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차 아슬란, 그랜저와의 불편한 동거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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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16 23:53
[시승기] 현대차 아슬란, 그랜저와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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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란의 등장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쏘나타와 마르샤, 그랜저와 다이너스티의 관계를 봤을 때, 어쩌면 아슬란의 등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셈이다. 그래서 그랜저와 아슬란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무작정 비난할 순 없다.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은 오히려 독일차 브랜드가 더 적극적이다.

핵심은 차별화다. BMW의 5시리즈와 6시리즈, 7시리즈는 제각기 맡은 역할이 명확하다. 특히 6시리즈는 그 성격이 뚜렷하다. 멋과 성능이 강조됐다. 5시리즈와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쿠페 및 쿠페 스타일 세단으로 차별화를 뒀다. 또 7시리즈의 부품으로 실내를 채웠고, 1억원이 넘는 가격을 납득시킬 고급스런 소재를 사용했다. 

아슬란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분명 그랜저보다 고급스런 소재가 사용됐다. 한편으론 제네시스보다 더 나은 부분도 있다. 엔진도 그랜저와 달리 3.0리터와 3.3리터만을 탑재했다.

 

아쉬운 점은 형태. BMW 6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CLS클래스, 아우디 A7처럼 개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그랜저와 아슬란의 관계는 쏘나타와 마르샤와 비슷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은 훨씬 똑똑해졌다. 그리고 국산차에 대해 훨씬 엄격해졌다.

# 하체 개선만으로 차의 성격이 변했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동일한 ‘Y6’ 플랫폼을 사용한다. Y6 플랫폼의 주력 모델은 쏘나타와 기아차 K5다. 결국 아슬란은 단종된 YF쏘나타와 이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등급이 낮은 차의 플랫폼을 물려받은 것도 서러운데, 더욱이 구형 플랫폼이다. 현대차가 최근에 목놓아 부르짖는 고장력 강판 확대도 아슬란엔 적용되지 않았다. 

 

아슬란은 오래된 뼈대를 사용했음에도 새로운 하체 세팅만으로도 충분히 그랜저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고속안정성은 최근 시승한 K9보다 나았다. 고속에서 최대한 차체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서스펜션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불규칙한 노면에서도 차체를 잘 부여잡는다. 예전엔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서스펜션이 더 단단하고 세련됐다고 느꼈는데, 현대차의 신차는 그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단단해졌다. 

하체의 변화는 곧 승차감으로도 연결된다. 요철의 충격을 상쇄하는 능력도 예전의 현대차보단 월등히 나아졌다. 잔진동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단, 급출발 및 제동에서는 앞이 살짝 들리거나 앞으로 쏠리는 경향이 보인다. 전장에 비해 짧은 휠베이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긴 오버행과 리어행은 연속되는 코너에서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좌우 한쪽으로 쏠리는 무게중심도 감당하기 벅찬데, 가속과 감속이 연결될 땐 앞뒤의 쏠림까지 더해진다. 현대차 전륜구동 특유의 언더스티어와 스티어링휠의 무게감은 굽이진 산길에서 속도를 높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스티어링휠의 무게감 증가가 일정치 않고 이질적이다 보니, 타이어의 접지력을 느끼기 힘들고 방향 조종에 대한 확신이 줄어든다. 제동 성능도 끈기가 부족하다. 쉽게 지친다. 산길을 한번 오르고 내리면 금새 반응이 무뎌진다. 

 

# 여유로운 엔진의 힘

현대기아차의 3.3 엔진은 꽤 출중한 힘을 낸다. 그랜저나 K7에서는 ‘오버스펙’이라 할 정도로 무섭게 속도를 낼 수 있다. 아슬란에서도 역시 그 힘을 숨기지 않는다.

휠스핀을 내면서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차체 자세 제어장치를 끄면 출발은 물론 변속 시점에서까지 휠스핀을 일으킨다. 고속에서도 꾸준하게 반응을 유지한다. 3.3 V6 GDi 람다 엔진은 신형 제네시스보다 성능이 조금 높게 세팅됐고 가속 느낌도 전혀 다르다. 400kg 가량의 무게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대형차가 풍족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어느 시점에서든 원하는 만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고속으로 도달함에 있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기에 조용하고 평온하다. 정숙성은 또 그랜저와 차별화된 부분이다. 이중접합유리와 방음재 사용량을 늘렸고, 차폐구조 개선, 공회전 진동 및 가속 소음 개선을 거쳤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에서는 아웃사이드 미러를 스치는 약한 바람 소리 정도만 들린다. 이 정도의 정숙성이면, 올해 안으로 출시될 디젤 모델도 기대해볼만 하다.

 

현대차가 아슬란을 출시하면서 줄창 강조하던 나파 가죽 시트도 평온한 승차감에 일조한다. 가죽 시트의 표면이나 쿠션은 현재 모터그래프가 타고 있는 제네시스 3.3 프리미엄의 것보다 낫다. 단, 시트포지션 설정은 제네시스가 더 낫다. 아슬란의 시트 포지션은 꽤 높다. 마름모 박음질된 아슬란의 퀼팅 시트는 3.3 트림 이상에서 선택 가능하다.

# 편의장비의 집약체

아슬란은 현재 현대차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편의장비가 집약됐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다소 거칠게 작동하지만, 가장 반길만한 편의장비다. 스티어링휠의 버튼 조작으로 속도 조절과 앞차와의 간격, 재출발 등을 설정할 수 있다. 이미 그랜저를 통해 현대차가 최초로 선보인 장비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많은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BMW의 것보단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여러 모로 유용한 장비다. 굳이 내비게이션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많은 것을 조작할 수 있다. 밝기나 위치 조절의 자유도도 높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기아차가 K9에 국산차 최초로 적용했다.

 

스티어링휠 진동으로 위험을 알리는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이나, 사각지대의 차량 유무를 알려주는 스마트 후측방 경보 시스템은 안전을 위한 훌륭한 기술이고 아슬란의 것도 원활하게 작동하지만 크게 새롭진 않다. 주변의 상황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듯 화면에 나타내는 어라운드뷰 모니터, 직각주차까지 가능한 어드밴스드 주차조향 보조시스템, 어댑티브 헤드램프 등도 좋지만 신기하지 않다. 

 

# 아슬란은 마르샤의 전철을 밟을까?

현대차는 쏘나타-그랜저-제네시스-에쿠스로 이어지는 탄탄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고 각 차는 오랫동안 자신의 역할을 잘 담당했다. 추가된 아슬란은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틈새를 막고, 등장부터 전륜구동 플래그십이라는 엄청난 감투까지 썼다. 신예가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졌다. 

 

마르샤나 다이너스티는 판매도 원활했고, 반응도 좋았다. 이름, 디자인, 편의사양 등을 약간 바꾼 것 만으로 현대차는 큰 수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이 마케팅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마르샤와 다이너스티는 대를 잇지 못했다. 마르샤가 그랜저XG의 기반이 됐지만, 가장 중요한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슬란이 짊어질게 될 압박감이 아슬란을 땅속으로 파묻어버릴지, 아니면 용맹한 사자처럼 굳건히 버틸 수 있을지 한세대만 기다려보면 알 수 있겠다. 분명한 건, 현대차가 30년 역사의 그랜저를 사라지게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 장점

1. 비슷한 가격대에서 정숙성이나 안락함, 실내 공간 등은 따라올 차가 없다. 

2. V6 엔진. 3.0 및 3.3리터는 반응이나 음색이 현대차 중 남다르다.

3. 일단 편의장비는 빠짐없이 담겼다.

* 단점

1. 유독 센터콘솔의 플라스틱 질감이나 사용감이 떨어진다.

2. 최근 새로 나온 현대차 중 잘 돌고, 잘 서는 기본기가 가장 뒤떨어진다.

3. 미래가 이등병의 앞날보다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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