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기름값 대란, 4~5년 간다? 폭스바겐 "전기차 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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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5 13:03
[이완 칼럼] 기름값 대란, 4~5년 간다? 폭스바겐 "전기차 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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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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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죠. 오히려 다른 곳보다 더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가스료와 전기료의 유럽인데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것은 물론, 석탄 사용 증가에 따른 환경 문제까지 겹치며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의 주유소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최근 독일의 주유소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최근 프랑스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며 월 2000유로(세후) 이하 소득자, 약 600만 가구에 1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얼마나 유럽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난방과 관련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독일에서는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걱정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주유소 기름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중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새롭게 들어설 연립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에너지난 해결이 돼버렸습니다.

짧게는 내년 봄까지, 어떤 전문가는 1년 정도, 심한 경우 4~5년 동안 에너지 문제가 세계 경제를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 그룹을 이끄는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국 주유 대란이 만든 여론의 변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여론의 악화가 언론을 통해 쏟아지기 시작한 10월 초 이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난 9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영국 운전자들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직접적 이유는 유조차 등 연료 운반을 위한 대형 트럭 운전사들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에서 일하는 동유럽 출신 운전사들이 무비자로 일하기 어렵게 되자 상당수가 영국을 떠났고, 기름을 싣고 나르는 트럭 기사의 수가 크게 줄며 많은 주유소가 기름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온종일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렸음에도 차에 기름을 채울 수 없게 된 영국인들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죠.

사진=픽사베이

영국 운전자들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기차로 향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분석했더니 이 무렵 영국에서 전기 자동차 검색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독일 슈피겔지가 전했습니다. 영국 자동차 비교 포털 카와우(Carwow)의 한 임원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주유 대란 발생 며칠 만에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56%나 증가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관심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판매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독일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훼퍼 교수는 브렉시트로 전기차는 영국에서 축복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번 영국의 주유 대란에 따른 전기차 수요 급증 효과가 6개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전기차에 올인을 선언한 폭스바겐에겐 영국 주유 대란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영국만이 아닙니다.

#폭스바겐 회장의 뜻밖의 발언

앞서 설명했듯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에너지 대란은 가스와 석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요가 적었던 2020년을 지나며 급격하게 기름 소비가 늘며 올해 초부터 기름값 상승이 예견됐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수개월 전부터 9월 이후 가스와 석탄 등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기름 가격 상승 또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폭스바겐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폭스바겐

이렇게 기름값이 치솟자 폭스바겐 그룹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SNS를 통해 엔진 자동차를 구입하지 말고 전기차를 사라는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그는 폭스바겐 티구안이 전기차 ID.4보다 킬로미터당 30% 더 비용이 들고, 아우디 Q5가 아우디 e-트론보다 40%, 그리고 스코다 코디악이 전기차 엔야크보다 50% 더 비싸다는 자동차 전문지 보도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재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자동차 그룹의 대표 모델, 효자 모델들을 사지 말라고 말하다니 제정신인가? 이런 반문을 할 수밖에 없는 놀랄 만한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폭스바겐 그룹이 전기차에 올인을 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번 발언을 아주 이해 못 할 것은 아닙니다.

사실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은 이번뿐만 기회 될 때마다 전기차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심지어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해 요금을 물리는 'CO2 요금제(일종의 벌금)'의 액수를 정부가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발언은 폭스바겐의 전기차 올인 전략과 철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그가 치솟는 기름값에 전기차 특수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는 없겠죠?

또 이번 발언이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독일 내 공장 인력을 최대 3만명까지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한델스블라트 보도 이후에 나왔다는 점도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이 보도 후 공장을 짓고 안방까지 들어온 테슬라와 맞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옹호론과 반대로 대량으로 실업자를 양산하는, 대안 없는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무비판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비판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가 현재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자신들의 대표적인 엔진 자동차들을 버리면서까지(?) 전기차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전기차에 올인한 기업으로서 당연한 태도일 수 있으며, 또한 구조조정에 따른 비판 여론을 지지 여론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전략적 차원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산라인 교육 과정을 임원들과 참관 중인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 사진=폭스바겐 
새로운 생산라인 교육 과정을 임원들과 참관 중인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 사진=폭스바겐 

그 발언의 배경이 무엇이 됐든, 기름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에너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한 대라도 더 많은 전기차를 팔아야 하는 폭스바겐에겐 기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전기차용 전기료가 언제 또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전기차에 사운을 건 그들의 지금 상황입니다. 과연 폭스바겐은 에너지 대란 속 웃는 승자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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