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1800억짜리 비밀 경매? 벤츠 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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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16 09:18
[이완 칼럼] 1800억짜리 비밀 경매? 벤츠 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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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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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독일에서 무척이나 낯선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그곳에 빛나는 별처럼 자리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10여 명이 모여 그들만의 경매를 진행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에 전시 중인 300 SL 쿠페(은색)와 붉은색 로드스터, 그리고 울렌하우트(우측) 쿠페 / 사진=이완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에 전시 중인 300 SL 쿠페(은색)와 붉은색 로드스터, 그리고 울렌하우트(우측) 쿠페 / 사진=이완

이 소식을 전한 곳은 클래식 자동차 보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미국의 해거티(Hagerty)였는데요. 개인 전용기를 타고 온 사람을 포함해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 참가 자격은 재력뿐 아니라 경매에 올라올 자동차를 어떻게 관리할지, 그 계획까지 마련해야 했다는 것이 해거티 측의 주장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비밀 경매에서 낙찰된 자동차와 가격이었습니다. 독일 시사지 포커스와 그 외의 매체 등에 따르면 낙찰 가격은 미화 1억4200만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8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형태의 자동차 거래 중 가장 액수가 큰 거래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해거티 측은 낙찰자의 신분을 알고 있지만 밝히지 않고 있다고 포커스가 밝혔는데요. 메르세데스 측도 이 은밀한 경매 실체에 대한 어떤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자동차를 손에 넣기 위해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을 찾은 걸까요? 그 자동차는 바로 메르세데스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입니다.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 / 사진=메르세데스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 / 사진=메르세데스

울렌하우트 쿠페는 1955년에 개발이 완료돼 1956년 경주대회에 출전을 준비했던 경주용 자동차였습니다. 하지만 1955년 르망 24 내구레이스에서 메르세데스팀은 역사상 최악의 자동차 경주 대회 사고(84명 사망)를 내며 모든 레이싱 대회에서 물러나며 울렌하우트 쿠페의 데뷔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 차는 단 2대만 만들어졌는데, 현재 한 대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한 대는 가끔 세계적 행사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955년 밀레 밀리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300 SLR 레이싱 모델. 이 차의 쿠페형이 울렌하우트 쿠페다 / 사진=메르세데스
1955년 밀레 밀리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300 SLR 레이싱 모델. 이 차의 쿠페형이 울렌하우트 쿠페다 / 사진=메르세데스

울렌하우트 쿠페는 이 차를 책임지고 개발한 엔지니어이자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루돌프 울렌하우트(Rudolf Uhlenhaut)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8기통 엔진이 들어간 경량 스포츠카(SLR은 초경량 스포츠카를 뜻하는 독일어 Super Leicht Rennsport에서 나온 것)는 최고 시속 290km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공도를 달릴 수 있던 자동차 중 당시 가장 빠른 자동차였죠.

울렌하우트 쿠페 초기 / 사진=Rob Oo from NL
울렌하우트 쿠페 초기 / 사진=Rob Oo from NL

루돌프 울렌하우트는 스키 등 역동적인 스포츠를 즐기던 엔지니어였습니다. 또한 다임러-벤츠가 그의 첫 직장이었으며 그곳에서 40년을 일했던 영원한 삼각별의 사나이이기도 했습니다. 히틀러 시대 독일 경주용 자동차들이 '은빛 화살'이라는 별칭으로 세계를 제패하던 때부터 일한 그는 2차 대전 이후 조심스럽게 경주 대회에 참가를 결정한 메르세데스의 레이싱 자동차 개발을 담당하게 됩니다.

한창 테스트 중이던 울렌하우트 쿠페에 앉아 있는 루돌프 울렌하우트와 그의 아들 사진(1955년 당시) / 사진=메르세데스
한창 테스트 중이던 울렌하우트 쿠페에 앉아 있는 루돌프 울렌하우트와 그의 아들 사진(1955년 당시) / 사진=메르세데스

그는 300이라는 세단에 들어간 엔진을 이용해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어 대히트를 하게 되죠. 그 경주용 모델을 판매할 목적으로 만든 게 바로 '걸윙' 도어로 유명한 메르세데스 300 SL이었습니다. 디자이너 프리드리히 가이거의 최고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루돌프 울렌하우트는 이 300 SL을 경주에 맞는 레이싱카로 개조했고 이를 테스트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울렌하우트 쿠페였습니다.

하지만 이 비운의 자동차 운명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루돌프 울렌하우트는 자신이 개발한 스포츠카를 회사 내에서 타고 다니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루돌프 울렌하우트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당시 메르세데스팀의 신인 레이서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뉘르부르크링에서 SLR 프로토타입을 타보고 만족스러워하지 않자 양복을 입은 채 자신이 직접 운전해 후안 마누엘 판지오보다 3초나 빠르게 랩타임을 끊습니다.

또 울렌하우트는 이 괴물같은 쿠페를 타고 슈투트가르트와 뮌헨까지 약 220km 거리를 1시간 만에 주파했는데, 지금 기준에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웬만한 레이서보다 더 운전을 잘 했던 그였지만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다고 전해지는데요. 생일에도 자동차 개발을 위해 일에 빠졌을 정도로 차 만들기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1969년 자신의 생일에 일하는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울렌하우트 / 사진=메르세데스
1969년 자신의 생일에 일하는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울렌하우트 / 사진=메르세데스

이런 울렌하우트의 이름을 딴 단 두 대밖에 없는 쿠페를 과연 메르세데스가 은밀한 경매에 붙였을지, 그에 대해 독일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서는 갑론을박 의견들이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거티의 구체적 증언(?)을 보면 충분히 경매가 있었을 거란 추측을 하게 되는데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전경 / 사진=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전경 / 사진=메르세데스

하지만 당대의 명차, 귀한 브랜드의 유산을 이런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팔아버리는 건 왠지 메르세데스답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헤리티지를 소중하게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말이죠. 참고로 이전까지 공개된 최고가 자동차 경매는 페라리 250 GTO로 약 750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그 두 배를 넘는 울렌하우트 쿠페 경매, 정말이라면 클래식카 시장을 뒤흔들 만한 충격적인 거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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