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는 유럽에서 시작됐고 유럽을 통해 발전해왔다. 미래 자동차 주도권도 유럽이 독차지하려 했다.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법을 확정했고, 유럽내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전기차 전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이 전기차 세계 최강자로 올라서면서 유럽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갖은 핑계를 대며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에 나서는 중이다. 이러다 내연기관 판매 금지법도 철회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기차 패권 유럽이 가지려 했지만… 中 등장

BYD SEAL
BYD SEAL

당초 유럽은 전기차 패권을 가져가 세계 전기차 시장을 이끌려 했다. 미국보다 까다롭고 강력한 규제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부족한 해외 자동차 업체의 진입 난이도를 높였다. 100년 이상 노하우를 가진 자동차 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높은 만큼 전기차로 전환해도 자사 브랜드에 가두는 락-인 효과(Lock-in effect)가 유효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전기차를 빨리 경험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전기차 구매가 끝나자 전기차 판매량은 주춤했다. 유럽 전기차 락-인 효과도 미미했다. 소비자들은 비싸고 주행거리가 짧은 유럽 전기차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성이 좋으며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과 중국 전기차를 선호했다.

중국은 전기차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2023년 자동차 수출 1위가 확실시되고 있다. 2021년 한국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선 이후 2022년 2위, 올해 수출 1위로 ‘폭풍성장’한 것이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CAAM)는 "올해 자동차 수출 대수는 약 480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110만대 가까이는 전기차로 수출된 것인데, 수출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올해 1~11월 중국 내수시장 전기차 판매는 721만대로 작년 대비 31.7% 늘어난 반면, 해외 수출은 83.5% 늘어난 109만대에 달한다.

#전기차로 잘 안 풀리는 유럽, “이게 아닌가?”

중국 자동차 수출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중 전기차 수출이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중국 자동차 수출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중 전기차 수출이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유럽은 전기차 시대에도 기술 우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계산은 빗나갔다. 전기차 생산·개발에서 미국과 중국업체에 주도권을 뺏겼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전기차 생산 1위 브랜드는 중국 BYD가 차지했고, 2위는 미국 테슬라, 3위 유럽 폭스바겐그룹에 그쳤다.

전기차를 잘 만들어야 ‘본전’이고 못 만들면 ‘망신’을 받는 분위기도 한 몫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의 유럽은 벤츠, BMW, 아우디로 불리는 ‘독 3사’를 비롯해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 브랜드는 물론 폭스바겐과 르노 같이 기술력을 갖춘 대중 브랜드까지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이미지에 금이 가고 있다. 과거의 영광과 노하우 없이 동일 선상에서 전기차 개발을 시작하자 유럽 전기차들이 한국과 중국이 만든 전기차 대비 아쉬운 모습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 비싸지만 주행거리가 짧고, 전기차에서 보여줄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주행 완성도 부분에서 여전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속을 차리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배터리야말로 유럽을 더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유럽에서 생산, 판매되는 전기차에 쓰이는 배터리를 생산하는 주요 기업은 모두 한국, 중국, 일본 기업들이다. 리튬, 니켈, 코발트를 비롯한 배터리 소재 공급망마저도 주도권을 중국이 쥐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전기차 시장을 키우면 상당 부분 자금은 한·중·일 3국에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전기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키울 이유가 없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유럽연합 외교가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이 결국 아시아 회사들 배만 불렸다”며 더 강력한 규제책이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EU 전기차 판매 비중의 30%를 차지하는 독일이 올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전년 대비 30% 삭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차 혜택 없애는 유럽… 유로 7까지 미뤄

이에 유럽 각국에서 전기차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있다. 독일 정부는 EU의 내연기관차 완전 판매금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고 전기차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17일에는 전기차 보조금을 돌연 '종료' 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독일은 2030년까지 15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이었는데, 보조금 중단으로 계획 차질을 빚게 될 것이란 우려를 받고 있음에도 보조금 종료를 강행했다.

영국은 이미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종료했고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던 노르웨이도 전기차에 주던 여러 혜택을 줄이는 중이다. 프랑스 정부도 내년 1월부터 이른바 '프랑스판 IRA(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로 불리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시행키로 했다.

중국 전기차 규제도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규제에 나섰다.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가격 경쟁력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 8개국에서 유럽 환경 규제를 늦추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기차 보급을 늘리면 중국 및 한국 브랜드에 기회만 주는 꼴이라는 것이다.

영국은 더 나아가 전기차 전환 시점을 기존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늦췄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5년 더 팔겠다는 것이다. 이에 유럽연합도 합성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라면 2035년 이후에도 판매 가능하다고 법을 수정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존시키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배출가스 규제도 손댔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새로운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 7을 승용차 2025년, 상용차 2027년 시행키로 했었다. 하지만 의회 개정안을 통해 유로 7은 승용차 2030년, 상용차 2031년으로 미뤄졌다.

유럽 연합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를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유로 7 도입 후 5년만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팔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차가 출시된 후 다음세대로 바뀌기까지 최소 6년에서 8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연기관 판매 금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로 유럽이 지속적으로 말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종국에 가면 내연기관 판매 금지법도 철회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모터그래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