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MG] 피터 슈라이어, 차를 넘어 브랜드를 디자인하다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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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17 17:15
[주말의 MG] 피터 슈라이어, 차를 넘어 브랜드를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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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의선 회장의 삼고초려로 기아에 몸을 담은지 15년여만이다.

자타공인 그는 '디자인 기아'를 만든 인물이다. '직선의 단순화'란 기치 아래 호랑이 코에서 영감을 얻은 타이거노즈 그릴을 선보였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의 지휘 아래 탄생한 K시리즈는 형님인 현대차를 위협했고, 새로운 콘셉트카가 공개될 때 마다 많은 이들이 양산차를 손꼽아 기다렸다.

# 폭스바겐 골프 디자인을 완성하다

피터 슈라이어는 195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뮌헨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시작한 것은 1980년 아우디부터다. 

그는 아우디에서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 콘셉트 설계 등 다양한 디자인 부서를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1991~1992)와 콘셉트 디자인 스튜디오(1992~1993) 등 선행 디자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1994년부터 아우디 디자인 총괄을 맡은 그는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차들을 쏟아낸다. 프리먼 토마스가 디자인한 TT 콘셉트를 양산화하는 것부터 파격적인 A2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이외 A3와 A6 등 주력 라인업의 디자인도 이끌었다.

2002년부터는 폭스바겐그룹 산하 여러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맡는다. 폭스바겐에서는 4세대 골프와 뉴 비틀의 디자인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4세대 골프는 폭스바겐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후 출시되는 골프 특유의 스타일 역시 4세대 모델을 계승하고 있다.

이어 람보르기니에서는 무르시엘라고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당시 람보르기니 디자인 총괄이었던 루크 동커볼케와의 인연은 현대차그룹에서 다시 이어진다.

# '디자인 기아'를 만들다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에서 처음으로 디자인한 콘셉트카 큐(Kue).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에서 처음으로 디자인한 콘셉트카 큐(Kue).
기아 타이거노즈 그릴이 처음 적용된 콘셉트카 키(Kee).
기아 타이거노즈 그릴이 처음 적용된 콘셉트카 키(Kee).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정의선 회장(당시 기아차 사장)의 요청으로 기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합류한다. 폭스바겐그룹에서 26년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기아 브랜드 디자인의 방향성을 '직선의 단순화'로 정의했다. 하나의 선이 주변 환경의 비율과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구현하겠다는 목표였다. 피터 슈라이어 체제 후 처음 출시된 모하비는 이 같은 철학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 과정에 관여한 첫 모델은 2007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공개된 SUV 콘셉트카 큐(Kue)였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외형이 특징이었던 큐는 이후 스포티지R로 양산화 된다. 쏘렌토R로 양산화된 KND-4도 이 같은 지향점을 잘 반영했다. 

같은 해 기아는 스포츠 콘셉트카 키(Kee)를 통해 타이거노즈 그릴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당시 '슈라이어 라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호랑이 코 디자인은 뒤이어 출시된 쏘울 콘셉트카에도 적용돼 기아의 패밀리룩으로 자리잡는다. 참고로 양산차에 타이거노즈 그릴이 처음 사용된 것은 이듬해 출시된 중형세단 로체 이노베이션이다.  

K5 스케치
K5 스케치

2009년과 2010년에는 K7과 K5를 각각 선보이며 K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 '빛과 선의 조화'를 지향점으로 내걸었던 K7은 당시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던 준대형 세그먼트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었다. 이어 K5는 '역대급 국산차'로 불리며 특유의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다. RCA 명예박사는 세르지오 피닌파리나, 조르제토 주지아로에 이어 자동차 디자이너로서는 세 번째였다.

그의 행보에 당시 폭스바겐그룹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회고록을 통해 "평생 무언가를 후회해본 적 없이 살아왔지만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에 간다는 걸 말리지 않은 건 후회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배가 아팠던 것은 폭스바겐그룹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의 신흥 자동차 메이커들은 물론, 중국 현지 디자인센터 설립을 추진하던 글로벌 메이커들이 피터 슈라이어에게 여러 차례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스타 디자이너의 힘을 절감한 중국 업체들이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대거 스카웃한 것도 슈라이어를 통한 기아의 성공을 봤기 때문이다.

# 디자이너에서 경영자로

피터 슈라이어는 2013년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승진한다. 디자이너 출신 인물로는 최초였다. 당시 현대차그룹이 그를 얼마나 높게 평가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두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직을 맡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이 강조해왔던 '품질을 통한 디자인 혁신'을 높이는 데도 힘썼다. 

슈라이어는 기아에 이어 현대차 디자인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뚜렷한 기존 헥사고날 그릴을 용암이 녹아내리는 형상에서 영감을 얻은 캐스캐이딩 그릴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러 브랜드에서 헥사고날 패턴을 사용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는 현대차 6세대 그랜저(IG)와 3세대 i30(PD) 등을 비롯해 제네시스 브랜드 시작을 알렸던 EQ900, 초기형 G80 및 G70 등에도 관여했다. 

이후 디자이너보다 경영자로서 우수 인재를 영입하고 양성하는 데 공을 들였다. 폭스바겐그룹에서 인연을 맺은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아 유럽 디자인센터를 이끌고 있는 그레고리 기욤을 비롯해 지금은 기아를 떠나 메르세데스-벤츠의 외장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로버트 레스닉도 피터 슈라이어가 공을 들인 인물로 알려져있다.

회사 내 디자이너 입지를 강화하는 것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양산화 과정에서 경영진을 포함한 타 부서의 개입을 제한해 자율성을 높였다.

다만, 2018년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으로 임명된 이후 그의 행보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활발했던 언론 인터뷰나 주요 신차 발표회 참석 비중도 낮아졌다. 그의 자리를 대체할 디자이너들이 대거 등판하며 자연스레 물러서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포스트 슈라이어' 시대

15년간 현대차그룹에 몸 담은 피터 슈라이어는 '디자인 어드바이저'라는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았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의 디자인과 관련한 '조언자'로 남을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물론, 업계에서는 사실상의 은퇴로 보고 있다. 

그 역시 최근 인터뷰를 통해 퇴임 이후에는 산업 디자인이 아닌 순수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더욱이 그는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기도 하다.

슈라이어의 자리를 넘겨받은 인물로 유력했던 루크 동커볼케도 지금은 현대차그룹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로 한 발 물러선 상황이다. 결국, 현대차와 제네시스 디자인을 맡은 이상엽 부사장과 기아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카림 하비브 전무가 포스트 슈라이어로 유력하다.

사실 포스트 슈라이어 시대를 맞는 이들의 고민은 더욱 깊을 전망이다. 전동화 시대에 따른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목적기반 모빌리티(PBV) 등 이제 현대차그룹 사업 영역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슈라이어가 기틀을 닦은 디자인 경영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나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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