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N,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기자수첩]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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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10 09:15
현대 N,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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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지난해 말부터 우리나라를 강타한 유행어다. 한 e스포츠 경기에서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한 선수의 소감 중에 나온 말이다. 코로나19와 전쟁 여파로 힘들었던 한해를 마무리하는 분위기에 리오넬 메시의 월드컵 우승 등 일련의 사건이 겹치며 하나의 밈으로 자리잡았다.

자동차 전문 기자로서 '중꺾마'를 보니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이 떠올랐다. 매년 아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도전을 통해 '숫자를 넘어선 가치'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마음이 꺾여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모두에게 인정받을 결과에 닿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 벨로스터 N 컵
현대 벨로스터 N 컵

​N은 2015년 현대차가 발표한 고성능 브랜드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모터스포츠에 참가해 쌓은 기술력을 양산차에 접목한 것으로, 국내에는 2018년 벨로스터 N을 시작으로 아반떼 N과 코나 N을 잇따라 선보였다.

현대차는 N 브랜드 알리기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고성능 모델에 맞게 다양한 외장 파츠와 성능 패키지를 제공해 소비자 취향을 저격했으며, 국내에선 보기 드문 N 트랙데이·N컵 페스티벌 등 마니아를 위한 이벤트도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또, 운전 체험 복합시설인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의 시승 프로그램에 N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구독서비스인 현대셀렉션을 통해 다양한 N 모델을 선택지로 제공했다. 

그러나 실적은 따라주지 않았다. 작년 아반떼 N의 판매량은 2977대로, 아반떼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코나 N도 268대에 그쳤다. 현대차가 국내에서 연간 70만대가량 팔아치우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성적표다. 게다가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벨로스터 N은 2018년 1156대를 시작으로 2019년 1005대, 2020년 1388대, 2021년 510대, 2022년 99대 등 저조한 실적 끝에 단종됐다. 

전기차 전환의 시대에 '신생 고성능 브랜드'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동차 역사가 짧고, 별다른 자동차 문화가 없고, 모터스포츠가 외면당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대차는 언제쯤 고성능 모델을 만드냐, 나오기만 하면 산다'며 목소리 높였던 자동차 마니아들도 조용하다. 둘 중 하나다. 큰 목소리와 달리 구매하지 않거나, 적극적이지만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현대차 i30 N. 고성능 소형 해치백이라는 점에서 유럽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 i30 N. 고성능 소형 해치백이라는 점에서 유럽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해외다. 국내 시장만 바라봤다면 N 브랜드의 마음은 이미 진작에 꺾였을 것이다.

N은 2017년 9월 첫 모델인 i30 N을 시작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고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뒀다. 2018년 8950대였던 판매량은 2019년 1만7498대로 2배가량 늘었다. 2020~2021년에는 코로나 여파로 각각 1만2173대 및 1만3871대로 줄었지만, 2022년에는 2만9507대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누적 실적도 8만5000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고성능 소형차의 격전지인 유럽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i30 N은 2019년 유럽에서만 1만2000대가량 판매됐는데, 이중 8000대를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에서 해치웠다. 현대차에 따르면 N 브랜드는 현재 40여개국에 6종의 모델이 판매되고 있으며, 일부 나라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문제는 국내다. 사실 N 같은 고성능 모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국산 스포츠카에 대한 수요는 늘 있어왔다. 스쿠프를 시작으로 티뷰론과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로 이어진 거룩한(?) 계보는 자동차 마니아에게 지지를 받았다.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현대 아반떼 N
현대 아반떼 N

다행인 점은 N을 대하는 현대차의 태도다. 판매량에 나타나는 숫자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높일 무형의 자산이라 여긴다. 실제로 현대차 N 브랜드 관계자는 "판매량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N 브랜드 고객들은 적극적으로 주변에 추천하고, 커뮤니티와 트랙데이 등 다양한 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등 애정이 뛰어나다는 것"이라며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출시 초반에 고전하는 것은 모든 고성능 브랜드의 숙명이다. BMW M과 메르세데스-AMG가 그랬고, 폭스바겐 R과 토요타 GR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고, 그 경험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고성능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은 '더 멋진 차'를 만든다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올해 나오는 첫 번째 고성능 전동화 모델 아이오닉5 N이 새로운 시작이다. 내연기관을 넘어 전기차 시장에서 N의 정신을 만들어 낸다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다. 성능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전동화 시대, N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공략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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