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미래 자동차 전략의 핵심으로 꼽힌다. 유럽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 금지법을 시행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좋든 싫든 앞으로 전기차를 만들고 팔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움직임은 심상찮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소비자들이 EV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전기차 시장을 정리했다.

# 발 빠른 태세 전환 GM, ‘전기차 올인 전략’ 재검토?

쉐보레 실버라도 EV. 미래 기술을 담고 3만 9900달러(약 5,4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으로 공개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쉐보레 실버라도 EV. 미래 기술을 담고 3만 9900달러(약 5,4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으로 공개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작은 GM이었다. 애초 올해 출시 및 판매 예정이었던 쉐보레 이쿼녹스EV, 실버라도EV, GMC 시에라EV를 모두 연기했다. 특히 실버라도EV와 시에라EV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려 돈 되는 픽업트럭임을 고려하면 다소 충격적인 전략 수정이다. 

혼다와 함께 만들겠다던 대중 전기차 프로젝트 자체를 취소했다. 애초 GM은 혼다와 3만달러(약 4065만원) 미만 대중 전기차를 개발해 2024년까지 전기차 40만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었다. 2025년부터는 연간 100만대 규모 전기차 양산도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GM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이번엔 포드… 16조 투자 연기 & 생산 속도 늦춰

포드는 SK온과 2개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었으며, 현재는 1공장만 가동 중이다.
포드는 SK온과 2개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었으며, 현재는 1공장만 가동 중이다.

GM이 생산 계획을 바꾼 정도라면, 포드는 아예 투자 자체를 연기했다. 전기차 생산을 위해 계획한 120억달러(약 16조원)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포드가 전기차 사업에 책정한 자금 규모는 500억달러(약 68조원)으로, 무려 25%에 해당하는 거대 지출을 붙잡아 둔 셈이다. 내년까지 60만 대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미뤘다.

SK온과 켄터키주에 계획했던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도 지연됐다. 애초 배터리 공장 가동 목표는 2026년이었다. 포드의 인기 전기차 머스탱 마하-E 생산 속도까지 줄였다. 팔아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의 전기차 사업부는 올 3분기에 총 13억달러(1조76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2억7000만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3분기 누적 기준 손실은 총 31억달러(약 4조1950억원) 규모에 이른다.

# 폭스바겐, 유럽 전기차 주문 50% 급락

폭스바겐은 향후 저가형 전기차부터 미니버스까지 다양한 전기 라인업을 갖출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향후 저가형 전기차부터 미니버스까지 다양한 전기 라인업을 갖출 예정이다.

친환경 전기차 기업으로 새로 태어나겠다고 공언한 폭스바겐의 상황도 여의찮다. 2023년 1~9월 주문받은 전기차는 15만대로 집계됐다. 전년 30만대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판매량 자체는 61% 증가했지만, 이는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적체됐던 물량이 소화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주문 대수 급감은 내년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월가의 실망… 전망치 낮춰

월가에서는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리튬 공급업체와 충전소 운영사 등 전기차 관련 기업에 대한 기대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로스캐피털 파트너스 애널리스트인 크레이그 어윈은 "사람들이 전기차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선택했다"면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은 시장 조정 및 현실로의 재조정"이라고 진단했다.

데이터트렉리서치 공동창업자 니콜라스 콜라스는 "전기차는 초기 수요 열기에 따른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것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격 책정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소비자들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벌써 수요가 흔들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마진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기 뚝 전기차… 중고차 값도 덩달아 뚝

신차 가격 할인 경쟁과 신모델 출시, 전기차 수요 하락으로 중고차 시세 조정을 받고있는 테슬라 모델 3.
신차 가격 할인 경쟁과 신모델 출시, 전기차 수요 하락으로 중고차 시세 조정을 받고있는 테슬라 모델 3.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고 전기차까지 인기가 떨어지고 가격도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자동차는 매달 시세가 감가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올해 중고 전기차의 시세 하락 폭은 유례없다는 분석이다.

케이카가 국내서 출시된 740개 차량을 대상으로 시세를 분석한 결과 중고 전기차 시세 하락 폭은 지난 7월 평균 0.2%, 8월 0.9%, 9월 1.7%로 집계됐다. 이번 달엔 2.5%까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엔카닷컴 역시 하이브리드의 시세 하락 폭은 미비했거나 오히려 상승했지만, 전기차는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모델3 롱레인지는 전월 대비 2.86%, 아이오닉5 롱레인지 프레스티지는 1.63%, EV6 롱레인지 어스는 1.46% 등이다.

# 주춤거리는 것은 잠시? 전기차 다시 일어설까?

이번 전기차 투자 축소는 전미자동차노조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전기차 투자 축소는 전미자동차노조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단기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장 포드와 GM은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으로 계획 조정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최장기간,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이번 파업으로 조 단위 손실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포드는 13억달러(1조7700억원)로 추산한다고 공식 밝혔으며, GM은 현재까지 약 8억달러(약 1조원)가량 손실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가가 연이어 내놓는 어두운 전망도 소비자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나 있다. 과거와 같은 '폭풍 성장'은 아니지만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조금씩 내연기관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는 어디까지나 속도조절 시점으로, 앞으로는 과도한 관심 없이 시장에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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