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굿바이 V12!" BMW M760Li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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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07 16:32
[시승기] "굿바이 V12!" BMW M760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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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BMW 차세대 7시리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격적인 디자인부터 브랜드가 자랑하는 최신 기술까지,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의 등장은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점점 강화되는 환경규제, 새로운 전기차의 등장, V8 엔진의 성능 향상, V12 모델의 판매 저하 등의 이유로 12기통 파워트레인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갔다. 7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신형 7시리즈에는 분명 '760i' 모델이 존재하지만, 60 라인업의 상징과도 같은 'V12 엔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즉, 지금의 M760Li는 BMW가 만드는 마지막 12기통 모델이라는 뜻이다.

정년 퇴임을 앞둔 BMW의 기함 6세대 7시리즈,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최상위 모델 'M760 Li x드라이브'를 만났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V12의 마지막 향연은 왠지 모르게 슬프게만 들려왔다.

BMW는 1987년부터 7시리즈에 V12 엔진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는 크기가 작은 5.0리터 크기였다. 주요 부분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 실린더 뱅크마다 별도 연료 분사, 점화, 배기가스 정화 시스템 등을 적용했다. 최고출력은 295마력으로 당시로서는 꽤나 강력하고 여유로운 수준이었다.

오늘날 V12 엔진은 그 크기가 무려 6.6리터에 달한다. M760Li의 M 퍼포먼스 트윈파워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609마력, 최대토크 81.6kgf·m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숫자만으로 압도하는 플래그십의 자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3.8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제한되지만, 언제든 그 이상의 속도로 달릴 만큼 힘은 넘친다.

일상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영락 없는 플래그십 세단이다. '그르렁'거리는 엔진음만이 고요한 실내를 가볍게 울릴 뿐이다. 자극적이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훌륭한 방음 덕에 주변 소음들은 고요 속에 묻힌다. 중저속 구간에서는 609마력이란 수치를 상상할 수 없다.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비로소 M 퍼포먼스 파워가 살아난다. '밟는대로 나간다'란 말 그대로다. 길이 5.2m, 무게 2.3톤이 넘는 커다란 리무진이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우리가 아는 여느 슈퍼카 브랜드의 V12과는 결이 다르다. 날카로운 고음보다는, 중저음 V8 사운드의 상위 호환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오리지널 M이 선사하는 '날 것'의 맛은 아니지만,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날카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스포츠 모드를 체결하면 비로소 M 퍼포먼스의 진가가 드러난다. 스티어링 휠은 한층 무거워지고 서스펜션은 더욱 단단해지며, 가변배기 플랩이 활짝 열려 보다 걸걸한 배기음을 들려준다. 이같은 감성적 변화와 함께 후륜조향 기능인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기능까지 더해진다. 경쾌한 가속과 민첩한 코너링 실력이 더해져 마치 두 체급은 작은 스포츠세단을 타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강력한 엔진과 합을 이루는 ZF 8단 자동변속기는 듀얼클러치(DCT)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민하게 작동한다. 부지런히 기어 단수를 쌓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한순간에 서너단씩 낮추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왜 DCT가 아닐까?"란 의문을 말끔히 없애준다.

뒷좌석에 오르면 BMW가 왜 'M7'을 만들지 않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서스펜션 세팅은 차량 성격을 생각하면 꽤 부드럽다. 적당한 단단함에 고급진 승차감이다. 방지턱을 물침대로 바꾸는 마법을 선사하는 에어 서스펜션은 언제나 환영이다. M760Li는 엄연히 플래그십 세단임을 잊지 않았다.

뒷좌석 공간은 광활하다. 프리미엄 메리노 가죽과 하이그로시, 메탈 등 다양한 소재로 공간의 품격을 높였다. 조수석을 접어 발을 쭉 펴고 앉아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조작은 탈착 가능한 태블릿으로 이뤄진다.

이처럼 럭셔리한 플래그십 세단에 적당한 퍼포먼스를 섞기 위해서는 M 퍼포먼스가 충분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오리지널 M 엔지니어링이 더해진다면 자칫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12개의 실린더와 커다란 덩치는 연비에 좋지 않다. 609마력 심장은 고급휘발유를 거침없이 마신다. 퇴근 시간대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통과한 후 확인한 평균 연비는 리터당 4.4km였다(공인 복합연비 리터당 6.4km/L). 고속도로 정속 주행에서도 순간연비는 한 자릿수대다. 연료 게이지가 닳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부드러울 때는 한 없이 부드러운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달리고 싶을 때는 슈퍼카 못지 않은 파워를 자랑하며 달려나간다. '운전의 맛'을 중요시 여기는 소비자들에게 고배기량 퍼포먼스 세단은 단비 같은 존재다.

V12 심장은 전동화 시대를 맞아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다. 어쩌면 머지않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 M760Li는 '마지막 V12' 심장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세대 교체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BMW M760Li x드라이브 가격은 2억334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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