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BMW iX xDrive 50 "현존하는 최고의 럭셔리 전기 SUV"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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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0 09:18
[시승기] BMW iX xDrive 50 "현존하는 최고의 럭셔리 전기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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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BMW는 i3와 i8을 공개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미래 전동화 자동차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섰던 탓일까. 당시 소비자들은 주행거리가 짧아 '레인지 익스텐더'를 달아야 했던 i3, 태생부터 플러그인하이브리드였던 i8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아쉬움은 BMW가 조만간 새로운 순수전기차를 내놓을 것이란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기대와 달리 BMW는 꽤 오랫동안 침묵했고, i3가 나온 후 무려 8년이 지나고 나서야 iX를 출시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BMW가 주춤하는 동안 경쟁자들은 다양한 신상 전기차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점했다. 가장 먼저 출발했지만,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해 다른 브랜드에 뒤처져 버린 상황이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만 했는지, 과연 기다린 보람이 있는지.. BMW가 '기술적 플래그십'이라고 자랑하는 iX를 직접 만났다. 

시승차는 iX xDrive 50 모델이다. 최신 BMW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인 거대한 콧구멍과 얇게 디자인된 헤드램프가 대조되며 날카로우면서 낯선 인상을 준다.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커다란 수직형 키드니 그릴은 여전히 호불호가 가린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넓적한 판 안에 카메라나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센서를 모두 숨겨놨다. 겨울철 눈이 센서를 가리지 않도록 열선까지 내장하는 등 꼼꼼한 설계도 인상적이다. 

앞쪽 BMW 엠블럼을 누르면 뜬금없게도 워셔액 주입구가 나온다. 워셔액 주입구를 이렇게 따로 빼놓은 이유는 일반인들이 쉽게 보닛을 열 필요가 없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보닛을 열기 위해서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는 고리를 모두 잡아당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최근 메르세데스-벤츠도 일반적으로 보닛을 열 수 없게 설계하며 워셔액 주입구를 운전석 쪽 펜더에 빼 두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공간이나 디자인의 손해가 없는 BMW의 방식이 더 우수해 보인다.

테일램프는 헤드램프보다도 훨씬 얇게 디자인됐다. 밤에 어두운 곳에서 바라본다면 마치 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언맨의 날카로운 눈매 같기도 하다. 좁은 상단부와 풍만한 하단부의 조합으로 차가 더욱 넓어 보이면서 시각적 안정감이 생긴다.

강렬한 앞·뒤와 비교하면 측면 디자인은 다소 무난해 보인다. 차체 하부를 유광 검정으로 처리해 날씬해 보이도록 설계했고, BMW 특유의 호프마이스터 킨크도 유지됐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일자로 연결한 선 위에는 도어 손잡이가 있다. 독특하게도 매립형이다. 요즘 유행하는 플러시 타입의 손잡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편리하고 보기에도 좋은 편이다.

깔끔한 손잡이에 프레임리스 윈도우까지 더해져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옆면에는 고급스러운 무광 금색 포인트를 줬다. 이 색은 창문 하단부터 사이드미러, 도어 손잡이를 비롯해 실내 곳곳에도 활용됐다.

곧이어 실내에 오르기 위해 차 문을 열었다. 그간 시승차를 탈 때마다 대부분 센터 디스플레이나 계기판이 먼저 보이는데, iX는 도어 안쪽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시트 조작 버튼과 메모리 시트 버튼, 심지어 센터 콘솔의 전원 버튼이나 기어 셀렉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컨트롤러, 볼륨 조절 다이얼까지 유리로 만들어졌다. 이 유리는 마치 보석처럼 세공되어있어 이리저리 빛을 반사해 더욱 화려하다.

화려한 크리스털 장식에 비해 실내 인테리어는 의외로 단조롭다. BMW는 이를 두고 '샤이 테크'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여러 기능이 평상시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필요시 작동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는 센터 콘솔의 각종 조작 버튼이다. 미디어, 내비게이션 버튼은 물론 드라이브 모드 버튼, 차체 높낮이 조절 버튼 등은 나무 장식에 숨겨져 있고, 누르면 햅틱 피드백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문제는 각 버튼이 과하게 부끄럼을 탄다는 점이다. 밝은 나무 위에 흰색으로 인쇄되어 햇빛이 비치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내를 한참 둘러본 뒤에야 전면 디스플레이에 눈길이 간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4.9인치 컨트롤 디스플레이가 요즘 대세에 맞게 한 판으로 이어져 있고, 운전자 쪽을 향해 살짝 휘어있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다. 디스플레이는 대시보드와 연결점을 최소화해 마치 떠 있듯 배치됐다. 

전면에는 디스플레이와 비상등, 앞·뒷유리 성에 제거 버튼, 그리고 BMW가 처음 시도하는 육각형 스티어링 휠을 제외한다면 정말 아무 버튼도 없다. 단순하고 깔끔해 보기에는 좋지만, 기능적으로는 조금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작동 시 차간 거리 조절을 비롯해 회생제동 단계 설정과 시트 허리 받침 등 자주 쓰는 기능을 모두 센터 디스플레이에 들어가 조작해야 한다. 이용 방법도 직관적이지도 않아 거쳐야 하는 단계도 많고, 해당 하위 메뉴를 찾기도 쉽지 않다.  

편안한 시트는 만족스럽다. 올리브잎 추출물로 가공된 친환경 천연가죽이 적용되어 부드럽고 푹신하다. 특히, 1열은 헤드레스트가 고정되어 있음에도 다양한 시트 포지션에 어울려 불편하지 않다. 기술적 플래그십답게 소프트 도어 클로징 같은 고급 사양도 적용됐다.

가볍게 문을 닫고 서늘한 촉감의 크리스털 전원 버튼을 누르니 웅장한 웰컴 사운드가 반긴다. 전기차답게 웰컴 사운드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크리스털 기어 노브를 아래로 당기면 차는 움직일 준비를 마친다. 가속 페달을 살짝 밟자 차량이 차분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덩치와 육중한 무게에도 의외로 날렵하다. 전기차 특유의 경쾌한 가속력과 잔진동을 잘 걸러주는 에어서스펜션 덕분에 전반적인 주행감은 부드러운 편이다. 

복잡한 시내에 나가니 후륜 조향 기능이 제 몫을 한다. 전장이 4.9미터에 달하는 듬직한 SUV이지만, 유턴 시에도 사뿐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어 노브를 한 번 더 당겨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한 B 모드로 설정하니 막히는 도심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밟는 수고도 없다.

편안함도 잠시, 고속도로에 올라 차량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봤다. iX는 곧바로 한 마리의 야수로 돌변한다. 조금 전까지 사뿐하던 차가 맞나 싶은 정도로 거칠게 지면을 박차고 나가고, 온몸은 시트를 짓누른다. 여기에 작곡가 한스 짐머의 손길이 담긴 가상 사운드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귓가를 간질인다.

그제야 사무실 책상에 던져뒀던 보도자료에 적혀있던 숫자가 떠오른다. 2개의 전기 모터가 최고출력 523마력, 최대토크 78kg·m의 엄청난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2.5톤의 육중한 몸을 밀어내는데 걸리는 시간도 4.6초면 충분하다. 

주행 모드는 퍼스널, 이피션트, 스포츠 등 세 가지가 마련됐다. 기세를 몰아 스포츠 모드를 체결하자 의자 양옆 허리 받침이 조여지고 한스 짐머의 가상 사운드 볼륨도 한층 커지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아쉬운 점은 주행 모드에 따른 주행 성능 차이가 기대했던 것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소리가 커지고 가속 페달이 예민해졌지만, 서스펜션의 감쇠력이나 스티어링 휠 무게 등의 느낌은 이전과 비슷했다. 고성능 모델인 만큼 스포츠 모드에서는 조금 더 과격하게 움직여도 좋을 것 같다. 

두툼한 1·2열 창문 두께 덕분인지 이중 접합 유리가 아님에도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은 절제됐다. 정숙한 실내에 30개의 스피커로 이뤄진 바워스 앤 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시스템이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특히 서라운드 모드가 인상적이다. 타 차량에서는 인위적인 공간감이 싫어 사용하지 않았던 기능인데, 자연스럽게 입체 음향을 들려준다.

실 주행거리는 제원표에 쓰인 숫자를 훌쩍 뛰어넘는다. 시승차를 처음 받았을 때 배터리가 100%인데도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가능거리가 380km에 불과했다. 게다가 에어컨을 켜니 360km로 떨어진다. 환경부 인증 거리(447km)보다 20%나 낮은 수치였다.

아마 앞 시승자가 시승차를 거칠게 몰아서 주행가능거리는 낮게 표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법규를 지키며 일반적인 수준으로 달렸더니 계기판에 적힌 숫자가 꾸준히 올라간다. 약 200km를 달려 배터리 잔량이 60%대까지 떨어졌는데 아직도 350km를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된다. 이 차의 표시 연비는 3.6km/kWh인데, 시승하는 동안 이보다 30%가량 높은 4.6km/kWh의 평균 연비가 나왔다. 

iX에는 무려 111.5kWh나 되는 거대한 배터리가 깔려있다. 현재 판매되는 양산 승용차 중 가장 큰 배터리 용량으로, 메르세데스-벤츠 EQS(약 107.8kWh)나 테슬라 모델S(약 100kWh)보다도 더 크다. 

충전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다. 배터리가 절반가량 남은 상태에서 환경부 급속충전기를 사용해보니 30분 만에 90%까지 충전된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주행가능거리를 확인해보니 500km가 넘어 있었다.

여러모로 만족스럽지만, 그만큼 비싼 가격은 부담이다. iX xDrive 50 모델의 판매가격은 1억4630만원이다. 전기차 보조금은 꿈도 꾸지 못하고, X5 플러그인하이브리드보다도 3000만원 가까이 비싸다. 이렇게 보니 한 단계 아래인 xDrive 40 모델의 1억2260만원이라는 가격이 가성비로 보일 정도다.

BMW는 2023년까지 순수전기차 13종 출시를 예고하고, 향후 전체 판매의 50%를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전동화 모델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완전 전동화를 자신하는 여타 브랜드와 비교하면 다소 공손한(?) 목표가 의아했지만, iX를 만나보고 나니 괜한 엄살로 보인다. 이런 엄살에서 BMW가 엔진과 모터 모두를 놓치기 싫어하는 욕심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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