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봤어요", "나무위키에서 봤어요"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과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의 정보를 100%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나무위키나 유튜브처럼 언론의 기능을 갖지 않는 곳은 잘못된 정보가 많은데다, 잘 고쳐지지도 않는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좀 더 시간을 투자해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지만, 대부분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나온(대부분 맨 위에 뜨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위키피디아에 잘못된 정보 한 줄이 올라가면 최소 10만명 이상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듯하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올릴 수 있고, 특정 세력이나 팬덤에 의해 수정과 미화가 가능해 생기는 현상이다. 그나마 해외의 사이트들은 논란이나 미확인, 출처 등을 비교적 꼼꼼하게 표기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자동차 분야 역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진실인 양 통용되는 역사가 많다. 브랜드 마케터(혹은 팬덤들)에 의해 엉뚱하게 가공된 내용이 정설이 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거나 살이 붙다가 어느새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 람보르기니의 시작은 페라리에 대한 열등감?

엔초 페라리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자동차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다. 어떤 기록에서는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문헌에서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소비자와 생산자로 꽤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고도 적혀있다. 

엔초 페라리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두 사람의 언쟁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엔초 페라리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두 사람의 언쟁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일단 당시의 상황만 보면 단지 감정이나 보복을 위한 목적으로 회사를 세웠다고 보긴 어렵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나름의 위치에 있는 페라리 고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페라리 이외에 알파로메오, 재규어, 란치아 같은 차량도 소유하고 있었는데, 사업 파트너들을 직접 태워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생전 인터뷰도 거의 안 하고, 노출도 꺼렸던 엔초 페라리에 비해 쇼맨십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힌트는 견습공으로 시작해 40년 이상 람보르기니에 몸담은 엔지니어 발렌티노 발보니에게서 얻을 수 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운전 습관 자체에 문제가 있어 클러치를 자주 태워먹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그의 페라리 250 GT는 수리를 위해 페라리 공장을 자주 드나들었고, 늘어나는 수리비 탓에 람보르기니 직원들에게 수리를 맡겼다는 정도다. 이 과정에서 페라리가 람보르기니와 같은 클러치를 사용한다는 걸 알게됐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말싸움에 대한 내용은 정확히 남아있지 않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미 트랙터 사업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가 람보르기니를 설립한 후 회사를 운영한 기간은 10년 남짓이다. 심지어 쿤타치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이미 회사를 매각했던 상태였다. 람보르기니 일가는 현재 자동차를 제외한 머천다이징, 패션, 와인 등의 사업권만을 소유하고 있다. 몇년 전 KT&G가 판매했던 람보르기니 담배도 자동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람보르기니 일가와 협업한 제품이다.

람보르기니는 공식석상에서 종종 페라리를 언급한다. 반면 페라리는 단 한 번도 람보르기니를 언급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라리는 자신들의 역사를 논하며 피아트,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만을 언급한다. 

# 메르세데스-벤츠 실버 애로우의 진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낸 모습이 마치 은빛 화살이 날아가는 것 같다는 메르세데스-벤츠 실버 애로우. 벤츠가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우며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모델이지만, 이 차에 대한 진실은 조금 다르다. 

메르세데스-벤츠 W25 실버 애로우
메르세데스-벤츠 W25 실버 애로우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간단하다. 1934년 에펠레닌에 출전한 싱글시터 W25가 최대 중량 750kg을 초과해 엔지니어들이 밤새 페인트를 벗겨냈다는 것. 얼핏 들어만 봐서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비화가 처음 언급된 책에는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1926년부터 1955년까지 메르세데스-벤츠 그랑프리 팀의 매니저였던 알프레드 뉴바우어의 회고록에 따르면, 실버 애로우가 은색인 이유는 해가 가장 쨍쨍한 오후 레이스카가 가장 눈에 띄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무게 제한 때문에 페인트를 벗겨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W25가 출전했던 1934년 에펠레닌에는 무게 규정 자체가 없었다. 이와 관련된 사실은 현재 문헌으로도 명확히 남아있다. 

# 스포츠 사륜구동, 아우디 콰트로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우디가 다른 제조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킨 WRC 룰 변경은 모터스포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이다. 아우디는 이후 자신들이 스포츠 사륜구동을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보다 먼저 스포츠 사륜구동과 사륜구동 승용차를 대량 생산한 회사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스바루 레오네. 아우디 콰트로보다 먼저 나온 대량생산형 사륜구동 차량이다.
스바루 레오네. 아우디 콰트로보다 먼저 나온 대량생산형 사륜구동 차량이다.

1966년 영국의 젠슨은 인터셉트 보디(Body)에 크라이슬러 V8 헤미 엔진과 퍼거슨 사륜구동 변속기를 조합한 FF라는 차를 선보인 바 있다. 기록상 최초의 스포츠 사륜구동 모델이다. 이 회사는 독특한 시도를 많이 한 곳으로 유명한데, 이렇다보니 젠슨 FF는 5년간 고작 320대만 제작됐고 젠슨 역시 1976년에 파산했다. 

스바루는 아우디 콰트로보다 먼저 대량 생산 사륜구동 승용차를 선보였다. 1972년식 레오네의 옵션으로 사륜구동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스바루의 시메트리컬 시스템의 원조다. 아우디 콰트로가 등장한건 1980년이 되어서다. 일부에서는 스바루의 대칭형 사륜구동 시스템을 '낡은 기술'이라고 폄하하지만, 스바루는 WRC를 통해 그 능력을 입증했다. 

# 세계 최초의 도심형 SUV 논란

토요타는 RAV4가 최초의 도심형 SUV라고 강조하지만, 이보다 먼저 같은 개념의 SUV를 내놓은 회사는 바로 기아다. 기아는 토요타보다 1년 빠른 1993년 스포티지를 선보이며 프레임 보디 기반의 도심형 소형 SUV를 선보였다. 

1세대 기아 스포티지는 토요타 RAV4 보다 1년 먼저 나왔다.
1세대 기아 스포티지는 토요타 RAV4 보다 1년 먼저 나왔다.

그런데, 스포티지에 앞서 비슷한 개념을 선보인 차도 있다. 주인공은 스즈키 에스쿠도(사이드킥)다. 에스쿠도는 제너럴모터스(GM)를 통해 쉐보레 트랙커, 폰티악 선러너 라는 이름으로도 판매됐다. 

이 부분에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있다. 차체 크기와 지향점의 문제다.스포티지나 RAV4는 승용차와 SUV의 장점을 결합한 도심형 모델이기었다. 반면 에스쿠도는 스포티지나 RAV4에 비해 차체가 작았고, 소형 오프로더를 지향했다. 

# 핫해치, 골프 GTI 이전에도 있었다

폭스바겐이 신형 GTI를 내놓을 때 마다 빼먹지 않는 문구가 있다. 바로 '핫해치의 원조'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이미 1960년대 미니 쿠퍼 S를 통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골프 GTI
폭스바겐 골프 GTI

공식적으로 유럽 최초의 핫해치는 1971년에 등장한 아우토 비앙키의 A112 아바쓰로 본다. 이후 1973년 심카 1100의 고성능 버전인 Ti가 등장했는데, 골프 GTI는 이보다 3년 후인 1976년에 나왔다. 르노5 알핀 역시 골프 GTI와 같은 해에 출시된 핫해치의 대표 주자다. 

사실 핫해치는 세그먼트를 나타내는 용어는 아니다. 주로 C세그먼트 전륜구동 고성능 해치백을 뜻할 뿐, 핫해치는 마니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단어다. 지금은 그 범위가 더욱 넓어져 사륜구동 모델까지도 확장된 상태다. 

오히려 예전 핫해치의 개념은 일명 '슈퍼 미니'라고 불리는 B세그먼트 고성능 모델이 더 가깝다. 폭스바겐 폴로 GTI나 푸조 208 GTI, 르노 클리오 RS, 포드 피에스타 RS, 현대차 i20 N 같은 차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 츠치야 케이치가 드리프트의 창시자라고?

이니셜 D와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며 국내에서도 드리프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동차 제조사가 운영하는 드라이빙 센터에서도 드리프트를 배울 수 있을 정도니, 이제 드리프트는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테크닉이 됐다. 

츠치야 케이치는 드리프트 정규 리그의 창시자일 뿐, 드리프트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츠치야 케이치는 드리프트 정규 리그의 창시자일 뿐, 드리프트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드리프트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드리프트 킹' 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레이서 츠치야 케이치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그를 '드리프트의 창시자'라고 부르곤 하지만, 그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드리프트는 과거에도 있었던 테크닉"이라고 설명해왔다. 본인 역시 어린 시절 빠르게 달리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드리프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드리프트의 창시자가 아닌 정규 드리프트 경기인 'D1 그랑프리'와 '드리프트 머슬'의 설립자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켄 블락도 드리프트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사륜구동 랠리카의 주행 기법은 드리프트와 조금 다른 파워 슬라이드 범주에 해당한다. 후륜구동에서 만들어진 특유의 모션과 오버스티어를 이용한 드리프트와는 조금은 다르다. 

지금에야 미끄러지는 주행 대부분을 가리켜 드리프트로 표기하지만 구동 방식과 사용법, 용도에 따른 표기법은 각각 다르다. 드리프트는 이러한 기술 중 한 가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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