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하늘을 달리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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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9 15:45
[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하늘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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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축 처진 어깨와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이끌고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완전히 새’된 포즈를 취한 차가 떡 하니 세워져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비싼 모델인 SLS AMG가 어서 빨리 날아가자고 두팔을 하늘 향해 높이 들고 있던 것.

 

고귀한 자태를 보는 것 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의 근육이 바짝 수축됐다. 강력하다는 에너지 음료를 두어병 연달아 마신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어떤 연유로 이 차가 사무실에 당도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문도 열려있고 스마트키도 실내에 있어서 잽싸게 올라탔다.

◆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봉, SLS AMG에 오르다

일단 운전석에 앉았는데 손을 뻗어서만은 문을 닫을 수 없다. 엉덩이를 살짝 들고 상체를 세운 후 팔을 높이 뻗어야 한다. 아니면 아예 문을 닫으면서 차에 올라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어차피 이 정도의 불편이 이 차를 선택하는데 방해되진 않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걸윙도어'로 쏟아지는 시선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인데 이때 문짝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부러움과 신기함이 비웃음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실내는 꽤 비좁다. SL클래스의 넉넉함은 없다. 시트 뒷공간에 가방 하나 놓기 힘들 정도고 머리공간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 차에 탔다기 보다 차에 낀 기분. 그래도 밀착된 실내는 마치 레이싱카에 앉은 듯한 착각이 주기도 한다. 운전에만 집중하라는 것 같다.

무척이나 긴 보닛은 정말 까마득하다. 그만큼 앞바퀴도 운전석과 멀리 떨어져있다. 운전석은 오히려 뒷바퀴와 더 가깝다. ‘롱노즈 숏데크’의 정석이라기보다 극단적인 해석이다. 실제로 엔진룸에는 빈 공간도 많다.

 

그래도 나름 전방 시야가 괜찮은 편이다. 보닛은 길지만 끝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거리를 잘못 계산해 벽에 들이박는 일은 없겠다. 긴 보닛이 조작에 따라 휙휙 돌아가는 모습은 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다.

실내에선 플라스틱을 찾는게 오히려 더 힘들다. 온통 가죽과 알루미늄이다. 카본 패키지 모델은 알루미늄 트림이 온통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으로 꾸며졌고 외관 일부에도 쓰인다. 가격은 대략 3천만원 정도 오른다.

 

계기반 최고속도는 무려 360km/h까지 표시돼 있고 레드존은 7500rpm 부근이다. 최근 AMG에도 터보차저 열풍이 불면서 고회전을 사용하는 엔진이 줄고 있는데 SLS AMG는 여전히 자연흡기를 고수하며 고회전의 폭발력을 잘 간직하고 있다.

 

못생긴 기어 노브 근처에는 SLS AMG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주행모드 변경 컨트롤, 시동버튼, 차체자세제어장치 오프, 리어스포일러 수동 조작, 개인 설정 모드 등이 가지런히 모여있다.

시동버튼을 누르자, 기대보다는 다소 얌전한 배기음이 울려퍼졌다. 허나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차체가 흔들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늘을 달릴 시간.

◆ 피를 끓게 하는 슈퍼카, “실버애로우의 귀한”

AMG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남다른 배기음이다. AMG 중에서 가장 강력한 SLS AMG는 오죽하리. 두개의 작은 머플러에서 토해내는 소리는 강렬하고 거칠다. 무척이나 남성적이다.

하지만 결국 벤츠는 벤츠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소리소문없이 도로를 미끄러진다. 마법의 양탄자가 이러할 듯. SL클래스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과 편안함이 SLS AMG에도 조금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결코 편안한 차는 아니다. 결국 스포트 모드로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게 될테니깐.

 

2m에 가까운 차체 너비, 한뼘은 족히 넘는 타이어 너비, 그에 비해 무척이나 낮은 차체는 571마력의 엔진을 잘 감당한다. 흐트러짐 없이 튀어나간다. 아깝게 버려지는 힘이 별로 없으니 속도는 처음부터 빠르게 올라간다.

폭발적인 힘은 변속이 거듭될 때마다 뒤통수를 세게 때린다. 1단으로 시속 70km까지 달릴 수 있고 시속 200km가 넘어가도 변속의 여지가 남는다. 수동 모드로 엔진회전수를 최대한 활용하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못지 않은 폭력성을 드러낸다. 고막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엔진소리와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배기음이 더욱 피를 끓게 한다. 내친김에 터널 벽이라도 타고 올라갈 기세다.

 

6.2리터나 되는 엔진을 달고 느린게 이상하겠지만 SLS AMG는 유독 빠르면서도 안정적이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뒷차축에 붙이면서 무게 밸런스를 조절했고 프레임의 96%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강성도 높였다.

스티어링휠을 마구 돌리며 조작해도 긴 보닛이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차체 크기를 잊게 할 정도로 가볍고 잽싸다. 예상보다 적게 돌려도 앞머리는 급격하게 방향을 튼다. 그만큼 스티어링이 여유롭다. 서스펜션은 무척이나 단단하다. 노면 정보를 확실하게 전달하면서 차체를 꽉 잡는다. 노면이 불규칙한 곳에서는 충격이 실내로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한다.

 

날개를 활짝 펴고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한데 속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도로에 달라 붙는다. 시속 120km에서 자동으로 펴지는 뒷날개까지 곧게 서면 SLS AMG를 타고 흐르는 공기는 더욱 차를 바닥으로 꾹꾹 누른다.

◆ 현실보다 이상을 쫓는 ‘드림카’

비록 장시간의 시승이 꼭 편안하게 다가온 것만은 아니었다. 혹자는 SLS AMG를 ‘GT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SL클래스나 동일한 부품의 변속기를 사용하는 페라리 캘리포니아에 비해 거주성은 무척 떨어진다. 시트를 다각도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내가 넓은 편이 아니다. 걸윙도어의 구조상 도어포켓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계속되는 대배기량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다.

 

하지만 강한 중독성은 이런 몇몇의 불편함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 충분하다. 독특한 디자인은 언제봐도 비현실적이지만 계속 눈이 가고, 연료통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기름이 사라져도 오른발엔 계속 힘이 들어간다.

 

300SL의 독창적이고 비현실적인 모습은 반세기만에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해졌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더 이상 전투기 엔진을 생산하지 않는 메르세데스-벤츠지만 여전히 ‘삼각별’의 한 꼭지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희망과 야심은 아직 말소되지 않았다. 다시 돋은 날개로 SLS AMG는 말한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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