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능한 정부, 뒤통수가 얼얼한 현대차그룹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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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17 07:58
[기자수첩] 무능한 정부, 뒤통수가 얼얼한 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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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관련해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 전기차가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동안 별다른 조처 없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가 잇따른 호평을 끌어내며 순항 중이었던 현대차그룹에게 치명적인 타격이다. 

IRA가 시행되기 까지 일련의 과정만 봐도 뒤통수가 얼얼할 듯하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만나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등 무려 13조원대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GM, 스텔란티스, 혼다 등과 미국에 합작 생산 시설을 짓기로 했다. 선의와 상생을 기대하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했지만, 돌아온 것은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뿐이었다. 

사실, IRA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인 법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했고,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당장 미국 자동차 협회는 우려를 나타내며 정치인을 설득하고 있으며, 현대차 미국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 정치인과 공화당은 법안 무효화를 시도하고 있다. IRA로 이득을 볼 것이라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도 배터리와 반도체 물량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 사이에서도 '자승자박'이라며, 득보다 실이 많은 졸속 법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쨌든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IRA가 바뀌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무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경제안보 동맹으로 확장됐다"고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자평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정치권이 잇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 하나 나오는것도 없다. 정부의 고위급 실무진들이나 국회의원들이 잇따라 미국 정부 문턱을 드나들어도 가지고 온 결론은 "미국 측이 우리 대표단의 의견을 경청했다" 정도다. 돌아오는 답변이라고 해 봐야 "한국의 분노를 잘 알고 있다" 같은 빈 말 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내 일자리와 천문학적인 투자를 얻어낸'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의 선거만 지원해준 꼴이다. 아쉬운 일이다. IRA를 막을 방법은 없었겠지만, 우리나라의 손해를 최소화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 7월 '미국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업체는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반도체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탈 중국을 요구받는다는 큰 맥락에서는 같은 내용이다.

국가 기간산업에 피해가 우려되는 법이 제정됐다면, 추가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반도체법 이후 불과 한달 뒤 의회에 상정된 IRA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부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방관했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미국에 파견된 우리 공무원들이 해당 사안을 본국에 보고 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보고를 받았더라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지난 8월4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홀대할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IRA가 의회에 상정되기 불과 3일 전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를 이유로 '미국 의전서열 3위'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후의 정부 대응도 답답했다. IRA가 통과되자마자 산업계와 언론은 큰 우려를 표명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공식 발표는 3일이나 지난 8월10일이었다. 업계와 긴급 간담회를 가진 것도 4일만인 8월 11일이다. 언론이 정부의 늦장 대응을 지적하자 "대응이 늦었던건 아니다"라며 안일한 해명만 늘어놨을 뿐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무능은 더욱 도드라진다. 일본은 일찌감치 IRA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손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자신들이 반대했던 '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전기차에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조항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토요타 및 혼다와 함께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과 배터리 합작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추가 투자 계획까지 내놓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번 IRA로 인해 우리 정부의 무능이 크게 부각됐지만, 단순히 해외 시장 경쟁력만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국내에서 집행되고 있는 친환경차 관련 정책들도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전기차 충전요금 5년 동결' 계획은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파기됐다. 충전요금 할인 혜택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인상폭(12%)은 할인율보다 높다. 

수소차 보급 역시 내년 예산 규모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3600억원 가량 깎여나가며 보급 목표도 1만대 줄였다. 앞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수소 산업을 국가적인 초격차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뒤에서는 예산을 묶어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차 산업 전반에 대해 비전도, 철학도 없는 정부의 행보는 유감이다. 당장 자동차 업계가 찬바람을 맞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나갈지에 대한 계획도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요란한 계획들과도 극명히 대조된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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