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현대차 아니었어? 우리가 몰랐던 '배지 엔지니어링'의 세계 [주말의MG]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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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1 17:00
이거 현대차 아니었어? 우리가 몰랐던 '배지 엔지니어링'의 세계 [주말의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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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만난 국산차에 낯선 엠블럼이 달린 걸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디자인을 보면 현대차, 기아, 르노코리아 모델이 맞는데, 전혀 다른 엠블럼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런 '라벨 갈이' 차들을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이라고 부른다.

배지 엔지니어링은 대부분 같은 그룹에 속해있는 브랜드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다. 특정 시장에서 부족한 라인업을 보강하거나, 기술력 확보를 위한 이해관계로 탄생하기도 한다. 모터그래프가 해외에서 전혀 다른 모델로 판매되고 있는 국산차를 정리해봤다.

# 현대차 포니엑셀→미쓰비시 프레시스

1986년 북미에 진출한 현대차 포니엑셀은 1987년부터 미쓰비시 프레시스라는 이름으로도 판매됐다. 모든 물량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돼 공급됐는데, 포니엑셀 후속인 뉴 엑셀이 등장한 이후인 1994년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미쓰비시 프레시스(현대차 포니엑셀)
미쓰비시 프레시스(현대차 포니엑셀)

미쓰비시가 굳이 포니엑셀을 라벨 갈이해 판 이유는 미국의 일본차 수입 규제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석유 파동과 달러 강세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수입차 성장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자동차 회사까지 도산 위기에 처하자 국제무역위원회(ITC)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일본은 미국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1994년까지 북미 수출량을 200만대 미만으로 제한해야 했다. 

어쨌건 프레시스는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에서만 연 평균 2만대가량의 실적을 올리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현대차는 포니엑셀과 프레시스의 인기에 힘입어 단숨에 누적 생산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차가 미국에서 '제 2의 일본차'라는 인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 현대차 베르나→닷지 애티튜드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학원에서 처음 운전해보게 되는 베르나(엑센트)는 2006년 멕시코에서 닷지 애티튜드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닷지 애티튜드 (현대차 베르나)
닷지 애티튜드 (현대차 베르나)

베르나가 닷지 로고를 달게 된 건 당시 현대차가 멕시코에 진출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차는 멕시코 진출 가능성을 검토 중이었는데, 제휴 관계에 있던 다임러크라이슬러를 활용해 베르나를 우회 진출 시켜 시장 반응을 살폈다. 애티튜드는 2014년 현대차가 멕시코에 진출하기 전까지 닷지 이름을 달았다.

흥미로운건 애티튜드의 전신이었던 닷지 브리사도 현대차였다는 점이다. 브리사는 현대차 1세대 엑센트에 닷지 엠블럼을 달았고, 애티튜드 출시 이후인 2006년에는 현대차 클릭 기반의 배치 엔지니어링 모델로 재탄생돼 2009년까지 이어졌다. 

# 쌍용차 티볼리→마힌드라 XUV300

쌍용차(현 KG모빌리티) 티볼리는 인도 현지에서 마힌드라 XUV300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KG그룹 합류 전 대주주였던 마힌드라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마힌드라 XUV300(KG모빌리티 티볼리)
마힌드라 XUV300(KG모빌리티 티볼리)

앞서 언급된 애티튜드 및 프레시스와 달리 XUV300은 인도 현지에 맞춰 차체를 개선했다. 앞·뒤 오버행을 줄이고,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1.2리터 가솔린 엔진과 1.5리터 디젤엔진 등 두 종류의 파워트레인을 탑재했다. 수동변속기만 제공되는 것도 티볼리와의 차이다. 

현재 KG모빌리티가 마힌드라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했음에도 XUV300은 여전히 인도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알투라스 G4로 바뀐 렉스턴과 달리 현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어서다.  

# 쌍용차 이스타나→메르세데스-벤츠 MB100

쌍용차 이스타나는 해외에서 메르세데스-벤츠 MB100으로 판매됐다. 엠블럼과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똑같은 자동차였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벤츠인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 MB100 (쌍용 이스타나)
메르세데스-벤츠 MB100(쌍용 이스타나)

이스타나가 MB100가 된 것은 쌍용차와 벤츠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다. 벤츠는 아시아태평양에 판매할 승합차 생산기지를 찾고 있었고, 쌍용차는 벤츠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쌍용차는 1995년부터 이스타나 생산에 나섰고, 1999년부터 메르세데스-벤츠 엠블럼을 달고 MB100이란 이름으로 수출했다. 

이스타나는 2003년 단종된 이후 중국에서도 생산됐다. 당시 쌍용차의 모기업이었던 상하이자동차에 CKD(반조립 제품) 형태로 공급됐고, 2009년까지 중국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 르노삼성 SM5→르노 사프란, 래티튜드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 SM5의 경우는 조금 독특한 케이스다. 닛산 티아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2세대 SM5를 다시 르노 이름으로 수출했기 때문이다. 배지 엔지니어링 차량이 또 다시 배지 엔지니어링이 된 것이다.  

르노 래티튜드(르노삼성 SM5)
르노 래티튜드(르노삼성 SM5)

2세대 SM5는 르노 사프란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에 진출했다. 2.0리터 엔진이 주류였던 우리나라와 달리, 당시 SM7에 탑재됐던 2.5리터 및 3.5리터 V6 엔진이 주력이었다. SM7도 티아나를 기반으로 만들지다 보니 가능했던 설계였다.  이후에 등장한 르노 라구나 기반의 3세대 SM5도 같은 방식으로 수출됐다. 

SM5는 유럽에서 래티튜드라는 이름을 달고 르노의 기함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9년 단종된 비운의 고급차 벨사티스의 후속으로 등장한 이후,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의 업무차량 및 칸 영화제 공식 의전 차량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명맥은 현재의 SM6(르노 탈리스만)가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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