 모든 사람이 최고급 트림에 풀옵션 모델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급 트림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은 경차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영업용을 제외한 경차 소비자의 70~80%는 중간 트림 이상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싸면 안되죠. 모닝도 1.0 터보 모델이 있었는데, 풀옵션이 1814만원이었습니다. 저조한 판매량에 지금은 단종됐고요. 

모던 트림에 1.0 터보 엔진만 선택해도 1700만원이 됩니다. 모닝과 스파크, 레이 최고급 트림에 필수 옵션까지 알뜰하게 넣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또, 등급을 높여 소형 SUV인 베뉴와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 기본 트림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내비게이션(143만원)과 스마트센스(70만원) 옵션을 넣으면 1900만원이 됩니다. 모닝은 풀옵션을 사고도 100만원 넘게 남고, 베뉴와 아반떼는 다음 트림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패턴으로 이탈하는 소비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캐스퍼 가격 공개 이후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신차뿐 아니라 중형 이상의 중고 국산차와 수입차까지 대안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니 말이에요. 

캐스퍼 모던 트림. 95만원의 '캐스퍼 액티브 l' 옵션을 선택하면 1.0 터보 엔진이 장착된다 
캐스퍼 모던 트림. 95만원의 '캐스퍼 액티브 l' 옵션을 선택하면 1.0 터보 엔진이 장착된다 

#2 저렴한 소재와 아쉬운 완성도, 그림과 실물의 괴리감 '온라인 판매의 역효과?'

풀옵션이 2057만원이라지만, 이 차의 실내외 디자인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의 가격은 1385만원입니다. 뭐 하나만 추가해도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비싼 소재를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캐스퍼는 지금까지 나온 현대차 중에서 가장 많이 치장한 모델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잔뜩 꾸며진 이미지만 본 소비자들이 막상 실물을 경험했을 때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실제로 최근 캐스퍼 시승회에 다녀온 여러 기자들이 실차를 보니 생각보다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차체에 너무 많은 디자인 요소를 넣은게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디자인 요소는 그러려니 하더라도, 이 디자인에 사용된 소재가 워낙 저렴한 탓에 마냥 예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각 부분의 연결과 마감도 개선이 필요하고요. 실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시보드를 비롯해 도어패널과 센터페시아, 센터터널 등 화려한 디자인에 비해 소재와 마감, 조립 품질 등은 기대에 못 미칩니다. 경차지만 ‘고급’이라고 2000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생각보다 더 저렴한 느낌이 들어 당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초기 구매자들의 만족도가 좋지 않다면, 부정적인 입소문은 급속히 퍼질 겁니다. 이 경우는 100% 온라인 판매라는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전시장이 없어 실물을 확인할 수도 없고, 부정적 소문을 방어해줄 영업사원도 없습니다. 현대차가 적절한 자정작용(또는 완충작용)을 해주지 못한다면 앞서 말한 이탈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아쉬운 연비, 유류비 혜택이 다 기름값으로..

캐스퍼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분이 1.0 터보(100마력, 17.5kg.m)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경차보다 크고 무거운 SUV다 보니 겨우 76마력을 내는 1.0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주행 성능이 부족할 것이라 예상하는것 같습니다. 토크도 9.7kg·m 밖에 안 되고요. 실제로 캐스퍼는 모닝(910kg)보다 75kg 무거운 985kg입니다. 파워트레인을 1.0 자연흡기에서 1.0 터보로 업그레이드하면 45kg이 추가돼 1030kg이 됩니다.  

총 1030kg인 캐스퍼 1.0 터보의 연비는 12.8km/l(15인치 기준)로, 모닝 1.0 자연흡기(15.7km/l, 14인치)보다 리터당 2.9km 떨어집니다. 22.7% 차이가 나는 것이죠. 1.6 자연흡기 엔진을 단 베뉴(13.7km/l, 15인치) 및 아반떼(15.4km/l, 15인치)와 비교해도 각각 7.0%, 20.3% 낮습니다. 베뉴와 아반떼가 케스퍼보다 150~175kg이나 더 무거운데 말이에요. 무게도 무게지만 면적도 크니 공기 저항도 더 많이 받을 텐데요. 실제 주행 연비가 어느 정도 나올지 궁금합니다. 

복합연비 기준으로 1년에 2만km를 주행한다고 했을 때 캐스퍼의 유류비는 250만원으로, 아반떼(208만원)보다 42만원이 더 나갑니다(리터당 1600원 기준). 연간 20만원의 경차 유류비 혜택을 받아도 매년 22만원이 더 드는 것이죠. 같은 기준으로 베뉴는 234만원, 모닝은 204만원이 듭니다. 주행거리와 연식이 길어질수록 경차 혜택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죠.

#4. 세컨카로 캐스퍼? 경차 혜택 꼼꼼히 따져야

유류비 절약을 목적으로 캐스퍼를 세컨카로 구매한다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20만원의 유류비를 지원해주는 경차 혜택은 지원은 1세대에 오직 1대의 경차만 소유하고 있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소형차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캐스퍼를 사더라도 유류비 혜택을 못 받습니다. 이는 모닝과 스파크, 레이도 마찬가지죠.

다만, 취득세 혜택은 늘었습니다. 경차에 지원되는 취득세 혜택은 원래 올해 종료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3년이 연장된 데다가, 상한선도 50만원에서 65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2000만원짜리 캐스퍼를 살 때 내야 하는 30만원의 취득세가 16만원으로 줄어듭니다. 취득세 100% 감면 기준이 1250만원에서 1600만원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한 ‘캐스퍼를 성공시키려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여기까지 이어진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봅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차 혜택을 조금씩 줄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까지 경차 취득세는 100% 감면해줬습니다. 2019년부터 1250만원 기준으로 4%를 부과하는 거고요. 지금이야 캐스퍼 덕분에(?) 상한선이 1600만원 기준으로 올라갔지만, 3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뭐, 경차 시장 유지를 위해서는 자동차세나 보험료, 주차비, 통행료 등의 유지비 지원은 계속해줄 필요가 있겠지만요.   

#5. 한정된 경차 시장, 캐스퍼로 다 채우려고?

기대 이상의 사전계약을 기록했지만, 캐스퍼가 속한 국내 경차 시장은 지난 10년간 반토막 난 상황입니다.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작년 9만6231대까지 떨어졌는데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대 선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당장이야 신차 효과로 판매량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측은 올해 1만2000대, 내년부터 연간 7만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이 7만대를 국내에서 소화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작년 7만대를 넘은 차량은 그랜저(14만5463대), 포터(9만5194대), 아반떼(8만7731대), K5(8만4550대), 쏘렌토(8만2275대) 등 5종에 불과하거든요. 소형 SUV 시장의 압도적 1등인 셀토스도 2017년 5만6935대 이후 점점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7만대 중 절반을 국내에 소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모닝이 3만8766대였고, 경쟁자인 쉐보레 스파크도 2만8530대에 그쳤습니다. 최근 차박 열풍과 함께 역주행한 레이도 2만8530대에 머물렀고요.

캐스퍼에 대해서는 여러 복잡한 생각이 교차합니다. 오랜만에 추가된 경차, 첫번째 SUV 경차, 고용 창출을 위한 신차, 침체된 경차 시장을 살릴 신차 등의 이유를 고려하면 무조건 잘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경차와 어울리지 않는 가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네요. 서민들이 저렴하게 탈 진짜 경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캐스퍼가 잘 팔리면 현대기아차의 전체적인 가격이 올라갈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캐스퍼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더 오래 지켜봐야 할 노릇입니다. 제가 지적한 5가지 이유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고, 단순한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기사나 주변 평판은 하나의 의견일 뿐, 캐스퍼의 진짜 모습은 여러분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일지 다른 생각일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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