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반칙 같은 차'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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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05 15:59
[시승기] '반칙 같은 차'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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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통 엔진과 전기모터, 두개의 심장을 얹었다. 포르쉐 라인업에서도 가장 강력한 출력을 내뿜는다. 파격적인 성능만큼이나 이름도 긴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포르쉐의 페이스리프트에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처음부터 충분히 완성된 모델을 내놨다는 자신감일까. 부분변경을 거쳤음에도 전반적인 디자인은 기존과 다를 바 없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살펴보니 가운데가 잘려있던 후미등이 한줄로 매끈하게 이어진 것을 겨우 발견했다. 오너만 알아볼 수 있을법한 사소한 차이지만, 신차임을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인테리어 역시 비슷하다. 수평형 디자인은 여전히 차분한 느낌을 선사하고, 스티어링 휠은 최신 디자인을 반영해 한층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 닿는 거의 모든 곳에는 고급 가죽과 알칸타라가 아낌없이 사용됐다.

운전석 왼편 시동은 포르쉐의 오랜 전통이다. 우렁찬 엔진소리를 기대하며 레버를 돌렸는데 경쾌한 전자음만 울렸다. 초강력 터보 S 모델이지만, 하이브리드인 만큼 전기모터 작동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듯하다.

배터리는 완충 상태였다. 용량은 17.9kWh로, 1회 충전 시 34km 정도 달릴 수 있다. 시승차를 수령한 서울 삼성동에서 성산동 사무실까지는 약 25km. 파나메라의 전기 주행 성능을 경험해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잠들어있는 엔진을 그대로 둔 채, E-파워 모드를 체결하고 오직 전기로만 달려보기로 했다. 

순수 전기모드의 성능은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40.8kgf·m다. 숫자만 보면 다소 빈약할 것 같은데, 2.4톤이 넘는 거구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도로 흐름을 따르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가끔 고속 구간을 만나 속도를 높였는데, 출력이 부족하고 판단되면 엔진이 저절로 개입하며 자연스럽게 주행을 이어갔다.

전기로만 달리니 정말 조용했다. 일반적인 파나메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고요함이다. 그래도 전기모터의 작동음이 독특했는데, 마치 엔진처럼 변속기에 맞춰 높낮이에 변화를 준다. 속도를 낮추면 단수에 맞는 다운시프팅 사운드까지 구현했다. 

승차감은 기대 이상이다. 에어 서스펜션이 도로 위 충격을 꿀떡꿀떡 삼켜버린다. 거친 노면을 잘 깔린 아스팔트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조용한 실내와 예술적인 승차감, 이 정도면 비즈니스 세단으로도 손색없겠다.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과 통풍시트를 가동했음에도 남은 주행거리는 비교적 정직하게 줄어들었다. 전기모드에서의 주행가능 거리는 인증받은 숫자(34km)를 훌쩍 넘어섰다. 약 25km를 달렸는데도 아직 30km 이상 더 달릴 수 있다고 나왔다. 

내친김에 배터리를 바닥내보기로 하고 자유로로 향했다. 파나메라는 단 한번도 엔진을 깨우지 않은 채 자유로를 유유자적 달렸다. 출발 후 65km쯤 달렸을 때 드디어 '전기주행불가' 메시지가 표시됐다. 배터리가 방전되니 자동으로 하이브리드 모드로 넘어가며 V8 엔진을 깨운다.

4.0리터 V8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571마력, 최대토크 78.6kgf·m를 발휘한다. 숫자만 보면 극도로 사악한 연비가 예상되지만, 포르쉐는 늘 그렇듯 우리에게 반전을 보여준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엔진이 주로 작동하지만, 부하가 적거나 타력주행 상황에서는 과감히 꺼준다. 연료 소모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회생 제동을 이용해 열심히 배터리를 충전한다. 충전되는 양도 생각보다 많아,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금세 채워져 있다. 

덕분에 시내와 고속도로를 적절히 달리는 구간에서 리터당 평균 11km 수준의 연비가 나왔다. 2.4톤이 넘는 8기통 대형세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봉인을 해제할 시간이다. 스티어링 휠에 위치한 다이얼을 돌려 스포츠 모드에 돌입했다. 엔진이 상시 가동하고, 전기모터는 이를 보조하는 사이드킥 역할을 한다. 가변배기 플랩이 열리며 우렁찬 배기음이 운전자를 흥분시킨다.

기다렸던 '터보 S'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감동적인 주행 능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안정감'이다. 고속 영역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중하게 나아간다. 분명 엄청나게 빠른데, 속도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고급 세단의 안정적인 승차감을 초고속 영역에서 누릴 수 있다. 사륜구동 시스템과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까지 더해져 그 어떤 노면도 꽉 움켜쥔다.

연속되는 코너에서도 신들린듯 움직인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과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PSM), 트랙션 매니지먼트(PTM), 토크 백터링(PTV) 등 외우기도 어려운 포르쉐의 기술들이 알게 모르게 운전자를 열심히 보조한다.

스포츠플러스 모드에서는 런치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다. 571마력 V8 엔진에 136마력 전기모터가 더해져 총 출력 700마력의 강력한 힘으로 박차고 나간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2초. 거대한 차체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전기 모터가 개입하는 순간은 더 황홀하다. 엔진회전수를 무시하듯 비정상적으로 속도를 높여나간다. 마치 레이싱 게임에서 부스터 치트키를 쓴 느낌이다. 역시 포르쉐다. 터보 S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연비보다는 퍼포먼스 향상에 중점을 둔 것이 확실하다.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를 시승하는 동안 '반칙 같은 차'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완성도가 정말 높다. 군더더기 없는 실내외 디자인부터 비즈니스 세단을 능가하는 안락한 승차감, 두말하면 입 아픈 달리기 실력, 여기에 높은 연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췄다. 

물론, 가격도 반칙(?)이다. 시작 가격은 3억490만원, 시승차는 몇가지 옵션이 추가돼 3억1700만원이다. 이 가격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건 당연한걸까? 괜한 고민과 함께 약간의 자괴감이 드는 인상적인 시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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