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⑦[황욱익의 로드 트립]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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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03 10:00
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⑦[황욱익의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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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외국인 여행객이라면 거의 올 일 없는 리노를 우리가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 전역에 크고 작은 자동차 박물관이 약 100여 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리노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그야말로 보물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문화가 다양하지만 생각보다 미국에서 자동차 관련 박물관은 캘리포니아 중심의 서부 지역과 디트로이트 중심의 동부 지역에 몰려 있다. 자동차 문화 역시 각 지역 별로 큰 차이가 있으며, 농업이 중심인 중부 지역에는 자동차 대신 다른 문화 관련 시설이 많다.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 미국 

예전에 지프의 개발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그때 지프의 페인트 내구성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워낙에 지프가 험로를 달리며 내구성에 집중한 차종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자체 표면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스크래치가 생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비슷한 콘셉트의 다른 차들은 숲을 지나거나 조금만 험하게 굴려도 차체가 손상될 때가 많아 아예 지프를 제외하고 원래 콘셉트에 맞는 시승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특별한 기술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진 필자의 질문에 대해 개발자의 대답은 매우 의외였다. ‘그냥 두껍게 여러 번 칠하는 게 전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넘길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미국인들이 차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물자 혹은 재화에 대한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어디를 가도 풍요롭다. 특히 음식이나 일반 재화의 풍요로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인데 거대 규모의 마트를(그래봐야 그들에게는 동네 마트인데 그 물건이 다 팔리는지 의문이다) 쉽게 볼 수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미국 스케일이 어떤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생활 물가도 매우 싼 편이라 미국 여행기간동안 음식과 기름 값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에 세웠던 예산에 비해 음식값과 기름 값 지출은 매우 낮아 전체적인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거의 안 했다. 서부에만 있다는 인 앤 아웃 버거를 비롯해 어디를 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펜더익스프레스, 쟈니스 등 체인 음식점을 주로 이용했다. 커피숍이나 카페도 자주 이용했는데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은 바로 팁 문화였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제외하고 서버(주문을 받거나 하는 파트타이머)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팁을 준비해야 한다. 

담당 서버들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필요한 거 없냐?’ 물어보며 친절을 베푸는데 전통적으로 팁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유럽이나 일본,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문화인데 예상 외로 팁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큰 편이다. 주로 음식 값의 20~30%를 팁으로 주는데 신용카드를 이용할 경우 계산서에 팁을 따로 표기하기도 한다. 

팁이라는 게 주는 사람 맘이긴 하지만 않은 자리에서 생돈을 뜯기는 기분은 늘 여전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체크아웃을 하면서 500엔을 테이블 위에 팁으로 두고 나왔는데, 몇 시간 뒤 호텔로부터 500엔 두고 갔다는 전화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팁은 좀 뻔뻔하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고로 호텔에서는 체크아웃할 때나 청소를 부탁할 때 침대 위에 1달러를 수고비로 놓는 경우가 많다.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하라 컬렉션

우울할 것만 같은 리노에는 자동차 마니아라면 반드시 들러볼 만한 공간이 있다. 예전 선배들이 얘기해 준 충고에 딱 부합하는(지역 이름이나 내셔널이 들어가는 곳은 반드시 가라) 이름의 자동차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공식 명칭은 내셔널 오토모빌 뮤지엄 하라 컬렉션(National Automobile Museum HARRAH Collection)으로 리노에 처음 카지노를 세운 윌리엄 F. 하라가 수집한 자동차들이 중심이다. 전체 전시 차종은 약 200여대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까지 미국 대륙을 누빈 다양한 차들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자동차 박물관과 달리 이곳은 이탈리아 국립 자동차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쉬럼프 컬렉션과 같이 증기차부터 다루고 있다. 

1989년 11월 5일에 개장한 하라 컬렉션의 규모는 미국 내 최대 규모다. 물론 전시 차종 숫자로는 더 많은 곳도 있겠지만 소장가치나 경제적 규모로 보면 다른 박물관과 그 규모에 있어 차이가 크다. 하라 컬렉션의 대표적인 소장품은 프랭크 시나트라와 엘비스 프리슬리, 존 웨인 등 스타의 자동차가 14대, 영화에 출연했던 자동차 5대, 레이스 챔피언 머신 8대를 비롯해 금장 DMC-12(드로리언), 미국에서 제작한 롤스로이스, 제라리 등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생기기 전까지 리노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박과 환락의 도시였는데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윌리엄 하라가 설립한 하라 호텔&카지노가 있었다. 현재도 성업 중인 하라 호텔&카지노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리노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1978년 윌리엄 하라가 사망 때까지 수집한 자동차는 무려 1450대로 네바다 스파크에 있는 창고에서 보관 중이었다. 

이후 호텔 체인인 홀리데이 인이 하라의 컬렉션을 모두 인수한 후 일부는 1980년대 공개 경매를 통해 판매했으며,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차들 175대를 선정해 비영리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는 미국 역사 상 가장 큰 규모의 기증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었다. 당시 네바다 주지사였던 로버트 리스트는 하라 컬렉션을 보존하기 위한 법률 제정까지 계획하면서 홀리데이 인이 진행하려는 일반 경매를 늦추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설립을 위한 비영리 박물관 재단이 설립되었고 그때 기증된 자동차들이 현재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다. 박물관은 총 4개의 갤러리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지프 차체로 만든 페라리가 있다?

그 중 가장 특이하고 귀한 차를 꼽자면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금장 DMC-12(드로리언)과 제라리다. 총 두 대가 제작된 금장 DMC-12 중 나머지 한 대는 LA에 있는 피터슨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1980년에 제작된 이 차는 차체 전체를 24k 금으로 도금한 특별 모델이다. 원래 모델은 스테인리스 스틸 보디이다. 하라 컬렉션의 DMC-12는 사업가인 셔우드 마샬이 구입 후 하라 컬렉션에 기증한 모델로 유일하게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며 차대번호는 4300이다. 

피터슨의 금장 드로리언은 4301이며 자동변속기 모델이다. 드로리언은 1975년 존 드로리언이 설립한 회사로 한 개의 모델(DMC-12)만 생산하고 1982년 파산했다.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등장하는 차다. 

지프 왜고니어의 보디에 페라리 365GT의 V12 엔진을 이식한 제라리는 윌리엄 하라가 직접 제작한 사륜구동 자동차다. 원래 하라는 엔초 페라리에게 사륜구동 모델 제작을 제안했는데 이 제안이 거절되면서 직접 제작에 나섰다. 이때 엔초 페라리는 매우 기분 나빠했는데 윌리엄 하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페라리 356GT의 엔진과 구동계를 왜고니어의 차체에 이식해 직접 시운전을 하기도 했다. 

제라리가 처음 나왔을 때 원래의 디자인을 해친다는 의견이 있어 1977년 두 번째 모델을 제작할 때는 왜고니어의 외관 디자인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실내는 페라리 365GT의 부품을 대거 사용했다. 1969년에 제작된 첫 모델은 2008년 이베이를 통해 판매되었고 1977년에 제작된 두 번째 모델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제라리다. 제라리라는 이름은 페라리에서 앞머리 글자만 지프의 J로 바꾼 것이다.

#1920년대 미국에는 전기차가 있었다

이밖에도 케첩 회사로 유명한 하인즈 패밀리의 러스트 하인즈가 디자인하고 캘리포니아의 코치 빌더 보먼&슈워츠가 제작한 팬텀 코르세어, 1930년대 공기역학 실험작인 에어로모빌, 1910년대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불린 머서 시리즈 J 타입35 같은 차들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1920년대까지 전체 미국 시장의 70% 가까이 차지했던 다양한 디자인의 증기와 전기차도 함께 전시 중이다. 지금이야 친환경을 내세우며 전기차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지만 사실 전기차의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정점은 1950대와 1960년대이다. 오일쇼크 이전의 미국차들은 공격적이고 실험적이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장르인 머슬카도 이때 등장했고 금주법을 피해 성장하던 핫로드의 역사도 한 번에 볼 수 있다. 또한 지금은 사라져 버린 패커드나 뒤센버그, 오버랜드, 스튜드베이커 같은 메이커의 대표 모델도 볼 수 있는데 유럽과는 다른 미국 특유의 과감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리노라는 도시는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카지노가 모여 있는 외곽 지역은 우울함과 황량함이 가득하지만 다운타운을 지나 트러키강 건너편 거주 지역은 여느 미국의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리노는 금광산업이 몰락하면서 도시를 먹여 살리던 카지노 사업도 함께 몰락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의 하나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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