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자동차] 테이큰3, 그 허무한 추격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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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7 12:40
[영화속 자동차] 테이큰3, 그 허무한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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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첫편이 놀라웠던 점은 다름 아니라 너무나 실감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가본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게 주효했다. 흔하디 흔한 여행지, 흔한 딸과 아빠의 모습. 당시 55세였던 리암니슨은 너무 평범했기 때문에 더 와닿았고, 여행지에서 느끼던 은근한 불안감 때문인지 납치를 당하는 것도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흔해 보였던 아버지가 알고보니 전혀 흔하지 않은 아버지였고 사실은 인간 말살 병기로 키워진 인물이었다. 나를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 강도보다 훨씬 흉악하고 잔인하게 돌변하는 모습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납치범들을 응징할 뿐 아니라 "이런건 원래 외주를 줬는데 말이야..."라면서 관련자까지 처절하게 짓밟아준다.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싸움 가장 잘한다’는 식의 유아기적 환타지,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핵심이었다. 다시말해 '우리 아빠'가 '슈퍼 히어로'가 되는게 정점이다. 

2편부터는 정체가 드러난 상태니 극적인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이 애초부터 너무 강하면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다. 때문에 2편에서 아버지는 일찌감치 잡혀 갇혀 슈퍼히어로의 힘을 잃은 무기력한 상태로 재 등장했고, 엄마는 잡혀오고, 딸은 아버지 없는 곳에서 대신 싸우는 등 극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역시 ‘쿨’한 아빠. 잘못하면 뼈도 못추리는 정의의 사도. 피가 과도하게 난무하는 테이큰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2편에도 이어졌다. 선한자를 위해서는 한 없이 부드럽지만 악한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아빠. 아예 갱단을 뿌리째 일망타진 해버린다.

▲ 테이큰3 포스터

하지만 이번 테이큰3는 전편의 흥행요소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시작은 '엄마의 살해'지만 살인 도구인 칼이나 상처에 단 한방울의 피도 묻지 않았다. 총에 맞은 악당도 몸에 구멍이 나지만 피는 나지 않는다. 심지어 총은 가슴에 겨냥하는게 아니라 다리에 맞춘다. 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장면에는 빨간 피가 아니라 간장 같은 검정색 국물이 튄다. 12세 관람가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다. 

▲ 대체 이 선량한 경찰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번 '아빠'는 일말의 반전조차 없다. 처음부터 ‘내가 누군지 보여주마’식으로 영화 내내 힘자랑만 늘어놓는다. 별 이유 없이 잡혀 수많은 경찰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공포스럽던 아빠는 이제 악당들에게도 자비롭다. 범인에게 자백을 받겠다며 딱 3초씩 물고문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물고문은 한국 와서 좀 배워가야겠다. 

# 무적의 포르쉐 996. 아직도 달리나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씬은 흥미롭다. 열심히 달리고, 부서지고, 카메라가 분주히 날아다니는데도 불구, 따분하기 그지 없어서다. 자동차는 어지간해선 폭발하지 않지만 주인공 브라이언밀스가 탄 차가 사고가 나면 여지없이 화염을 내뿜고 다이너마이트처럼 무지막지하게 폭발한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뻔하게도 브라이언밀스는 마술처럼 폭발 직전 빠져나와 있는데 여기는 별다른 설명조차 나오지 않아 관객들을 의아하게 한다. 

감독의 절약정신이 뛰어나서인지, 평소 브라이언밀스는 반짝거리는 도요타 캠리를 타고 있지만 폭발 사고 직전에는 굴러가는게 다행스러워 보이는 80년대 자동차로 바꿔탔다. 

▲ 왼쪽 위부터 아우디 R8 스파이더와 도요타캠리, 성능이 훌륭한 닷지 차저 경찰차, 악당들이 애용하는 S클래스, 돌연 등장 후 30초도 안돼 폭발하고마는 비운의 정체불명 자동차.

악당들은 당연히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탄다. 등장하는 S클래스는 63 AMG도 아니고, 별다른 업그레이드도 돼 있지 않은 전형적인 미국향 모델이다. 얼핏 보기에도 그렇게까지 돈 많다는 악당이 탈 차는 아닌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좀 이해심을 가져보자. 어쩌면 방탄이 돼 있는 모델인 S-가드(Guard) 모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가드 모델들은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 S클래스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브라이언밀스의 구형 혼다어코드를 절벽 아래로 밀어붙이는 차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다. 괴물 같이 커다란 차체여야 설득력이 있어서다. 다만 에스컬레이드는 차를 몇차례 들이받고도 잔 스크래치 하나 생기지 않는 점이 옥의 티. 아니다. 이 또한 에스컬레이드의 외관을 흉내낸 초합금 자동차 정도로 생각해보기로 하자.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차는 포르쉐 911(996)이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나왔던 차다. 포르쉐의 최초의 수랭식 911인데 새로운 램프를 장착한 덕에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냈지만 달라진 이미지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리 인기가 높지 못했다. 국내서도 인기가 없어 요즘 중고차 시장서 300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정도다. 10-17년은 된 자동차지만 클래식의 반열에 들어가기는 어렵겠다.

▲ 아빠와 딸의 눈물겨운 상봉 뒤에 비춰진 포르쉐 911(996)과 그 차가 들이받아 이륙 도중 추락한 비행기. 감독은 스크래치가 나는걸 극도로 꺼리는 것 같다.

감독은 이 정도의 자동차에도 스크래치가 나는게 아까웠는지 공항 울타리를 전속력으로 밀어붙이고도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는걸로 연출했다. 이륙하려던 비행기의 앞바퀴를 들이 받을 때도 굳이 일부러 측면으로 들이받아 마지막 장면에서 차가 찌그러지지 않은 모습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리암닐슨은 이전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가 애초엔 극장용이 아니라 비디오용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둔덕에 이렇게 3편까지 나오게 된 모양이다. 이전 테이큰은 킬링 타임 영화로 제격이었지만 이번 테이큰3은 극장내 시간 흐름이 늦춰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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