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9의 부진에 내년 출시될 현대차 아이오닉7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뜩이나 전기차 시장이 급격한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수요가 한정적인 고가의 대형 전기 SUV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현대 세븐 콘셉트
현대 세븐 콘셉트

이런 걱정은 형제 모델인 EV9을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EV9은 지난 6월 출시 이후 11월까지 5364대 팔리는 데 그쳤다. 8일 만에 1만대를 돌파했다던 사전계약 대수의 절반에 불과한 것은 물론, 수출을 포함해 목표로 내걸었던 5만대에도 한참 못미친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으로 평가된다. EV9는 트림별 7337만~8169만원에 판매되는데, 모든 옵션을 더한 최상위 모델 GT라인은 1억원을 넘는다. 기본가도 비싼데, 받을 수 있는 보조금도 적어 실구매자들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기아는 1년치 충전요금(100만원) 지원, 최대 84개월 장기 할부, 중고차 가격 보장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소비자 모으기에 나섰다. 그러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최근에는 재고 차량에 대한 파격 할인을 진행하고 있다. 보조금을 합하면 평균 1000~1200만원 가량의 프로모션이 제공되고 있고, 2000만원 이상을 깎았다는 인증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할인을 해야 팔린다는건, 그 차가 '제 값'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V9이 내세우는 특장점들을 따져보면 패착은 더 분명하다. 공간감은 카니발이 더 뛰어나다. V2L 같은 전기차 기술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탑재를 예고했던 레벨3 자율주행 기술 적용 시점은 답보상태다. 단순히 '큰 전기차를 만들자' 라고 생각했던건 아닌지 우려스럽고, 이는 아이오닉7도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배터리셀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배터리셀

업계 한 전문가는 "풀옵션이 1억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대형 SUV다 보니,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동급 경쟁 모델인 아이오닉7이 나오면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할인이겠지만, 제값 주고 산 사람들은 '소비자를 바보로 만드는 어이없는 할인'이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는 만큼, 현대차도 아이오닉7 판매에 대한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수보단 해외를 노리고 있다 한들, 시장 환경도 녹록치만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폭발적인 성장세 대신 '버블'을 우려하며 속도 조절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2023년 초 까지만 해도 52일치였던 전기차 재고량은 최근 97일치까지 급증했다. 내연기관이 기존과 비슷한 52일을 유지하고 있는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현대차 아이오닉7 시험주행차량 (사진제공 : Baldauf)
현대차 아이오닉7 시험주행차량 (사진제공 : Baldauf)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도 공급 과잉이 우려되자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GM은 혼다와의 전기차 합작 계획을 일시 중단했고, 포드는 전기차 생산 계획 수정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은 잇따라 감산 및 임직원 휴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일단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량은 예전만 못하다. 올해 전기차 판매량은 5만8893대로 전년대비 13.5% 줄었다. 아이오닉5, 아이오닉6 등 주력 전기차들에 보조금과 별도의 할인까지 얹어주고 있지만, 작년만은 못한 성적이다. 

아이오닉7과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 전기차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전년 대비 9% 증가한 2만3251대다. 2021년(65.1%)과 2022년(313.0%)에 비하면 무척 둔화된 것으로, 내년에는 하락세로 바뀔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저작권자 © 모터그래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