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토요타 수프라(A80)를 좋아한다. 무지막지한 튜닝을 견뎌내는 차체와 2JZ 엔진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다양한 스트릿 레이싱 무대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과시하고 있다. 뉘르부르크링 도장 깨기에만 몰두하는 GT-R이나 역사속으로 사라진 랜서 에볼루션과는 다르다. 

토요타 GR수프라
토요타 GR수프라

GR수프라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이전만 못하다. 아무래도 BMW와 공동개발로 탄생했다는 주홍글씨가 깊게 새겨진 듯하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은 물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일부까지 공유하는데, 엔진룸 안쪽에 붙어있는 배출가스 인증서에는 제작사가 'BMW AG'로 명시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뭔가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란 기대로 GR수프라를 맞이했다. 

# 곳곳에 묻어나는 BMW의 흔적

기대와 달리 시승차를 받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스마트키부터 BMW와 똑같다. 도어락이 해제되고, 다시 잠기는 소리도 영락없는 BMW다. 버튼류와 변속기는 BMW 제품을 그대로 썼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하는 특유의 다이얼은 물론이거니와 시스템 UI도 온통 BMW였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시트다. 포지션을 가장 아래까지 낮추면 지면에 닿을 정도로 깊게 내려간다. 시트가 몸을 잡아주는 능력도 만족스러워 서킷이나 와인딩로드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있게 운전할 수 있겠다. 

토요타 GR수프라
토요타 GR수프라

차에서 내려 외관을 천천히 살펴봤다. 실내와 달리 겉으로 볼 때는 BMW Z4와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2014년 디트로이트에서 공개된 FT-1 콘셉트를 그대로 빼다박은 모습이다. 날이 서있는 디테일로 단단한 느낌을 강조한 BMW와 달리, GR수프라는 유려한 실루엣을 갖춰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몸매'를 뽐낸다. 

주목할만한 디테일도 있다. 더블 버블 루프는 FT-1 콘셉트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운전석과 조수석 부분이 봉긋 솟아있다. 마치 테일램프의 일부를 덮고 있는 듯 한 리어 펜더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토요타 GR수프라
토요타 GR수프라

과거의 수프라를 기억하는 이들이 반가워 할만한 요소도 보인다. 보닛과 차체를 결박시키는 고리가 두 개라는 점이다. 고속 주행 비중이 높은 스포츠카일수록 보닛 고정력이 확실해야 한다는 A80 수프라 엔지니어들의 고심을 그대로 계승한 부분이다. 

# 달려보니 Z4랑 완전히 다르더라

GR수프라는 BMW의 CLAR 플랫폼과 3.0리터 직렬 6기통 터보엔진, ZF제 8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됐다. 사실 직렬 6기통 엔진+후륜구동 조합은 선대 수프라(A80)의 특징이기도 한데, 앞·뒤 무게배분까지 정확히 5:5로 짜놓으니 영락없는 BMW라는 평가가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조금 다르다. GR수프라의 최고출력은 387마력(5800rpm), 최대토크는 51.0kgf·m(1800~5000rpm)이다. 최고출력 시작점은 Z4 M40i와 동일하지만 최대토크는 Z4(1850~4000rpm)보다 더 낮은 영역에서 시작해 높은 영역까지 나온다. 공차중량 역시 1525kg으로, Z4(1610kg)보다 85kg가량 가볍다. 

토요타 GR수프라
토요타 GR수프라

최대토크 발산 시점이 더 낮고, 무게도 가벼우니 Z4보다 더 경쾌하다. 출력이 한 순간에 쏟아지지는 느낌도 아니어서 도심 주행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스포츠카지만 일상 주행도 어느 정도는 배려한 듯하다. 

코너가 반복되는 와인딩로드에서는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갯길을 돌아나가는 찰나에 무게 중심은 운전자와 같이 이동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차와 한 몸이 된듯 차체 거동을 충분히 예측하고 여유롭게 다음 코너를 바라볼 수 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 로봇처럼 운전자가 움직이는대로 정직하게 반응한다. 

계속 과격하게 몰아붙여도 GR수프라는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다. 왼쪽 혹은 오른쪽의 바퀴에만 하중이 실리는 상황에서도 도무지 노면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꽁무니가 뒤로 빠지며 미끄러지는듯한 짜릿한 재미를 선사하는 Z4와는 분명 다른 세팅이다. 자연스레 운전 몰입도가 높아진다. 

# '멋'이 아닌 진짜 스포츠카

GR수프라를 그저 'BMW와 공동개발한 차'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다. 섀시나 파워트레인, 부품 등 '하드웨어'를 공유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뉴트럴에 가까운 조향 감각과 안정감있는 주행성능, 더 호쾌한 달리기 능력으로 요약되는 '소프트웨어' 만큼은 토요타만의 색깔을 가득 품고있다. 

토요타 GR수프라
토요타 GR수프라

그런 점에서 GR수프라는 엠블럼이 아닌 자동차 자체를 즐기는 '혼모노(ほんもの)'를 위한 자동차다. 더 멋지고 주변의 시선을 끌기 위한 스포츠카가 아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고자 하는 진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잘 맞겠다. 그 옛날 폴 워커의 수프라를 동경했던 우리에게 꼭 맞는 자동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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