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주목할만한 사건들이 많았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며 성공과 실패를 맛봤고, 전통의 자동차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바야흐로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기임은 분명해보인다. 2023년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발생했던 주요 사건들을 월별로 정리했다. 

#1월 애플카보다 먼저 나온 소니카

소문만 무성한 '애플카'에 앞서 '소니카'가 등장했다. 소니가 혼다와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연초 CES를 통해 아필라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소니혼다모빌리티, 아필라
소니혼다모빌리티, 아필라

아필라는 차체를 길게 가로지르는 일체형 램프와 클램쉘 타입 후드, 블랙 투톤 루프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단정한 외모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헤드램프 중앙에 탑재된 '미디어 바'는 다양한 조명을 발산해 자동차와 사람 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다.

실내도 외모와 마찬가지로 단순하면서도 미래지향적으로 꾸며졌다. 독특한 스티어링 휠과 디스플레이로 가득 찬 대시보드가 적용됐는데, 깔끔한 디자인의 디지털 사이드미러 화면도 인상적이다. 뒷좌석에는 2열 승객을 위한 디스플레이도 별도로 마련됐다.

핵심은 디지털 섀시다. 차량의 주요 기능을 한 데 모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플랫폼이 적용됐고, 이를 통해  5G 통신과 와이파이, GPS,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와 별개로 레벨3 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해 45개의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도 장착했다. 양산은 2025년부터 이뤄진다. 

#2월 토요타, 14년 만의 CEO 교체

토요타가 주주총회를 통해 렉서스 인터네셔널의 사토 코지 CEO를 토요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14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토요다 아키오는 회장직에 전념하게 됐다. 

사토 코지 신임 CEO
사토 코지 신임 CEO

사토 코지 CEO는 1992년 토요타에 입사한 이후 오랜 기간동안을 엔지니어로 근무해온 인물이다. 토요타와 렉서스의 다양한 섀시 및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수석 엔지니어 자격으로 렉서스 GS, LC 등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그는 토요타 내에서 '고속 승진'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2017년 렉서스 총괄 책임자를 거쳐 2019년 부사장이 됐고, 2020년에는 렉서스 사장 자리에 올랐다. 같은해 9월부터는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및 고성능차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가주레이싱(GR)의 사장도 겸직했으며, 2021년 토요타 최고운영책임자, 최고브랜딩책임자도 함께 맡았다. 

그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렉서스가 배터리 전기차(BEV)의 혁신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 방향성도 암시했다. 렉서스를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고, 토요타는 수소,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솔루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탄소중립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3월 합성연료도 탄소중립 인정

이른바 'e퓨얼'로도 불리는 합성연료가 내연기관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중지와 관련한 법안을 수정하고, e퓨얼 사용 차량은 배출량이 '0'인 탄소중립 자동차로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21년 엑손모빌과 함께 e퓨얼 실증 테스트에 나선 포르쉐
2021년 엑손모빌과 함께 e퓨얼 실증 테스트에 나선 포르쉐

e퓨얼은 수소(H)와 탄소(C)로 이뤄진 탄화수소가 핵심이다. 수소는 물을 전기 분해하여 만들고, 탄소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결합시킨다. 생산에 필요한 전기는 친환경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

e퓨얼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내연기관 엔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소 후 탄소 배출량도 기존 가솔린 연료 대비 최대 9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정제 과정을 거치면 가솔린뿐 아니라 디젤이나 선박유 등에도 대체할 수 있다. 기존 엔진은 물론, 석유 운송 및 보관 등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도 불필요하다.

문제는 낮은 경제성이다. 현재 e퓨얼의 생산 단가는 리터당 10달러(한화 1만2000원) 수준에 달한다. 운송 및 보관료와 각국 세금 등을 고려한다면, 가격경쟁력이 전무한 만큼, 규모의 경제 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월 파리에서 퇴출된 전동킥보드

프랑스 파리가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을 중지시켰다. 20개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의 존폐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이 중 89%가 퇴출에 찬성했다는 근거도 들었다.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파리에서 발생한 전동킥보드 사고로 3명이 사망했으며, 459명이 다쳤다. 

공유 전동 킥보드가 금지된 프랑스 파리 시내 모습(사진=독자 제공)
공유 전동 킥보드가 금지된 프랑스 파리 시내 모습(사진=독자 제공)

당시 파리시의 발표에 공유 업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투표에 참여한 약 10만명은 파리 전체 유권자의 7.5%에 불과해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맞섰다. 이들은 대부분의 투표가 노년층에 편중돼 찬반의견의 격차가 커졌다고도 지적했다. 

업계는 킥보드 대신 자전거를 대안으로 꺼내들었다. 라임, 도트, 티어모빌리티 등은 킥보드 대신 자전거의 수를 늘렸고, 이들이 운영중인 공유 자전거의 수는 이전의 킥보드 대수와 맞먹는 규모까지 확대됐다. 

#5월 재규어, '잠시만 안녕'

재규어가 세계 주요 시장에서 판매를 중단했다. 2025년 신형 전기차 3종이 나올 때까지 체질 개선과 내실을 다진다는 목표다. 

재규어 XF
재규어 XF

2025년 공개될 재규어의 신형 전기차 중 첫 번째 모델은 재규어가 독자 개발한 JEA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된다. 4도어 GT 모델로, 1회 충전 시 최대 700km를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영국 기준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5000만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재규어와 함께 랜드로버도 전동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레인지로버에 적용된 EMA 플랫폼을 기반으로 2025년 레인지로버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0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6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6월 자존심 꺾은 빅3, 테슬라 충전 규격 도입

테슬라가 슈퍼차저 충전기를 전격 개방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전통적인 '빅3'로 불렸던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테슬라 충전 규격을 도입했다. 테슬라는 충전사업자로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챙기고,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테슬라의 광범위한 충전 네트워크를 얻는 효과를 얻겠다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테슬라 슈퍼차저에 연결된 기아 EV9
테슬라 슈퍼차저에 연결된 기아 EV9

테슬라 전선에 합류한건 빅3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신생 전기차업체로서 주목받았던 리비안이 합류를 발표했고,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그룹 등 독일차도 미국 내에서 테슬라의 규격을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도 같은 결정을 했다. 

미국 내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테슬라는 최근들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도 슈퍼차저를 개방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의 총량이 늘어남에 따라 전기차 사용 여건이 더 나아질지 지켜볼 일이다. 

#7월 '아직 전기차 아니야' 르노·지리 하이브리드 맞손

르노와 지리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제작하기 위한 합작 투자를 발표하고, 총 77억 달러(한화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 첫번째 오로라 프로젝트
르노코리아자동차 첫번째 오로라 프로젝트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투자 규모는 상당하다. 양측은 3개 대륙에 걸쳐 17개 공장과 5개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며, 1만90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500만대 분량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르노와 지리는 볼보, 닛산, 미쓰비시를 포함한 계열사들에 다양한 엔진 및 부품을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르노코리아가 추진하고 있는 오로라 프로젝트에도 합작사의 파워트레인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8월 '베트남의 테슬라' 빈패스트 상장

베트남 빈그룹 산하의 자동차 브랜드 빈패스트가 나스닥에 상장됐다. 첫날 기업가치 850억 달러를 인정받으며 포드(480억 달러), GM(460억 달러)을 뛰어넘는 성적을 보여줬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주당 8~9달러를 횡보하며 상장 초기보다 90% 낮아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제 2의 테슬라를 기대하며 몰린 금액 탓에 주가에 '거품'이 끼었고, 빈패스트는 전기차 공급 능력도 월가의 기대치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북미 진출 이후 이어진 현지 언론들의 혹독한 평가도 영향을 미쳤다. 로드앤트랙은 빈패스트 VF8을 두고 "용납할 수 없다"고 평가했고, 모터트렌드는 "시승 차량을 당장 반납하고 싶어진다"고 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같은 반응을 전하며 "자동차 전문가들이 빈패스트의 품질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9월 파업, 미국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사측과 맞섰고, 이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까지 목소리를 내며 사태가 장기화됐다. 

이들은 임금 25% 인상 및 주 32시간(주 4일) 근무를 요구해왔다. 파업에는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주요 미국 자동차 제조사 소속 5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참여했고, 6주 이상의 가동 중단이 이어지며 신차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피해는 소비자들이 떠안았다. 전례 없는 파격 협상 이후 자동차 업계는 차량 가격 인상을 시사했다. GM은 향후 4년간 인건비만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며, 포드 측은 차량 1대당 제작비가 850~900달러(약 120만원) 증가할 것이라 밝혔다. 

#10월 일본차에 탑재되는 한국 배터리

토요타 북미법인과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LG엔솔은 2025년까지 미국 미시간 공장에 4조원을 투자해 토요타 전용 배터리 라인을 구축한다. 합작공장을 제외한 단일 수주계약으로는 최대규모다. 

토요타는 이번 협력으로 전기차 생산 계획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토요타는 2030년까지 토요타와 렉서스 브랜드를 통해 30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연간 350만대 전기차 생산 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이 계약에 따라 LG엔솔은 일본 상위 3개 업체들에 모두 배터리를 납품하게 됐다. 앞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가 첫 파트너로 선정된 데 이어, 혼다와 합작 공장 설립을 결정하고 북미에 생산 거점 마련에 나선 바 있다. 

#11월 드디어 등장한 사이버트럭

테슬라가 사이버트럭 인도를 시작했다. 2019년 공개 이후 무려 4년만이다. 테슬라는 2021년 말 출시를 예고했지만, 생산 문제로 인해 2022년으로 한 차례 연기했고, 이후 2023년 상반기로 다시 말을 바꾼 바 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
테슬라 사이버트럭

사이버트럭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96.6km/h)까지 2.6~6.5초만에 주파할 수 있다. 견인력은 최대 4990kg으로, 여느 픽업트럭 못지 않다. 앞서 테슬라는 사이버트럭이 포르쉐 911을 견인하면서 또 다른 911과 드래그 레이스를 펼치는 영상을 공개하며 강력한 성능도 과시했다.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보니, 다양한 이야깃거리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중고차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구매자들에게 '1년간 처분 금지' 조항을 달았고, 일론 머스크 CEO는 X(구 트위터)를 통해 수륙양용 옵션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2월 '포스트 머스크'의 몰락

'포스트 일론 머스크'로 주목받았던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완성되지 않은 기술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는 사기 혐의다. 

니콜라 트레 수소연료트럭
니콜라 트레 수소연료트럭

밀턴의 사기행각은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리서치가 지난 2020년에 낸 보고서를 통해 폭로됐다. 언덕에서 굴린 트럭이 움직이는 영상을 마치 자체 동력으로 주행 중인 것처럼 위장한 영상을 제작한 게 대표적이다. 

변호인단은 밀턴이 회사의 기술 완성 가능성에 과도하게 낙관적이었을 뿐, 사기의 의도가 없었다면서 집행유예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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