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늘 '최초'라는 타이틀로 경쟁자를 자극했다. 지금은 흔하지만 터보 디젤엔진 에어백은 E클래스가 처음이었다. 운전석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를 이어놓은 디자인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트 역시 E클래스가 유행시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번에 신형 E클래스를 통해 선보인 '전기로만 100km를 달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역시 조만간 다른 브랜드에서 따라할 대세 시스템이 될 듯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승한 11세대 E클래스 PHEV 모델 E300e를 시승했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100km도 거뜬한 주행거리와 S클래스에 맞먹는 승차감

시승한 E300e의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204마력을 내는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 리튬이온 배터리팩, 9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된 구조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308마력으로 현재의 E클래스와 비슷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큰 차이를 못느끼겠지만, 전동화 시스템은 큰 폭으로 개선됐다. 모터 출력은 90kW(약 120마력)에서 95kW(약 129마력)로 향상됐고, 배터리 용량도 13.5kWh에서 25.4kWh로 두 배가량 커졌다. 전기만으로 109km(WLTP 기준)를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주행거리 역시 현행 모델(WLTP 54km, 국내 33km)보다 두 배가량 멀리 간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실제 주행해보면 체감 주행거리는 109km 이상이다. 빈 시내 호텔에서 외곽의 와이너리까지 약 70km를 달렸음에도 주행가능거리가 50km가량 남아있었다. 주행 내내 에어컨을 틀어놓고 달렸고, 고속도로에서는 제법 속도를 냈다는걸 고려하면 꽤 만족스러운 효율이다. 교통량이 많은 구간에서 주행했다면 더 긴 주행거리를 발휘했겠다. 

여건만 갖춰진다면 전기차처럼 이용할 수 있다. 수도권 직장인들의 평균 출퇴근 거리가 왕복 30km 내외인걸 감안한다면, 엔진을 한 번도 깨우지 않고 며칠간은 집과 회사를 오갈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집밥' 충전이 가능하면 주유비 걱정 없이 대중교통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운용하면 되겠다. 

일부 전동화 모델에서 느껴지는 회생 제동의 이질감도 많이 사라졌다. 회생제동 모드를 자동으로 설정해두면 내비게이션 데이터와 연동해 자연스럽고 똑똑하게 반응한다. 제한속도가 낮아지는 구간이나 로터리와 커브길에서는 알아서 속도를 낮추며 동력을 회수한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엔진이 깨어날 때 느껴졌던 특유의 진동도 없다. 4기통 특유의 껄끄러운 회전질감이 많이 억제됐다. 

승차감은 S클래스와 맞먹을 정도다. 새롭게 적용된 에어서스펜션 덕분이다. 저속 주행에서는 고급세단 특유의 둥실둥실 떠 다니는 듯 한 승차감을 구현하는데, 방지턱이나 노면 요철 정도는 능숙하게 넘겨버리는 느낌이 썩 괜찮다. 도로에 무언가를 밟고 지나간다는 것만 인지할 수 있을 뿐,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없다. 

마냥 출렁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고속에서는 안정감 있는 움직임이다. 브레이크를 급격하게 밟거나 코너를 돌아나가는 상황에서도 차체가 쏠린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횡가속력을 몸으로 받아낸 운전자만 얼굴만 일그러질 뿐이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와인딩 로드에서는 후륜조향 덕을 톡톡히 본다. 뒷바퀴를 최대 4.5도까지 돌려줘 예상보다 훨씬 안쪽으로 파고든다. 준대형이 준중형 수준의 회전반경을 보여주니 조향감이 익숙치 않다. 처음에는 여러번 핸들을 고쳐 돌렸는데, 익숙해지면 훨씬 더 편하고 유용하다.

주행 보조 시스템은 한층 더 치밀해졌다. 차로 중앙을 꾸준히 유지하는건 기본인데, 교차로 등 잠깐 차선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앞 차량의 궤적을 읽고 안정적으로 경로를 유지한다. 고속도로 1차로에서 주행 중 나들목 진출이 얼마 남지 않자 끝단까지 차로를 바꿔주는 신기한 경험도 당했다.  

#호·불호 있는 외관, 익스클루시브가 낫네!

시승 차량은 후드 엠블럼이 적용되어있는 익스클루시브 트림이다. 전기차 EQ가 떠오르는 AMG라인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사진보다 실물의 느낌이 훨씬 괜찮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불만(?)이 많았던 헤드램프 디자인도 익스클루시브와는 잘 어울리는 듯하다. AMG라인에서의 조금 사나운 느낌과 달리 S클래스 축소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선을 굵게 처리한 범퍼도 고급스럽다. 

측면 실루엣은 매우 만족스럽다. 전장(9mm)보다 휠베이스(21mm) 더 많이 길어지면서 훨씬 안정감 있다. 오버행을 짧게 잡고 A필러를 최대한 뒤쪽으로 이동시킨 캡 백워드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실내에는 MBUX 하이퍼스크린을 계승한 슈퍼스크린이 탑재됐다. 당장 시선의 편안함은 하이퍼스크린보다 위다. 기본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난반사 처리도 잘했다.  

슈퍼스크린에는 3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2025년 선보일 MB.OS 선행버전이 설치됐다. 새로운 컴퓨팅 기술을 내장하고, 5G모듈을 탑재하는 등 기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대비 빠른 처리 속도를 지원한다. 운전자가 특정 기능을 반복 조작하는 상황을 학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루틴을 생성할 수 있다. 또, 앵그리버드와 틱톡 등의 앱을 쓸 수도 있고, 대시보드 상단카메라를 이용해 줌과 웨비나 등과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도 이용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동승석 승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눈길을 끈다. 개별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스트리밍 서비스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별도의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연결할 수 있는데, 운전자가 이 디스플레이를 볼 수 없도록 처리해 운전을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2열 거주성도 좋다. 시트의 방석 부위가 더 넉넉해졌고 레그룸과 헤드룸도 이전보다 넓어진 듯하다. 181cm의 성인 남성이 앉았을 때의 레그룸은 주먹 한개 반 정도이며, 헤드룸은 손가락 네 개 정도의 여유가 있다. 

# E클래스, 국내에서 '어떻게' 출시될까

11세대 E클래스는 고급 세단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더 정숙해진 파워트레인과 에어 서스펜션의 승차감이 이동 과정의 '편안함'이라면 여기에 추가된 카메라와 서드파티 앱 등의 다양한 디지털 사양들은 이동 과정의 '편리함'을 선사한다. 차량 스스로 다양한 기능을 제안해주는 AI 기반의 루틴과 운전자의 컨디션 조절에 도움을 주는 에너자이징 컴포트 프로그램은 자동차가 이동의 수단을 넘어 휴식과 회복의 공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관건은 이런 기능들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느냐다. 차선 변경까지 스스로 해내는 주행보조 시스템을 위해서는 고도화된 내비게이션 데이터가 필수다. 틱톡, 줌, 웨비나 같은 서드파티 앱 역시 우리나라의 법을 면밀히 살펴야 할 일이다. 

가장 걱정되는건 가격이다. 아직 국내 출시 사양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앞서 설명한 첨단 기능이 더해진다면 부담스럽게 오를 수도 있겠다. 2배가량 늘어난 배터리 비용뿐 아니라, 만족도가 높았던 에어서스펜션이나 후륜조향 같은 기능들은 결코 저렴한 옵션이 아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10세대 E300e 익스클루시브의 국내 판매가는 9130만원으로, 동급의 PHEV 세단들보다도 500만원 이상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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