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BMW 박물관을 가다 (下) 100년의 역사를 빛낸 자동차
  • 독일 뮌헨=김상영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6.06.14 15:52
[르포] BMW 박물관을 가다 (下) 100년의 역사를 빛낸 자동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박물관에서는 BMW그룹의 100년 역사를 빛낸 100가지 마스터피스가 전시되고 있다. BMW 박물관을 총괄하는 큐레이터 ‘안드레아스 브라운(Andreas Braun)’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100가지 마스터피스를 살펴봤다. 1부에서는 BMW의 탄생과 기업 이념, 가치관 등에 대해 살펴봤고, 2부에서는 BMW그룹의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차와 모터사이클 등을 살펴본다.

▲ BMW 303과 BMW의 초창기 모터사이클

# 진정한 BMW의 시작

 

303은 BMW가 내놓은 최초의 자동차는 아니지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델이다. 303부터 BMW의 상징인 키드니 그릴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BMW의 상징인 직렬 6기통 엔진도 303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런 상징성을 보여주기라도 하는듯 303 옆으로 지금까지 변화해 온 키드니 그릴의 다양한 형태가 전시됐다.

▲ 다양한 디자인으로 진화한 키드니 그릴

메르세데스-벤츠가 대형차에서부터 그들의 역사를 써 내려간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303에서는 허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303은 시속 100km까지 달릴 수 있었고, 경량 설계를 통해 ‘라이트 카(Light car)’라고 불리기도 했다. 1930년대부터 경량화를 고민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항공기 생산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만큼 누구보다 경량화에 관심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 고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BMW가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했을때 유독 가벼운 무게를 갖는 것도 이처럼 오랜 연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BMW가 제작하던 독일 수송기 엔진

첫 스테이지는 초창기 BMW의 역사적인 제품을 보여주는 장소였던 만큼, 모터사이클과 항공기와 관련된 것이 많이 전시됐다. 독일 수송기에 주로 탑재되던 ‘BMW 132 래디컬 엔진’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시 BMW는 항공기 엔진과 관련해서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1919년 BMW가 만든 엔진이 장착된 항공기는 최초로 고도 1만 미터를 돌파했다.

 

“파일럿에게 산소마스크만 있었다면 더 높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엔진의 성능은 충분했는데 파일럿의 상태가 보장되지 않아서 1만 미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BMW는 엔진을 만드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력이 자연스럽게 모터사이클과 자동차에 스며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 BMW는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브라운 박사는 낡은 헬멧과 모터사이클 복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BMW 모토라드의 역사적인 유물입니다. 아주 유명하고, 위험한 레이스인 ‘맨섬 TT(Isle of Man TT)’에서 ‘게오르그 마이어(Georg Meier)’가 1939년 우승을 차치했을때 착용했던 헬멧과 슈트입니다. 마이어는 맨섬 TT에서 우승한 최초의 독일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엔 매우 큰 뉴스였고, BMW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 2차 세계 대전 후 찾아온 위기와 기회

 

BMW는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을 거듭했지만 위기도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BMW 모터사이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는 전부 ‘아이제나흐(Eisenach)’ 공장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BMW 직원들은 설계도를 비롯한 주요 문서를 갖고 아이제나흐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 겨우 몸만 빠져나온 직원들은 뮌헨에서 기억력과 감각 만으로 새모델을 만들어야 했고, 이렇게 탄생한 모델이 ‘R24’다. R24는 큰 성공을 거뒀고, 전쟁 후 극심한 경제적 위기에 시달렸던 BMW를 일으켜 세웠다.

▲ BMW R24

브라운 박사는 “R24는 매우 기적적인 모터사이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숨을 한번 깊게 내쉬면서 “이 차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입니다. BMW가 지금까지 만든 차 중에서 가장 멋진 차”라고 소리 높여 얘기했다. R24 옆에는 BMW 507이 전시돼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에게 300SL이 있다면 BMW에겐 507이 있다. 하지만 507은 비운의 차다. 가장 아름다운 BMW로 항상 뽑히는 모델이지만, BMW에게 위기를 가져다준 모델이기도 하다. V8 엔진은 최고출력 150마력의 강력한 힘을 냈고 최고속도는 시속 200km에 달했다. 또 유려한 디자인은 BMW의 역량을 한단계 높여줬다. 하지만 507은 수작업으로 생산됐고, 가격은 턱없이 비쌌다. 그래서 원래 4-5천대 정도 만들 계획이었지만, 3년 동안 254대만 생산됐다. 그리고 BMW는 막대한 적자를 쌓였다. 물론 507만으로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 BMW 507

브라운 박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BMW는 시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중형차 세그먼트에서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터사이클 사업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세타가 한줄기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전체적인 손실을 만회하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회사의 운명을 결정지을 주주총회가 소집됐습니다.”

 

1959년 12월 4일 열린 주주총회의 주된 내용은 다임러의 BMW 인수 계획이었다. 한마디로 다임러에 BMW가 인수된다는 것을 주주들에게 알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일부 주주들의 반발이 있었고, 2시간으로 예상됐던 주주총회는 10시간이나 걸렸다. 여전히 다임러의 BMW 인수를 찬성하는 주주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다임러가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그리고 헤르베르트 콴트가 BMW의 지분 50%를 확보하며 BMW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콴트 가문은 여전히 BMW그룹의 대주주로 4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콴트 가문은 BMW를 소유하고 있지만 경영엔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 콴트 가문은 BMW에 입사조차 할 수 없다.

▲ BMW 1500

든든한 대주주를 얻은 BMW는 196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새시대를 알리는 세단 ‘1500’을 선보였다. ‘뉴 클래스(New Class)’라고 불리기도 했던 1500은 대성공을 거뒀다. 1500은 당시 BMW의 부족했던 중형차 라인업을 채워주며, BMW는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1500은 계속 엔진 배기량을 높이며 발전했고, 현행 3시리즈의 기틀을 마련했다.

 

#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1970년에서부터 1985년까지의 마스터피스가 전시된 스테이지에서 우릴 처음 반긴 것은 ‘BMW 터보 콘셉트’였다. 터보 콘셉트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디자인부터 여느 BMW와는 달랐다. 미드십 구조에 날개도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다. 이 디자인은 M1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또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터보 콘셉트는 안전을 위한 BMW의 많은 고민이 담겨있었다.

▲ BMW 터보와 1세대 5시리즈

브라운 박사는 “1960년대 말부터 독일에서 교통사고가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BMW는 안전을 위한 다양한 콘셉트를 생각했습니다. 이 차는 무척 화려하지만 안전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충돌이 발생하면 승객의 안전을 위한 안전장치가 동작합니다. 또 보닛과 트렁크의 끝부분 색상을 달리한 것도 시야에 더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합니다”라고 말했다. 

 

터보 콘셉트의 또 다른 특징은 BMW가 지금도 추구하고 있는 운전자 중심의 실내 환경이 적용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독일에서는 안전벨트가 의무화됐고,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운전자가 시트에 밀착되면서 센터페시아의 여러 버튼을 조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BMW는 이때부터 약간 운전석으로 틀어진 인테리어 레이아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브라운 박사는 “터보 콘셉트는 BMW의 인테리어를 설계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틀”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익숙한 차가 터보 콘셉트 옆에 전시됐다. 1972년 공개된 1세대 5시리즈였다. 이때부터 BMW는 숫자로 차를 더 명확하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브라운 박사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알파벳으로 차를 분류하기 전부터 BMW는 체계적인 작명 체계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BMW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석유파동으로 많은 브랜드가 위기를 겪을때, BMW는 5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디젤 엔진을 선보였다. 또 모터스포츠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M GmbH의 전신인 Motorsport GmbH를 세우기도 했다.

 

# 새로운 100년을 준비한다

 

확실히 자동차를 직접 보며 듣는 역사 설명은 이해도 쉬웠다. 이제 박물관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마지막 스테이지에는 1980년대 중반도 현재까지 BMW를 빛낸 역사적인 자동차가 전시됐다. 친숙한 모델과 반가운 모델이 더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 BMW 2세대 7시리즈

브라운 박사가 가장 먼저 소개해준 차는 2세대 7시리즈였다. E32 7시리즈는 7시리즈 중에서도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7시리즈를 상징하는 V12 엔진이 장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S클래스의 판매를 뛰어넘기도 했다. 브라운 박사의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아마 독일 혹은 유럽 내에서의 판매를 말하는 것 같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글로벌 판매에 대해 S클래스가 누구에게도 져 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BMW는 V12 엔진을 뛰어넘는 V16 엔진을 이 모델에서 테스트하기도 했다. 

▲ BMW 8시리즈

가장 반가웠던 차는 840i였다. BMW 8시리즈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지낸 모델이다. 하지만 가장 우수한 쿠페를 만들어보자는 야심찬 계획에서 출발한 쿠페였다. V8 및 V12 엔진의 강력한 힘도 특징이지만 무엇보다 BMW 터보, M1 등의 계보를 잇는 디자인이 이 차의 핵심이었다.

 

브라운 박사가 가장 오랫동안 설명한 차는 ‘지나(Gina) 콘셉트’였다. 브라운 박사는 기진맥진 곳곳에 흩어져있던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지나 콘셉트는 Z4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여전히 BMW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의 작품이다. 알루미늄과 카본 파이버로 제작된 프레임을 매우 유연한 우레탄 섬유가 덮었다. 그래서 그 형상은 속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헤드램프가 켜질땐 감은 눈을 뜨고, 빠르게 달릴땐 트렁크 리드가 튀어 올랐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매우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 BMW 지나 콘셉트

지나 콘셉트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그저 콘셉트는 콘셉트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BMW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았다. BMW는 이처럼 유연함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움직이는 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BMW 10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콘셉트카 ‘비전 넥스트 100(Vision next 100)’에서도 지나 콘셉트와 유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브라운 박사는 “지나 콘셉트는 BMW의 비전을 담은 모델로, 미래에는 이런 기능을 가진 차가 대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뮌헨 북쪽에 위치한 BMW의 연구개발센터(FIZ) 자체가 마지막 마스터피스로 선정됐다. 조금 의외였다. 브라운 박사는 “100 마스터피스는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지만, BMW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며 “연구개발센터 피츠는 BMW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MW의 100년 역사를 상세하게 파악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BMW가 100년 역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확실히 전달됐다. 브라운 박사는“지금까지의 과정은 앞으로의 100년은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한 준비였다”고 특별 전시회 설명을 끝맺음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