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고급 자동차 브랜드, 좀 더 정확하게는 신생 럭셔리 브랜드에겐 쉽게 않은, 자리잡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대신 이곳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유럽에 현대자동차가 만든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고 현대차 내부에서도 긴 호흡으로 승부를 펼칠 그런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해 판매량을 보니 제네시스의 유럽 도전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예상보다 더 많은 노력과 투자,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그리고 제네시스 도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같이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망한 판매량

제네시스는 현재 유럽에서 G80과 GV80, 그리고 G70과 GV70 등, 4개 모델을 판매 중입니다. G70에는 왜건인 G70 슈팅브레이크가 포함돼 있고, 비공식적으로 G90도 판매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이 밝힌 제네시스 브랜드의 지난해 유럽 판매량은 총 552대였습니다. 이는 69개 브랜드 중 56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롤스로이스(613대)와 캐딜락(513대)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모델별 판매량은 어땠을까요?

G80 : 106대 (카테고리 내 18개 모델 중 16위)
GV80 : 165대 (카테고리 내 44개 모델 중 39위)
G70 : 96대 (카테고리 내 29개 모델 중 27위)
GV70 : 143대 (카테고리 내 43개 모델 중 42위)
G90 : 19대 (카테고리 내 14개 모델 중 13위)

공식 판매 모델이 아닌 G90을 제외한 4개 모델 모두 동급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는 모습입니다. 다만 여기서 참고해야 할 것은 제네시스는 유럽에 5월 론칭을 했고, 판매는 하반기부터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G80과 GV80이 2월부터 판매량 통계에 잡혔지만 6월 이후 본격 홍보가 이뤄졌으며, G70과 GV70은 7월부터 통계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G70 슈팅브레이크는 더 시장 진출이 늦었죠.

하지만 이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화려하게 유럽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것치고는 판매량 결과가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유럽에서 이런 수준에 계속 머물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단 GV70의 경우 인기 있는 SUV 세그먼트에서 더 판매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고 G70 슈팅브레이크 또한 왜건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에게 긍정적 어필이 될 만합니다.

#브랜드 알리기가 우선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 알리기입니다. 유럽에 진출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현대차와 기아임에도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유럽인들이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도 이런 정도인데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제네시스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400여 개의 이르는 다양한 양산 모델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무릎을 탁 칠 만한 기발한 전략이 있는 게 아니라면 브랜드 인지도는 시간과 투자되는 비용에 비례해 올라가기 때문에 결국 단기간에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길게 봐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전략인 것입니다. 또한 브랜드를 알리는 과정에서 자기 색깔, 제네시스만의 철학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 시장의 경우 브랜드를 따지거나 의존하는 경향이 유럽보다 덜하죠.

반대로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유럽이지만 적어도 고급 브랜드에서만큼은 브랜드 가치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담지 못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디자인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좋다고 해도 선택받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브랜드를 알리고 특별한 존재감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특별한 노력이 따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유럽의 뜨거운 전기차 현상은 훨씬 제네시스의 유럽 안착을 빠르게 도울 수 있습니다. 답을 전기차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기차를 제네시스 간판으로 빨리 내세워야

팬데믹이다 반도체 칩의 부족이다 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기차만큼은 유럽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성장 중입니다. 그런 유럽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두 회사에서 내놓은 전기차들이 브랜드 판매량을 견인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관심과 인기를 받고 있는데 수십 년 노력했던 이전의 그 노력에 비하면 정말 짧은 기간에 얻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네시스도 바로 이런 전기차 흐름에 빠르게 올라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전기 SUV GV60 사전 주문을 받고 있으며, 곧 배터리가 달린 전기 G80도 유럽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우선 이 두 모델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SUV 인기 등을 고려하면 GV60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가 제네시스의 유럽 시장 안착에 결정적 요소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만약 제네시스의 전기차까지 인기를 끈다면 현대차 그룹 전체 사업이 유럽에서 이전에 누리지 못한 성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네시스가 기존의 내연기관 모델에 힘을 주기보다는 전기차 라인업을 빠르게 늘리고 이를 통해 유럽에서 새로운 고급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다는 전략을 세우는 게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앞서 보여드린 것처럼 제네시스 유럽 첫해 판매량은 민망한 수준입니다. 내수 시장인 한국은 물론 북미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판매량을 보이는 제네시스이지만 유럽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 기존의 내연기관 모델로 승부를 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다릅니다. 서로서로가 개척지에서 말을 타고 누가 깃발을 먼저 꼽느냐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제네시스 전략이 어때야 하는지, 답은 분명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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