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3세대 카이엔의 부분변경 모델이 국내 출시됐다. 호평받던 외관 디자인은 유지한 채 섀시와 실내 부분을 중점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다만 의아한 부분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포르쉐의 전통적인 '좌측 시동 레버'가 사라진 것이다.

회사 측은 전동화를 위해 어쩔수 없는 변화라는 설명이다. 포르쉐코리아 관계자는 "이번에 출시한 신형 카이엔은 2025년 나올 카이엔 전기차와 일정 기간 공생할 것"이라며 "디지털적인 측면을 강화한 이유도 전동화를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다.

기존 카이엔의 시동 레버(좌)와 신형 모델의 시동 버튼(우)
기존 카이엔의 시동 레버(좌)와 신형 모델의 시동 버튼(우)

포르쉐 자동차들은 오래전부터 스티어링 휠 좌측에 있는 레버를 돌려서 시동을 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1950년대 르망24시 레이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르망의 경기 시작 방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는데, 경주차를 피트에 세워논 상태에서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드라이버가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초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빨리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때 포르쉐는 드라이버가 왼손으로 시동을 걸며, 동시에 오른손은 기어 레버를 조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겠다는 모터스포츠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르망 측은 안전상의 이유로 1970년대부터 해당 출발 방식을 금지했지만, 포르쉐는 당시의 전통을 고수하며 최근까지 양산차에도 좌측 시동을 탑재하고 있다.

포르쉐 타이칸 실내. 시동 레버 대신 버튼 시동이 적용됐다.
포르쉐 타이칸 실내. 시동 레버 대신 버튼 시동이 적용됐다.

특히, 스마트키가 보급된 이후에도 실제 키 대신 키 모양의 더미를 사용할 정도로 전통을 고수했다. 스마트키의 편리함을 유지한 채 모터스포츠 감성과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똑똑한 세팅이었다. 지금도 911과 718 등 스포츠카 모델에는 시동 레버를 사용한다.

다만, 전동화 시대에 들어서며 조금씩 바뀌는 모양새다. 2019년 등장한 전기차 타이칸에서 처음으로 시동 레버가 사라졌다. '왼쪽 시동'이라는 특징은 그대로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버튼 타입으로 변경됐다. 내연기관 모델로는 이번 카이엔에서 처음으로 시동 레버가 자취를 감췄고, 4분기 공개 예정인 신형 파나메라 역시 버튼식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포르쉐 신형 카이엔 터보 GT

이외에도 신형 카이엔은 아날로그 rpm 게이지를 대신 풀디지털 계기판을 적용했다. 고급 라인업의 상징과도 같던 5구형 계기판은 디지털 테마의 일부로 변경됐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전동화 시대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아직 내연기관을 품고 있는 카이엔과 파나메라에서 레버가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르쉐는 모터스포츠의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는 스포츠카 브랜드로, 소비자 역시 이런 모습에 열광한다"면서 "전동화와 디지털 시대에도 포르쉐 고유의 특색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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