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BMW 박물관을 가다 (上)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 독일 뮌헨=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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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30 11:04
[르포] BMW 박물관을 가다 (上)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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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랍 모토렌 베르케(RAPP Motoren Werke)’는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났지만, 이름에서 주는 이미지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랍은 그 유명한 ‘니콜라스 아우구스트 오토(Nicholas August Otto)’의 아들인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가 운영하던 ‘오토 베르크(Otto Werke)’를 인수했고, 1916년 3월 7일 ‘BMW(Bayerische Motoren Werke)’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BMW 박물관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큐레이터 '안드레아스 브라운(Andreas Braun)’ 박사는 매우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BMW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100 마스터피스(100 Masterpieces)’ 특별 전시는 BMW의 시작을 알리는 두개의 회사 포스터와 초기 BMW의 포스터, 그리고 마치 그리스 신전의 유물처럼 보이는 그 당시 공장의 기둥 조각으로 시작됐다.

 

BMW는 원래 미니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부분을 100 마스터피스 특별 전시를 위해 새롭게 꾸몄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안드레아스 브라운 박사는 “이 전시는 BMW그룹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BMW를 빛낸 제품도 중요하지만, BMW의 철학과 미래까지 살펴볼 수 있는 100개의 전시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독일 뮌헨의 BMW 박물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BMW그룹의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했다. 

# 첫걸음 : 1916 - 1932

나선형으로 구성된 건물을 1층부터 거슬러 올랐다. 나선형 통로에는 당시 역사 상황과 이동수단을 보여주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브라운 박사는 이곳을 ‘타임터널’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포스터가 많았는데 주로 유럽의 포스터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임터널을 빠져나오니, 초창기 BMW의 직원들과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흑백 사진이 전시됐다. 브라운 박사는 “BMW는 무엇보다 직원들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 얘기는 전시관 설명이 끝날 때까지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BMW가 처음 시작됐을 때, 직원은 약 800여명 정도였다고 한다. 여러 회사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그리 작은 회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1945년까지 직원은 계속 늘었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는 2015년 12월 31일자로 약 12만2300명이 BMW그룹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BMW는 항공기, 모터사이클,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이 혼합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 직원들의 소식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BMW는 직원들을 위한 소식지를 발간해 다양한 정보를 직원들에게 제공했다. 당시 소식지가 그대로 전시됐는데, 이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 보관하고 있는 점은 놀라웠다. 역시 남는 것은 문서와 사진이다.

 

항공기 분야에서는 인력난이 심했다. 전문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또 독일엔 많은 항공기 제작 업체 있었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했다. 그래서 BMW는 아예 전문인력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직업 전문 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 제 3제국 : 1933 - 1945

브라운 박사는 매우 생기가 넘쳤고, 온화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섹션을 들어설땐 굉장히 차분했다. 약간 초조한 기색도 보였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1933년부터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시기까지는 BMW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던 시기였죠. 그 당시 BMW는 모터사이클이나 자동차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전쟁에 필요한 항공기 엔진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은 군대에 납품하는 항공기 엔진 공장으로 변했고, 뮌헨 인근에 이를 위한 새로운 공장도 구축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BMW 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독일군을 위해 밤새 공장을 돌렸다. 전쟁은 아픈 상처와 쓰라린 상처만을 남겼다. 하지만 BMW를 포함한 독일 브랜드는 지금까지 반성하고 있으며, 이런 아픈 역사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BMW는 더 많은 전투기 엔진을 만들기 위해 ‘바하오 수용소’에 수용됐던 사람들을 데려와 강제 노동을 시켰다. 물론 BMW 스스로의 뜻은 아니었다. 강제 노동을 하는 직원들의 작업복엔 ‘Z’란 표식이 새겨졌다. ‘Z’는 독일어로 ‘강제 노동(Zwangsarbeit)’을 뜻한다. BMW는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등에서도 많은 강제 노동 인력을 충원했다. 

 

“BMW는 역사적으로 많은 후회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쟁과 강제 노동 같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BMW는 강제 노동자를 위해 프랑스어나 러시아어로 제작된 소식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 방면에서 기존 직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매우 침착하고 신중하게 설명했다. 

 

BMW는 실제로 이 시기에 직원들을 위한 보건복지체제를 도입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회사 내에 의사를 주둔하게 했다. 의사들은 일주일에 50-60시간 근무하며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1940년대부터는 치과의사도 근무하기 시작했다. 

# 라인강의 기적 : 1946 - 1970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독일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시기다. 독일 국민들은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썼다. BMW도 마찬가지였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많았다. 먼저 그 당시 BMW는 소형차와 대형차가 주력이었다. 중형차가 없었다. 브라운 박사는 “당시 유럽인들의 경제적인 상황이나 수요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 BMW를 대표하던 차는 이세타였다. 이세타는 아주 성공적인 소형차였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됐고, BMW가 라이센스를 받아 제작했다. BMW의 모터사이클 엔진이 장착됐으며 가장 기본적인 이동수단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해외에서 많은 인력을 받았다. 당시 터키,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데리고 왔다. BMW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독일어 수업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 사내 주택을 마련했고, 유연성 있는 근무 시간을 도입했다.

 

출퇴근을 기록하는 스탬핑 시계가 배치되기도 했다. 전시관에는 그 당시 사용했던 스탬핑 시계가 여전히 세워져있었다. 물론 지금도 작동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BMW는 전세계에서 300가지의 다양한 근무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 혁신을 위한 움직임 : 1971 - 현재

BMW는 1974년부터 직원들이 주식을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일부 공장에서 주 4일 근무제도를 도입했고, 1997년에는 조기 은퇴 제도를 실시했다. BMW는 다른 기업보다 아주 빨리 조기 은퇴 제도도 도입했다. 조기 은퇴를 원하는 사람에는 이와 관련된 다른 이익을 주거나 줄이면서 근무에 유연성을 확보했다.

1970년대부터 컴퓨터의 발전으로 근무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타자기가 컴퓨터로 바뀌고, 공장에는 로봇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엔 컴퓨터와 로봇이 내 일자리를 뺏어가는 것이 아니냐란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많은 직원들이 반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컴퓨터와 로봇은 사람이 컨트롤 해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새로운 영역을 배워나갈 뿐, 일자리를 잃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오히려 공장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은 더 편안해졌다. 특히 여성 근로자들이 겪을 수 있는 신체적 한계가 사라졌다. BMW는 스위스의 ‘ABB’와 독일의 ‘KUKA’에서 공장 로봇을 공급받고 있다. 안전을 위해 로봇 반경 20cm 안에 사람이 접근하면 로봇은 하던 일을 중단한다.

 

또 인체공학적인 라인 설계를 통해 작업하는 근로자는 자신의 신체가 알맞게 대상물의 위치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2007년엔 ‘그린 오피스’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공장과 사무실 곳곳에 화초를 배치했다. 브라운 박사는 “마치 정글처럼 꾸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공장과 사무실을 만들고 싶었죠. 프로젝트가 진행된 후 공장에서 두통을 호소하던 직원들이 크게 줄었고, 일하는 분위기도 밝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설명을 이어가던 브라운 박사는 한국에서 온 나를 의식했는지 “이 전시장에만 60대 이상의 모니터가 있는데 전부 삼성전자의 제품”이라며 “삼성과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BMW그룹은 국제적인 기업이다. 대부분의 직원은 독일과 유럽에 있지만, 다른 대륙에도 많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4개 대륙에 15개 국가 30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는 약 28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서울엔 자체 딜러와 세일즈 네트워크도 있다. BMW는 전세계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한다고 했다.

 

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BMW그룹의 역사 공부는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대략 40여개의 마스터피스를 살펴봤다. 아직 전시된 차는 한대도 없었다. BMW의 탄생과 기업 이념, 가치관 등에 대한 마스터피스를 살펴봤다. 몇장의 사진과 설명 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랜 역사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BMW 그런 역사의 흔적을 제품에 드러내는 몇 안되는 회사기도 하다. ‘BMW 박물관을 가다’ 2부에서는 BMW의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차와 모터사이클 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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