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지금, 전기차 말고 하이브리드를 사야 하는 이유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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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22 10:17
[전승용 칼럼] 지금, 전기차 말고 하이브리드를 사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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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가 좋냐? 지금 전기차를 사도 괜찮냐? BMW와 벤츠 중 뭐가 더 좋냐? 가성비 좋은 차는 뭐냐? 등 자동차 전문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자동차 구매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곤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카 쏘렌토 하이브리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카 쏘렌토 하이브리드

누구든 자동차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일단 예산과 차급, 용도를 물어봅니다. 그럼 대충 몇 개 차종으로 좁혀지는데요. 그런데 다른건 몰라도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하이브리드를 권합니다. 가솔린보다 강력하고, 디젤보다 조용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보다 저렴하고, 전기차보다 멀리 가고, 수소차보다 편리한 차. 안 살 이유가 없거든요.

요즘은 전기차가 대세라는 분도 계실 건데요.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대가 열리는게 2030년쯤이라고 했을 때, 지금 딱 이 시기부터 앞으로 2~3년.. 뭐, 길게는 5~7년 정도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를 사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타기 좋은, 가장 현실적인 차니까요. 그래서 전기차는 다음으로 한 번만 더 미루라고 이야기하죠.

실제로 하이브리드는 여러분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습니다. 당연히 전기차보다 많이 팔리고요. 작년 친환경차 판매량은 34만7738대로, 전년 대비  54.5%나 성장했는데요. 이 중 22만2869대, 즉 64.1%가 하이브리드였습니다.

하이브리드는 디젤을 거의 완벽하게 대체하면서 성장했습니다. 디젤게이트에서 촉발된 불신은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는데, 하이브리드가 딱 맞았던 것이죠. 디젤을 타는 이유가 뭐에요. 토크가 높아 초반 가속이 우수하다, 연비가 좋고 기름값이 싸서 유지비가 적게 든다 등이죠. 하지만 진동 소음이 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가 어렵다 등의 단점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이브리드가 등장해 이런 점들을 발전·보완해준 겁니다.

일단 모터가 추가되면서 디젤 뺨치는 토크가 발휘됩니다. 초반에는 전기차처럼 모터와 배터리로만 움직여 부드럽게 출발하고 강력하게 가속할 수 있죠. 덕분에 연비도 디젤보다 좋아서 전체적인 유지비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 가뜩이나 조용한 가솔린 엔진에 모터와 배터리까지 들어가니 더 조용해졌습니다. 당연히 진동도 적고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보다 구조가 간단해 차량에 별다른 문제도 안 생기고 관리도 쉽습니다. 저희 모터그래프 회사차인 1세대 니로조차 이러니 요즘 나온 하이브리드는 더 좋겠죠.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탈디젤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2015년 44.7%에 달했던 디젤차 점유율은 2021년 15.4%까지 줄었습니다. 판매량 자체가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판매되는 차량의 종류도 점점 줄었고요. 

국산차의 경우, 당장 세단 시장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디젤 세단이 아예 사라졌거든요. 2018년 현대차가 그랜저와 쏘나타, 엑센트의 디젤 모델을 단종시킨데 이어, 르노삼성도 SM3 디젤을 라인업에서 제외했습니다. 2019년에는 현대차 아반떼와 르노삼성 SM6 디젤이 없어졌고, 2020년에는 기아 K7과 스팅어, 쉐보레 말리부의 디젤 모델이 홈페이지에서 삭제됐죠. 2021년에는 제네시스 G70과 G80까지 없어지면서 국산 디젤 세단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럼 작년 주요 세단 모델 중 하이브리드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볼까요? 

쏘나타(DN8) 4만5833대 중 7436대 16.2%
K5(DL3) 5만9499대 중 1만800대 18.2%
그랜저 8만9084대 중 2만6977대 30.3%
K8 4만599대 중 1만6288대 40.1%

예상외로 쏘나타·K5보다 그랜저·K8 등 더 큰 준대형 모델에서 하이브리드 선택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현대차그룹의 1.6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 적용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의 1.6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 적용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디젤의 전유물이었던 SUV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의 강세는 이어졌습니다. 니로에 이어 투싼, 스포티지, 싼타페, 쏘렌토 등에도 효율 좋은 하이브리드가 추가돼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스포티지(NQ5) 3만2602대 중 7576대로 23.2%
투싼 4만8376대 중 1만5572대로 32.2%
쏘렌토 6만9934대 중 3만2982대로 47.2%
싼타페 4만1600대 중 9706대로 23.3%인데요.

참고로 싼타페의 경우 하이브리드를 작년 7월부터 판매했습니다. 7~12월 기준으로 따져보면 1만9977대 중 9706대로 48.6%입니다. 

세단과 마찬가지로 SUV 시장에서도 스포티지·투싼보다 쏘렌토·싼타페의 하이브리드 점유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네요. 앞서 잠깐 설명한 1.6 터보 엔진 기반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등장한 덕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없어서 그렇지 고급, 그리고 대형차일수록 하이브리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확실하게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수입차 시장에서 70%에 육박했던 디젤 점유율이 14% 수준으로 급락했다
수입차 시장에서 70%에 육박했던 디젤 점유율이 14% 수준으로 급락했다

수입차 시장는 탈디젤이 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2015년 68.8%였던 디젤 비중은 2021년 14.1%로 쪼그라들었죠. 사실상의 디젤 퇴출인 겁니다. 반면 하이브리드는 4%에서 26.6%로 크게 늘었습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뺀 순수 하이브리드 비중입니다. 

여기에는 토요타와 렉서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잠깐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거쳐 순수 전기차를 내놓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토요타와 렉서스는 지속해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앞세우며 이런 변화를 잘 이용했습니다. 

2015년 1만5781대를 판매한 토요타·렉서스는 2017년 2만4301대로 2만대 고지를 넘겼고 2018년에는 3만114대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여론으로 고생을 했지만, 2019년과 2020년에도 1만대 이상 팔린 것을 보면 수입 하이브리드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꾸준히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토요타·렉서스의 전체 실적의 98%는 하이브리드였습니다. 특히 ES는 수입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면서 렉서스를 먹여 살렸죠. 덕분에 작년 토요타·렉서스의 판매량은 1만6193대로 2015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수입 하이브리드카 중 가장 많이 팔린 렉서스 ES300h
수입 하이브리드카 중 가장 많이 팔린 렉서스 ES300h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본차 칭찬한다고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토요타·렉서스가 잘돼야 우리나라 소비자들한테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기아차에게 미국 시장이 엄청 중요한거 아시죠? 그런데 그 미국 시장은 일본차가 꽉 잡고 있단 말이에요. 특히, 작년에는 토요타가 GM을 제치고 사상 처음 미국 1위를 차지했는데요. 이렇게 1등을 하는데 하이브리드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해 하이브리드로만 80만대를 팔았다고 하니 할 말 다 한거죠. 

현대기아차는 토요타와 경쟁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해야죠. 그런데 예전 YF 쏘나타 시절의 하이브리드 기술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됩니다. 알다시피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의 원조 맛집이죠. 직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본으로 뒷바퀴를 모터로 돌리는 e-four 사륜구동 시스템, 엔진에는 CVT를, 모터에는 4단 변속기를 맞물린 10단 멀티 스테이지 변속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니까요.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인데요. 지금 없어서 난리인 1.6 터보 하이브리드 역시 미국 시장을 겨냥해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와 경쟁하기 위해 개발된게 아닐까 싶네요. 미국 시장이 아니라면 거의 반독점 상태인 한국 시장만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뭐, 확실한건 덕분에 성능과 연비에서 토요타를 많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물론 일부에서는 더 뛰어난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을 지금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누리는 거겠고요. 

렉서스 ES3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렉서스 ES3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자, 그럼 가솔린 말고, 디젤 말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말고, 전기차 말고, 수소차 말고, 하이브리드를 사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디젤차는 앞에 설명했고.. 이제 잘 나오지도 않을테니.. 

가솔린 대신 하이브리드를 사는 이유는 성능과 연비, 정숙성 때문입니다. 모터가 달려 주행 성능이 더 좋고, 배터리가 달려 연비가 더 좋습니다. 모터와 배터리가 엔진의 부담을 줄여주니 소음과 진동도 적습니다. 

가솔린보다 가격이 조금 비싼데, 유류비로 다 해결됩니다. K5를 기준으로 이야기해보죠. 하이브리드가 일반 가솔린 모델보다 3~400만원 비싼데요. 1년에 2만km를 탄다고 했을 때 가솔린은 250만원, 하이브리드는 170만원의 유류비가 듭니다(리터당 1700원 기준). 연간 80만원 저렴하니 4~5년이면 되겠네요. 여기에 개별소비세와 취득세, 통행료, 주차비 등 친환경차 혜택도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더 빨리 상쇄할 수 있습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대신 하이브리드를 사는 이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경우 모델 종류도 너무 적고, 가격이 꽤 비싼데 500만원의 보조금도 사라졌습니다. 연비도 기대했던것 만큼 좋지 않아요.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 전기모드로만 30km 정도를 달린다는 건데, 제 기능을 하려면 매번 충전해야 합니다. 충전 환경이 좋지 않은 분들에게는 참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짜로 집 근처 등 짧은 거리만 전기모드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에게는 좋겠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더 저렴한 다른 차를 사는게 낫겠죠. 

전기차 말고 하이브리드를 사야 하는 이유. 일단 저는 가격입니다. 너무 비싸요. 요즘은 저렴한 전기차가 없어요. 니로나 볼트 이런거 빼고는 탈만하다 싶으면 죄다 5~6000만원을 훌쩍 넘잖아요. 보조금을 받는다고 해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주행거리와 충전도 좀 불안하죠. 아직은 보통 400km 수준인데, 가끔 장거리를 뛸 때나 겨울철에는 주행거리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충전 인프라뿐 아니라 충전 시스템도 아직 불안정해서 가끔 충전기에 꽂아놔도 충전을 거부당하는 일도 생겨요. 전기차 구매자 10명 중 7명은 현재의 충전 인프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천지인 나라는.. 앞으로 충전기 어떻게.. 

뭐 이런 불편함을 감소하고 사려 해도 물량이 부족합니다. 사고 싶어도 못 삽니다. 현재 전기차 판매량은 대부분 보조금에 의존하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이 딱 정해져 있다 보니, 제조사에서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합니다. 아이오닉5나 EV6는 나오자마자 1년치 물량이 다 나갈 정도니, 하루만 늦게 계약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수소차는 현재 넥쏘 단 1개 차종밖에 없는데요. 보조금을 받으면 동급 가솔린 고급 트림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충전 인프라가 너무 빈약하죠. 지금처럼 전기차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수소차 인프라가 얼마나 더 빠르게 늘어날지는 의문입니다. 집 옆에 수소충전소가 있다면 모를까, 없다면 더욱 더 기다려야 합니다. 

기아 신형 니로가 국내 SUV 중 최고 연비인 20.8km/L를 기록했다
기아 신형 니로가 국내 SUV 중 최고 연비인 20.8km/L를 기록했다

하이브리드의 가장 큰 장점은 작은 모터와 배터리를 이용해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하이브리드용 배터리는 약 1.5kWh급으로 70~80, 또는 100kWh급 전기차와 비교하면 정말 작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연비 향상 효과도 크고, 고장날 염려도 적고, 폐배터리 등 환경 문제 때문에 골치 썩을 일도 적습니다. 

친환경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죠. 토요타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3대를 운행하면 전기차 1대와 동일한 수준의 탄소저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당장 모든 차를 전기차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늘어나는게 탄소저감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10년 전쯤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이어주는 중간 역할로 대세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4~5년 전에는 전기차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고, 그 이후에는 수소차가 전기차와 공생하며 점유율을 늘려나갈 것이라 예상했고요. 

그런데 내연기관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전기차 점유율도 생각보다 빠르게 늘어나지 않고 있고요. 제조업의 체질 개선, 충전 등 사회적 인프라, 소비자 인식 등.. 새로운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이브리드가 내연기관의 생명력을 연장해주면서 전기차 시대를 더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이브리드가 지금 당장 소비자에게 가장 쓸모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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