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제네시스 EQ900, "용기가 필요해"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 좋아요 0
  • 승인 2015.12.21 14:09
[스케치북 칼럼] 제네시스 EQ900, "용기가 필요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차가 자사의 고급 브랜드를 제네시스로 결정한 후 EQ900(수출명 G90)을 선보였다. 현대차 임원들은 EQ900을 오직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과 비교하며 충분히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독일 자동차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얼마 전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현대 제네시스를 비롯한 아시아 럭셔리 브랜드의 유럽 시장에서 현재 상황과 전망을 담은 장문의 기사 한 편을 게재했다. 물론 초점은 제네시스로, 북미에서 성공을 거둔 현대차가 이를 바탕으로 30년 전에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했던 것처럼 고급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성공은 꽤 어려운 일이라 설명했다.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조차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 미국서 잘 나가는 일본 프리미엄, 유럽서는 줄줄이 실패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브랜드 보다는 내구성과 가격, 안락함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렉서스는 이런 특성에 맞게 조용하고 안락하며, 내구성까지 좋으면서 가격은 독일 차들의 60% 수준인 모델로 성공을 거뒀다.

반면 유럽에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렉서스 판매량에서 별 차이가 없다. 1995년 독일에서 렉서스가 2172대가 팔렸는데, 올해 1~11월 판매량도 1700대 미만인 상황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전년보다 27.4%가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재규어가 4000대가량 팔린 것을 감안하면 라인업이 많은 렉서스가 고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최근 유럽에 진출한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도 렉서스보다 한참 뒤처지는 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혼다의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는 아예 유럽에서 팔지도 않는다.

 

올해 11월까지 EU(유럽연합)에서의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아우디는 68만9819대, 메르세데스-벤츠는 65만953대, BMW는 64만8480대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볼보 23만5666대, 재규어 3만5729대로 뒤를 이었다. 렉서스는 겨우 3만3717대에 불과했다. 시트로엥의 고급 브랜드인 DS(6만6945대)와 이태리 알파로메오(5만1284대)까지 포함하면 순위는 더 밀려난다. 

# 렉서스와 비슷한 제네시스, EQ900도 부담

렉서스의 실패는 제네시스 브랜드에도 큰 부담이다. 디벨트는 렉서스가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로 유럽 전역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강력하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점, 안락함과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유럽 명품소비족 취향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렉서스와 비슷한 제네시스에도 적용되는 문제다.

 

디벨트는 EQ900(V6 3.8리터급)을 시승해 본 전문가의 의견을 간단히 소개했다. 약8325만원(6만5000유로)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각종 첨단 장치들이 가득했고 무척 안락했으며 넓은 공간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다만, 핸들링과 변속기, 제동력 등이 기대 이하였고, 트렁크가 너무 작았으며 회전반경도 경쟁차들에 비해 다소 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평가대로라면 전체적으로 유럽 운전자들이 좋아할 만한 성능과 구성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독창성은 용기가 필요하다

 

디벨트는 이 외에도 디자인에 대해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그릴은 아우디와 비슷하고 측면 하단부 등은 7시리즈, 뒤쪽은 S클래스 등의 이미지가 혼재된 듯하다고 말했다. 로고 역시 애스턴 마틴을 떠올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태리 출신의 파올로 툼미넬리 자동차 디자인 교수의 말을 인용해 표면처리나 디테일 등은 S클래스 쿠페 수준으로볼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도 벤틀리 뒤태와 애스턴마틴의 로고 등 유럽 최고 수준의 것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툼미넬리 교수는 "하나밖에 없는 스페셜 원'이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데, 현대차는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현대차 디자인 총괄인 피터 슈라이어는 '새로운 이미지, 오리지널의 느낌의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했지만, EQ900은 자기만의 색깔이나 존재감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 진짜 프리미엄 되려면 유럽에서 성공해야

디벨트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차의 성격과 디자인 등,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제네시스의 유럽 내 안착이 쉽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유럽시장 그냥 포기해 버려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디벨트에 실린 렉서스 독일 법인 임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렉서스 독일지사에 근무하는 울리히 젤처는 "우리 차가 정말 좋다는 걸 증명하려면 프리미엄 자동차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인 유럽에서 성공해야만 한다"며 "시장이 어렵다고 피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뛰어난 성능과 자신만의 존재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해야만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저명한 자동차 전문가인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교수 역시 "유럽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규어처럼 역사가 깊든가, 아니면 테슬라처럼 기술에서 남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제네시스에게)필요한 것은 감탄할 만한 강력한 무엇(인상)이다"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