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경제 수준도 높고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무려 22시간 만에 어바인에 도착한 우리는 그대로 곯아떨어져 다음 날 오후에야 일어났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곧장 렌터카를 빌려 일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유로운 남부 캘리포니아의 정취를 느낄 틈이 없었다. 오래된 도시가 가득한 북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를 떠나 남부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처음 맞는 날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 우리가 숙소를 잡은 어바인은 캘리포니아 대표 도시인 LA에서 남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다. PCH와 분위기가 다른 해안도로와 롱비치, 라구나비치, 뉴포트비치 등 생활수준이 높은 부촌과도 매우 가깝다.

사실 외국에 갔을 때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동차에 관련된 곳 혹은 관광지와 먼 외진 지역을 찾아다니다 보니 남들 다 가는 관광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바인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LA의 '위스키 어 고고(1964년부터 머틀리 크루, 메탈리카, 도어즈, 앨리스 쿠퍼, 린킨 파크 등 유명 록 뮤지션이 거쳐간 라이브 클럽)'와 같은 유명 클럽이 모여 있는 선셋 스트립이나 할리우드 등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저녁 무렵 우리는 LA의 파머스 마켓 플레이스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이 반드시 들른다는 파머스 마켓 플레이스는 거대한 쇼핑단지로 아기자기한 구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파머스 마켓 플레이스는 원래 농산물을 거래하던 시장이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농산물 유통 외에 다양한 쇼핑센터가 들어서고 LA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시장하면 떠오르는 지저분한 분위기를 깔끔하게 정돈했고 명품숍과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코리아타운과도 가깝지만 코리아타운은 따로 들르지 않았다.

미국의 분위기는 지역마다 매우 다르다. 한국처럼 도나 시 경계를 지나지 않아도 블록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오래된 도시와 깔끔한 첨단 도시가 바로 이웃하고 있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중 LA는 가장 편차가 큰 곳이다. 해안가 비버리힐스와 같은 부촌은 그 아래 빈민가와 거의 붙어 있고, 영화의 메카라 불리는 할리우드와 1960년대부터 미국 록 음악의 전당이라 불리는 선셋 스트립까지 같은 도시 안에서 구획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재미라면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슬럼이나 갱단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매우 크다. 한때 LA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에 하나였고 지금은 치안이 비교적 괜찮다고 하지만 갱단의 활동은 여전하다. 여행을 할 때, 특히 자동차로 여행을 할 때는 이런 부분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LA 다운타운을 벗어나면 생각보다 많은 우범지대가 있다. 구글맵에서는 우범지대와 슬럼을 피해갈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되고 지역에 따라 근처에 어떤 범죄가 어느 정도의 빈도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앱도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LA 근처에서는 스톡턴과 캄튼 지역이 우범지대로 가장 유명하다. 몰락한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여전히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다. 현지 코디네이터 말에 의하면 "공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치안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은 밤에 돌아다니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일 년 내내 이벤트가 열리는 할리우드 같은 지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라이브 클럽이 몰려있는 선셋 스트립이나(이곳 밤거리에서는 마약 중독자도 쉽게 볼 수 있다) 산타모니카 뒷골목 같은 곳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노숙자들도 상당히 많다. 우스갯소리로 빈대와 코로나도 피해가는 존재가 알코올 중독 노숙자라고 할 정도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민낯을 보는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인기 관공명소인 할리우드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충분하다.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할리우드는 밤에도 인파가 상당하다. 명예의 전당과 하드록 카페 주변은 늘 사람들이 붐비고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톰 크루즈 주연의 미이라 프로모션이 한창이었다. 영화의 흥행은 그야말로 참패였지만, 미이라의 대규모 프로모션은 그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쇼핑몰 전체를 미이라의 세트장처럼 꾸민 구성은 마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집트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할리우드는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가득하다. 특히 하드록 카페 주변은 바와 식당 등이 즐비한데 미국에서 늦은 시간까지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영화 산업 하나 가지고 파생된 다양한 산업이 할리우드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낮에는 운 좋으면 유명 영화배우나 록스타 등 연예인을 볼 수 있으며 늘 활기가 넘친다.

확실히 남부 캘리포니아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비해 여유가 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고 어디를 가도 활기가 가득하다. 아마 일 년 내내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는 환경 때문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 사계절 내내 따라다니던 비염과 천식 증세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거짓말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부촌에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하고 멋진 조명을 조금만 벗어나면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1990년대를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기 록그룹 포이즌은 'Something to believe in'이라는 노래에서 이런 부분을 강력하게 꼬집었는데 차가운 거리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와 1마일 거리에는 금으로 된 컵을 사용하는 부자들이 산다는 내용이 그대로 와닿았다. 

LA에서 짧은 관광(?)을 마치고 늦은 밤 다시 미국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다는 어바인으로 돌아왔다. 차분하고 간간히 고층 빌딩이 보이는 어바인은 현대차를 비롯해 카르마, 혼다 등의 R&D 센터가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신도시답게 도로환경이나 인프라는 그동안 다녔던 미국 지역 중에 가장 좋았으며 치안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어바인을 기점으로 미국 자동차 문화를 가장 화끈하게 즐길 수 있다는 곳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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